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게 늙어 버린 첫사랑, 황석영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고작 꿈꾼 것이 정권의 월급쟁이였다니

요즈음 여기저기에서 욕 먹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다가 팔십 년 오월에 광주 항쟁이 시작된 18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염치도 없이 놀랐다. 엄벙덤벙 살다 보니 광주고 뭐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은 광주 뿐만이 아니었다.

TV 뉴스에 잠깐 나온 기자 간담회도 봤고 한겨레 신문에 실린 인터뷰도 읽었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는 황석영 본인이 한 말보다는 황석영을 짓씹는 글들이 훨씬 더 많았다. 김지하나 양성우 같은 시인들이 손학규를 지지하거나 이명박 선거 운동에 뛰어들었을 때보다 더 거칠고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배신이니 변절이니 하는 말들을 내남없이 마구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황석영이라는 소설가를 그동안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해 온 사람들이 나 말고도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리말로 쓰여진 황석영의 모든 책을 읽었다. 우리말 문장을 얽어내는 법을 나는 황석영으로부터 배웠고 내가 내 글에 담아 내고자 하는 정서 또한 그에게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황석영의 소설보다 더 나은 것을 쓰지 못하고 있다. 쉬운 말로 하자면 나는 황석영 매니아이고, 많이는 팔렸지만 은근히 비난 받은 그의 <개밥바라기별>도 꽤나 감동적으로 읽었다. 황석영의 초기 중단편을 찾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개밥바라기별>을 읽으면서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그때 그 작품들을 쓰게끔 만든 바탕 기억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더듬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겐 제법 재미나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황석영이 손학규를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다닐 때부터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황석영이 생각하는 세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황석영이야 나보다 공부도 더 많이 했을 테고 글도 더 많이 썼으니 황석영과 나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건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황석영이 손학규를 지지하는 꼴은 죽는 표 만들기 싫으니 진보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고 차라리 거대 야당을 지지하겠다는 진부한 꼴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무슨 짓거리를 저지른 정당인지 황석영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도대체 왜 손학규를 지지했을까 나는 황석영 인터뷰 글도 이리저리 찾아 읽어 보면서 나름대로 고민을 했다. 차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늘어가던 시기였고 한미 FTA 때문에 한국 사회가 엎치락뒤치락하던 때였다. 그런데 황석영은 자신이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한 민주노동당을 외면하고 손학규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러다가 정동영까지 지지했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나는 황석영도 이젠 늙었다고, <객지>와 <장길산>을 쓴 빼어난 반골 소설가는 죽어버린 거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바리데기>나 <개밥바라기별>은 참 좋았다. 쉬운 듯 노련하게 얽어 내는 문장도 여전했고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눈 감으려 하지 않는 시선도 정말 미련스러워 보일 정도로 살아 있었다. <개밥바라기별>은 그저 구수한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제쳐두더라도 황석영이 감옥을 나와 <오래된 정원>부터 시작하여 <바리데기>까지 써 낸 글들은 내 이십대 시절 <한씨연대기>나 <골짜기>를 읽으며 맛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글들이었다.

며칠 전에 갔었던 술자리에서도 황석영을 욕하는 소리가 홍수 때 둑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알기로 황석영의 모든 작품을 읽은 사람은 그 자리에 나 말고는 없었다. 글을 쓰면서 꼭 누군가를 닮아야 한다면 황석영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나 말고는 없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배신감에 가장 호되게 치를 떨어야 하는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할배가 이번엔 큰 사고 쳤구나, 어쩌려구 그럴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그 황석영인지 황구라인지 하는 작자가 기어이 미친 것 같다고 떠들어 댔다. 나는 도리어 담담했다.

