지난 9일 대전 대한통운 앞에서 열렸던 '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최학열 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더이상은 울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가 고 박종태 지회장 이야기를 꺼내며, 결국 집회 한 켠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먹이고 말았다. |
택배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지도 못하고, 일의 특성상 다른 노동자들과는 다른 힘든 점들이 많을 텐데요.
택배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집에서 내 논 사람이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끼니를 운전하는 중에 짬짬이 빵이나 떡 한 조각으로 때우면서 하루 13~15시간 일을 하고, 일요일과 공휴일에만 쉴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전부 쉬는 것이 아니고 대한통운 광주지사의 경우, 휴일에도 5명씩 돌아가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니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거나 아파서 쉬거나 하는 것은 꿈도 못 꾸죠.
휴일노동의 경우는 무료노동 정도가 아니라 자기 돈 내서 일하는 형편입니다. 휴일에 일해서 버는 돈이 4~6만 원 정도입니다. 하지만 광주 전 지역을 5명이 나눠서 일하기 때문에 모르는 지역도 가야해서 시간은 배로 걸리고, 그에 따른 차량 유류비도 더 들고, 휴대전화 통화료와 사정에 따라 배송물품을 퀵을 불러서 보내기도 하는데 그 비용까지 감안하면, 자기 돈을 들여서 일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사측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한 달에 500만 원까지도 번다고 떠들고 다니지만, 그 건 순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500만 원 이상 버는 사람이 약간 명 있기는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노동자 한 명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함께 일하거나 아예 배송보조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일하는 경우입니다. 사측도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거죠.
사실 택배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장시간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2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4대 보험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없습니다.
해고되기 전에 대한통운의 노동조건은 어땠나요?
지난 27년간 제조업에서 일하다가 대한통운에서 일한지 3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대한통운에 들어와서 ‘뭐 이런데가 다 있나’ 싶어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들이 서비스업임을 강조하면서 고객 크레임이 들어오면 벌과금도 물리는데, 그 노동자를 대하는 것은 인간이하 였습니다. 아침 일찍 택배물품을 분류하고 있으면, 관리자가 분류대 위에 올라가서 손가락질 하면서 욕까지 합니다. 그런 기분으로 고객을 만나러 나가는 게 말이 안 되죠.
얼마 전에는 제가 대한통운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사항들을 한 번 쭉 적어봤습니다. 배송일을 할 때 입는 대한통운 작업복뿐만 아니라 자주 사용하는 접착테이프도 개인 돈으로 사야하고, 심지어는 차량에 부착되는 광고 도색비도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지연배송-반송 되어도 벌과금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배송물품이 어디서 파손됐는지 확인도 없이 무조건 최초 수집한 노동자가 그 값을 물어내야 합니다. 저도 13만 2천원까지 물어내봤습니다. 또 사측에서는 배송 전에 고객에게 사전 전화를 강요하면서도 한 달에 15만원이 넘는 업무용 통화비용도 개인부담입니다. 더 악랄한 것은 우리 택배 노동자의 임금에 해당하는 운송 수수료 지급이 60일 이후에나 지급됩니다. 혹 배송사고가 나면 그 가격만큼 제외하고 수수료를 지급하기위해서입니다.
해고된 대한통운 광주지사 최학열(55) 씨의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보수언론에서 많이 회자되는 ‘투쟁 일변도의 노동조합’이나 ‘경제위기 속에 이기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인터뷰 내내 최학열 씨는 “정말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며 분을 삼키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해고는 이미 계획 된 것’이라며 조목조목 그 근거를 밝혔다.
수수료 30원에서 시작된 싸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됐나요?
우리가 물품을 배송하면 받는 수수료가 개당 920원입니다. 우리 임금에 해당하는 그 수수료를 30원 올리는 것을 대한통운과 구두합의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측에서 실행을 계속 늦추다가 못해주겠다고 나온 겁니다. 사실 경제가 어렵고 회사 형편도 좋지 못하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럼 10원만이라도 올리자’고 했었습니다. 그것도 사측에서는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양보했었습니다. 수수료 인상 요구는 철회하고, 대신 ‘택배 노동자가 직접 부담했던, 작업복과 차량 광고 도색비는 회사가 책임져라.’ 그리고 사측에서 ‘월 200만 원의 복지기금을 적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복지기금은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택배 노동자들의 산재보험과 대한통운 전체 노동자의 상조비, 그리고 사회봉사 기금으로 지출하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혔습니다.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한통운은 그 마저도 거절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니, 맘 대로 해봐라”였습니다.
지난해 11월 금호자본이 대한통운을 인수합병하면서 네 달 동안 대한통운은 두 차례에 걸쳐 임금을 20%나 인상했습니다. 그런데 택배 노동자들의 이런 작은 요구는 묵살해 버렸습니다.
▲ 최학열 씨는 대한통운의 노동자 탄압의 사례를 꼼꼼하게 적은 수첩을 보여주며, 그 동안 억울했던 사연들을 한풀이 하듯 털어 놓았다. |
그렇다면, 회사 측에서는 해고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한 마디로 이건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이 작정하고 함정을 만들었던 겁니다. 이번 기회에 화물연대 조합원과 노동조합을 싹 쓸어버리려는 것이죠. 그런 정황들이 다 들어났습니다. 사측과 계약서에는 우리 택배 노동자들이 배송물품 분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그것을 강요하고 계약을 해지 하겠다며 협박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지난 3월 16일 배송물품 분리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그 시간에 고객들의 발송물품을 접수 받는 일을 했습니다. 사측에서는 몇 번의 문자로 계약 해지를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후 3시쯤, 6시까지 귀사하지 않으면 모두 계약해지 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미 전국에서 대체 기사와 차량이 광주시사 안에 들어와 있었고, 5시 30분쯤 회사로 돌아갔을 때는, 회사 문을 잠그고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다 계획 된 해고를 자행한 겁니다.
뿐만 아니라 사측이 스스로도 그렇게 협박한 적도 있습니다. 인천에서도 그렇게 해서 택배 노동자들을 다 갈아엎은 적이 있다면서, 그 꼴 나지 않으려면 그냥 지금이라도 시키는 대로 일하라고 대놓고 우리게 말했었죠. 이번 기회에 화물연대 깃발을 부러뜨리고, 물갈이를 확실하게 하겠다는 거였죠.
대한통운 측에 말하는 정확한 해고 근거는 무엇인가요?
근무지이탈입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택배 노동자에게 주 근무지라는 것이 어디가 되겠습니까? 하루 10시간 이상을 고객을 만나서 배송하고 발송물품을 접수받아 오는 길거리가 주 근무지라면 주 근무지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그들이 말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이라면 최소한 계약서라도 지켜야 하잖아요. 배송물품 분리는 계약서 없는 업무입니다. 그런데 배송물품 분리를 안 했다고 근무지이탈이라니요?
대한통운은 광주지사만 문제가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운송료 10.7%인하한 금호타이어 지입차량 화주도 대한통운이고, 얼마 전 여천산업단지와 광양컨테이너부두를 오가는 화물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잘라버린 것도 대한통운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오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나요?
안 찾아가 가본 곳이 없습니다. 경찰에게 ‘차라리 다 잡아가라’고도 해보고, 공정거래위원회에도 가보고, 노동부, 민주당 그 어느 곳을 가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시청에서는 자기들끼리 해당 부서를 못 정해서 서로 미루기도 합디다. 노동자로 인정도 못 받는 우리는 실정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경찰의 경우 말로는 중립에 서있다고 번지르하게 말하지만, 다 웃기는 소립니다. “연행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대전 대덕경찰서장입니다. 우리가 대한통운 앞에서 집회할 때, 경찰 중 어느 한 명이라도 우리 쪽에서 대한통운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줄 아십니까. 열이면 열 전부가 회사를 등지고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채증하고, 협박하고, 감시하면서……. 그러면서 ‘중립에 서있다’구요? 오히려 우리에겐 깡패와 다름없습니다.
▲ 탄압으로 일관한 경찰과 벼랑 끝에 내몰린 분노한 노동자들의 충돌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9일 대전 대한통운 앞 집회에서 행진을 막 시작하려던 시간, 그렇게 노동자와 경찰은 충돌하고 있었다. |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은 현재 어떤 입장인가요?
금호자본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대한통운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여전히 발뺌만 하고 있습니다. 서른여덟 살의 젊은 노동자를 죽여 놓고도 사과 한 마디, 유감 표명 한 마디 없습니다. 문자로 해고한 것이 아니라 ‘서둘러 회사로 돌아오라’는 문자였을 뿐이라는 둥, 회사는 언제나 대화의 창구를 열어놓고 있다는 둥 거짓말만 떠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이 더 밉습니다.
투쟁 과정에서 회사의 협박에 못 이겨 복귀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회사가 그들에게 쓰게한 각서입니다. 복귀 각서에는 ‘모든 업무에서 회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과 기존에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문제도 전적으로 회사 측의 입장에 따른다’와 노동조합 활동을 비롯한 모든 단체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머슴도 이렇게 부려먹지는 않을 겁니다. 완전히 노예문서와도 같은 각서였습니다.
지금은 대한통운 모든 차량에 CCTV를 달아놨다고 합니다. 혹시나 우리 조합원이 일하는 차량에 해코지라도 할까봐 그런다는군요. 아니 그렇게 모든 차량에 CCTV 달 돈이면, 그리고 저기 대한통운 정문에 배치된 용역들 일당 줄 돈이면, 우리 요구사항 다 들어주고도 남았을 겁니다. 한마디로 이번에 싹 갈아치운다는 것밖에 안 됩니다.
최학열 씨는 “우리 노동자가 도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졌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가족과 함께 먹고 살아보겠다는 것도 죄가 됩니까?”라고 되물으며, 고 박종태 지회장의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울먹이고 말았다. 그는 이번 고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은 자본과 이명박 정권이 합작해서 저지른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고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고 자책했다.
서른여덟 살의 젊은 노동자가 어린 두 아이와 아내를 남기고 목숨을 버렸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박종태 지회장이 사라지고 나서, 수배중인 사람을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도 가보고, 역에서 기다려 보기도 하면서 많이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을 줄이야…….