문학이 마음을 건드리는 영역은 하루하루 일상을 겪어 나가며 몸으로 부딪히는 것들과 많이 다르다. 내게는 그렇다. 그렇기에 친일 친독재 시인 서정주의 시를 읽으며 나는 얼마든지 그 감탄스러운 말의 리듬에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멀쩡한 정신으로 조선일보에 글을 실었던 김선우나 장석주 같은 시인들의 시집을 끼고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앙금은 남는다. 내 마음을 이다지도 강하고 깊게 울리게 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글쟁이들이 부디 열사 같이 굳고 곧게 살아 주었으면 하는 밑도 끝도 없는 바람이 내겐 있다. 내가 살지 못하는 삶을 나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살아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꼬맹이들이 TV 만화 속 영웅을 떠받들며 자기 꿈을 대신 이루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듯 나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다가 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연덕스럽게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중앙일보에 글을 싣는 작가들이 나는 꼴 보기 싫다. 원고료 푸지게 주는 신문에 너무 간단하게 글을 팔아먹는 것 같아서 역겹다. 그런 작가들의 글을 좋다고 읽는 나 자신도 한심스럽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구도 가지 않으려 하는 문학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 이제 와서 누구나 가려는 길로 너무 쉽게 빠져드는 것 같아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고작 어떤 신문과 글 몇 편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뭐가 중요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당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조중동으로 싸잡아 일컬어지는 부자 신문들이 지금껏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기가 너무나 아득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용산 철거민 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그 돼지 같은 신문들이 사설로 뭐라 지껄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고작 돈 몇 푼이 아쉬워 그런 신문들과 손을 잡는다면 나는 그 꼴을 보며 분노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가혹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속이 좁은 것일까? 어떤 신문과 인터뷰를 하느냐 보다 어떤 글을 쓰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 말해야 할까? 나이 서른이 안 된 나는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젊은 시절부터 숱한 민주화 투쟁과 빈민 운동에 참여해 왔고, 조선일보가 돈을 댄다는 이유로 동인문학상을 거부했고, 문단 서열화만 조장하는 문학상 제도에 사정 봐 주지 않고 쓴소리를 퍼부었고, 소설 못 쓰는 소설가인 이문열과 맞설 수 있는 '진보적' 문인이라 불리고, 고은 시인과 함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고, 아직도 서점에서 잘 팔리는 몇 안 되는 한국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황석영.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일이라도 황석영의 새 소설책이 나오면 나는 아마 당장에라도 서점에 달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치울 것이다. 가끔씩 마음이 울적해져 서점에 가면 황석영 중단편전집을 서가에서 꺼내 <몰개월의 새>나 <철길> 같은 작품을 읽고 또 읽는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고 꿈꾸는 세상은 내가 생각하고 꿈꾸는 세상과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는 칠십여 년 가까이 살아 오며 좋게 말하면 둥글어져 버렸고 나쁘게 말하면 폭삭 늙어 버렸다. 글은 변함없이 끝내주게 잘 쓰는데 북한 다녀 오고 감옥 갔다 와서 해외 좀 돌아보는 것 같더니 품이 너무 어정쩡하게 넓어져 버렸다. 중앙일보 지면에서 이문열과 대담을 하더니 몇 년 뒤에 이도 저도 아닌 정치가 손학규를 지지한다고 버젓이 언론에 발표했다. 손학규가 대선 후보에서 밀리자 정동영에게 갔다. 이제는 공안 정권마저 자기가 끌어안아 보겠다고 말한다.

아직도 내가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글을 끝내주게 잘 쓴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소설의 내용이나 작가의 태도와 함께 문장을 짓는 방식까지도 작품을 읽을 때 유심히 들여다보는 내 버릇 탓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늘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작가들 치고 글 못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문열조차 한때 숱한 문학상들을 거의 다 챙겨 먹던 사람이었다.

이명박 정권을 그래도 아직은 버리지 말고 끝끝내 소통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이미 현 정권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이 많으니 규탄과 철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느냐, 글쎄, 그게 문제일까? 인터뷰 글에서 황석영은 이명박 정권과 함께 하려는 이유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남북관계가 막힌 것처럼 재야와 정부가 완전히 막혔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이 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후배들도 동의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면 혹시, 온몸과 온 마음으로 싸워서 자기 손으로 권리를 얻어 내려는 사람들과,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상상력으로 머나먼 달 세계까지 기어코 다녀 오려는 소설가들의 차이, 그 문제일까? 황석영은 인터뷰를 하며 이런 말도 했다. ‘사랑하는 후배인 진중권이 나더러 코미디라고 했는데, 작가가 이런 꿈을 안 꾸면 누가 하겠나. 나는 정치하는 사람도, 할 사람도 아니다.’

<심청, 연꽃의 길>이나 <바리데기>에서 황석영은 아시아 지역을 넓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통 큰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정도상이나 전성태, 김연수 같은 새까만 후배 소설가들도 자신의 상상력을 더 이상 한반도 안에 비끄러매 놓지 않는다. ‘동아시아 문학포럼’ 같은 행사에는 항상 중국이나 일본 작가들과 함께 황석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구전 설화에서 소재를 거두어들이고 아시아 대륙을 너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 황석영의 솜씨를 나는 늘 부러워했다. 언젠가는 꼭 뛰어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도 자기 갈 길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길은 나도 좀 더 나이를 먹고 보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아니었다. 나는 통 큰 구상을 위해 작은 존재들에게 등을 돌리는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권에게 손을 내민다는 일이 2009년의 정세에서 어떤 뜻을 가지는지 황석영은 모를 사람이 아니다. 그도 나름대로 많이 고민했겠지만 나는 그 길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굳이 황석영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가 말하는 남북 화해나 몽골+2코리아 구상은 어찌 보면 소설 쓰는 작자 다운 ‘낭만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낭만이고 뭐고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이명박 정부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나도 묻고 싶다. 그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대북문제를 풀려는 아무런 노력이 없을 때 현 정권에 희망을 접고 포기하겠다고 이 대통령에게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어떻게든 이명박 정권과 뭔가를 같이 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목숨이 죽어 나가는 노동 현장보다, 농작물 값이 똥값이 되고 있는 농촌 현장보다, 구르고 부러지고 으깨지고 다치고 터지고 굶주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도시 속 빈민촌보다 남북 화해가 그에게는 공안 정권 혹은 신자유주의 정권과 손 잡을 만큼 더 중요했을까? ‘북한 노동자와 남한 청년 실업자들이 몽골에 가서 개척하며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그러면 느슨한 연방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차피 황석영 개인의 자유고 사실 내가 듣기에도 조금은 솔깃한 발상이지만 어떻게 하면 몽골에 있는 자원들을 싸게 끌어다 쓸 수 있나 궁리하기 바쁜 이명박 정권을 꼭 동반자로 삼아야 했을까? 거기까지도 생각해 두었기에 그는 ‘내년 상반기까지’라고 미리 못 박아 두었을까? 하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야 할까? 노동 운동은 다른 사람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자신은 남들이 안 하려는 통일 운동을 정부와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황석영에게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황석영을 비난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반 정도는 그가 소설가로서 내게 준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영향 때문이다. 빚을 졌다고 해야 할까. 의리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반 정도는 맹목적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황석영에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나 <어둠의 자식들>, <사람이 살고 있었네> 같은 현장 글쓰기를 하던 그때 그 짱짱한 모습을 기대하기란 이미 오래 전부터 글러먹은 일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늙은데다가 이름값도 높다. 공룡이고 거장이며 누구도 무시 못하는 원로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깎이고 다듬어진 ‘명품’ 소설을 써서 책을 팔아먹는 것과 이름 있는 국제 문학 행사에 나가 그럴 듯한 발언을 하는 것뿐이다. 그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안타까운 일이다. 변절이란 꼿꼿이 서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홱 꺾어지는 것이다. 황석영은 변절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래된 나무처럼 서서히 말라비틀어져 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에 참여하는 작가로 이름 높았던 황석영이었지만 어쩌면 그는 ‘작가는 그저 작품으로 말할 뿐’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이제 작품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내년 상반기가 언제 올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까지 몇 명이나 더 죽어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칭 ‘중도론자’이면서 ‘유라시아 특임대사 내정자’인 황석영이 올해가 가기 전에 제발 이명박 정권의 품을 박차고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소문처럼 황석영이 노벨 문학상을 노리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벨 문학상은 매년 가을쯤에 발표된다) 황석영마저 유시민이 갔던 더러운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너무 슬프다. 내 이십대를 함께 보낸 작가들 몇 명 가운데 그는 늘 내 속에 가장 깊은 뿌리를 박고 있었고 한때 나는 그처럼 쓰고 싶어서 몸살을 앓았다. 보기 싫게 늙어 버린 첫사랑과는 만나고 싶지 않듯,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이명박 대통령 옆에서 업무를 보는 황석영은 차마 마음속에 그려 보기도 싫다.