수배 중이었던 지회장이 살아있을 때에는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버렸던 저 작은 숲에서 투쟁하는 우리 조합원들을 몰래 보고 있었을 겁니다. 천막도 부셔서 가져가버리고, 집회 중에 경찰은 계속 연행하겠다고 협박하고, 심지어는 조합원들이 들고 있었던 차양막도 시위용품이라면서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대한통운 앞에 차를 세울 때에도 시비를 걸어 우리 조합원들을 연행해 갔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숲속에서 숨어서 지켜보는 지회장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함께 싸우지 못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이건 이명박 정부와 그들이 비호하는 금호자본, 대한통운이 함께 죽인 타살입니다. 살인입니다. 우리 노동자가 도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졌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가족과 함께 먹고 살아보겠다는 것도 죄가 됩니까? 자본들이 다들 경제가 어렵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사실 그 위기를 왜 노동자가 책임져야 합니까? 우리 택배 노동자들이 잘 못해서 경제가 어려워졌습니까? 정권의 탓이고 자본의 책임입니다.
우리 택배 식구들은 대부분 노동운동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 역시 운동을 모른 체 29년을 제조업에 있다가 3년 전에 대한통운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순박하게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려는 노동자들이 자꾸만 투사가 되어갑니다. 자꾸만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생전의 박종태 지회장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계신지요?
▲ 최학열 씨는 고 박종태 지회장이 숨을 거둔 숲을 바라보며, "수배 중에 도망다니면서도 저 숲에 숨어서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했을 지회장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지금 그 곳에는 "우리는 일하고 싶다"라는 플랭카드가 지회장을 대신해서 조합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
▲ 최학열 씨의 이야기를 듣고, 고 박종태 지회장이 숨어서 대한통운 앞에서 싸우는 조합원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장소에서 9일 집회 현장을 바라봤다. 고작해야 조합원 40여 명이 전부였을 그 때와,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들이 가득 메운 지금의 대한통운 정문 사이에 고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이 있었다. |
평상시 그렇게 순진하고 속 깊은 인물이 없었어요. 싸움을 시작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조합원이 아픈 데는 없는 지 일일이 다 챙기고, 같이 먹고 자고 농성하면서도 아무도 모르고 지나치던 조합원 생일까지 다 챙기던 사람이었요. 저 한테는 “형님, 애쓰신다”고, “투쟁이 힘들지만 항상 건강에 신경 쓰시라”고 얘기해주던 속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집 밖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제대로 씻지를 못해서 발냄새가 참 많이 났었어요. 천막에서 자고 있는 중에도 지회장이 들어오면 그 냄새로 잠결에 ‘아 지회장이 들어왔구나’를 알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요.
지난 6일에는 서울에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그때 남겨진 열사의 부인도 함께 했었는데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못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갔다고 오는 동안 친척에게 아이들을 부탁했었습니다. 서울에서 일정을 마치고 대전역에 도착해서 그 부인이 대전역 화장실에서 상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아이들을 데리러 가시는데, 그 남겨진 ‘부인의 심정이 어떨까’하는 생각에 맘이 너무 아팠습니다.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이 정말 몸에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정말 이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의 자세를 봤을 때, 투쟁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해고된 조합원들은 현재 어떤가요?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다들 여기저기 앉아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 목표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유서에도 나와 있듯이 열사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뜻한 바가 있었습니다. 사측과 경찰이 아무리 탄압해도 이 투쟁은 멈춰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구속한다면 옥중에서 단식투쟁으로 맞서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열사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 죄를 업으로 삼고 평생을 살려고 합니다. 이제 저 악날한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에 맞서는 투쟁은 기본입니다. 더 나아가 열사가 남긴 어린 두 아이와 우리 자녀들이 어른이 됐을 때에는, 노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떳떳하고 행복한 일이 되도록 세상을 바꿔내려고 합니다.
▲ 하루 오전, 오후 두 번 대전 시내 선전전을 하는 차량을 타고 9일 집회 행진 대오를 따라가면서도 이명박 정권과 경찰에 대한 분노의 이야기들을 멈추지 않았다. 택배 노동자인 그는 배송물품이 아니라 노동자의 절규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
벌써 2개월 가까워 오는 그들의 농성생활은 광주에서 대전 대한통운 앞 길거리로 다시 고 박종태 지회장이 있는 병원 영안실 앞 천막으로 옮겨진 상태다. 밥과 국, 그리고 김치 하나로 식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던 동료 해고자는 “어, 형님은 연세가 있어서 그래도 대접을 하는 건가? 나는 아예 국에다가 밥을 말아서 한꺼번에 주던데……”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최학열 씨는 “지회장이 안 죽었으면 길거리에서 밥 해먹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좋아진 거”라며, “우리는 목숨이 붙어있으니 먹기라도 하지…….”라고 고 박종태 지회장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확인 할 것이 있다며 집회 대오 속으로 걸어가던, 검게 그을린 50대 한 택배 노동자의 뒷모습에 너무도 많은 사연과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박원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