그래서 그런지 며칠 뒤면 광주항쟁 29주년이라는 사실이 꼭 거짓말 같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글을 쓰던 황석영은 이제 이명박 정권의 월급쟁이가 되었다. 어둡고 낮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자들과 몸 섞어 가며 살다가 조용히 가 버린 시인들이 그래서 더 생각이 난다. 3년 전에 세상을 등진 박영근 시인과 2년 전에 간암으로 떠난 조영관 시인. 평생 동안 노동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두 시인의 시집을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펼친다.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 박영근

낡은 흑백 필름 속 같은 곳에서
쓸쓸히 늙어가는 내가 보인다

한편의 詩를 쓰려면
몇밤을 불면으로 때우는 나를
바겐세일도 하지 못해
백화점 문턱도 넘지 못하는 나의 상품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베스띠 벨리 막 화장을 끝낸 마네킹의 얼굴도 보인다

TV 뉴스 속에선 한총련 아이들 최루탄처럼 구호를 터트리고
내 귀엔 환청처럼 들리고
대낮 뜨겁게 타오르던 해가
페퍼포그 연기 속에서 복면을 한다

꽃들이 일제히 모가지를 꺾고 파업을 했는가

부러진 뼈와 두개골 사이로 새파란
억새를 키우고 있는 공장 위로
기억이 모가지를 부러뜨린 채
하늘을 향해 굴뚝을 세우고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그래 가자
가자
저 유월의 싱싱한 은행나무들이
시뻘겋게 녹슨 고철덩어리로 보일 때까지

내가 보는 뜨거운 한세상
– 조영관

순이야 무릇 맘이 거처하는 곳이 몸일진대
몸이 잠으로
노동으로 흩어지니
이 겨울, 잎사귀에 걸린 바람처럼 맘 또한
요사스럽게 건들거린다

그러나 해야 할 생각의 여벌이 많다는 것, 그게 생활의
독이 아니면 또 무엇이리
그래서 노동으로 고런 맘을,
주체하기 힘든
호사스러운 잡것들을 죽이는 것,
사는 것에
몸을 송두리째 맡기고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것,
그것 참 괜찮은 일 아니겠느냐

사는 것이 별거 아니다, 아니다, 수천 번 외치고
수천 번 까먹는 바로 그것,
희망 같은 것에 낭만 같은 것들에
헐레벌떡 기대어 휘둘리지 않고
맨살로
가만 숨죽여 비비적대는 것,
순이야 삶이란 통속적이어서 차라리 높고
엄숙한 것 아니겠느냐

하지만 순이야, 새벽은 여전히 새벽이라서
겨울바람 모서리 끝은 여전히 날카롭게
매워서
만만한 내 콧잔등이 그냥 울고
사는 것이 그냥 목숨이 아니라면 서리 맞은 나무가
왜 저리 서 있겠느냐

다시 말해 순이야 이 잿빛 새벽
어슬렁거리는 공장의 불빛 사이로
불빛 너머 자울자울 별빛 사이로
흔들거리는
저 공장 굴뚝 안개처럼
내 몸이
바람 따라 흔들 건들거리다
휘리릭,
몸이 휘뚝 쓰러지며
왈칵 더운 숨을 토해내는 바로 그 순간
몸이 드디어 말을 하는구나 하는 바로 그 한순간
내가 보는 뜨거운 한세상은
거기에 있지 않겠느냐
태그

황석영 , 광주항쟁 , 이명박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병학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ddd

    유시민이 갔던 더러운 길?
    당신은 그런 길이라도 갈 열정이 있는가?
    세 치 혀 나부랭이는 빼고...

  • 조롱박

    유시민 발꿈치라도 쫓아가면서 좀 진보인 척이라도 하든지...

  • 조롱박

    유시민 발꿈치라도 쫓아가면서 좀 진보인 척이라도 하든지...

  • 지나가다

    한심한 사람...거기다 유시민은 왜 갖다 붙이나...유시민 발뒤꿈치 때만도 못한 인간 같으니라구..쯧쯧...

  • 부끄럽다

    문단의 현실 부끄럽다.그곳은 썪어있고 가벼움과 성적분출구로,혹은 그전의 우리문학이 지녀온 역사성이나 품위 따윈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지 오래다.경박함과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들이 지배하는 게 오늘 문단의 현실이다. 그 속에서 고은의 정치행보역시 준비된 욕망이었나본데... 안타깝다. 내 보기엔 오바다. 통일이 되기 전에 적어도 이 나라에서 노벨 상은 나오면 안 된다.

  • 잘 나가다가 막판에 유시민, 휴 ~
    근데 황작가님은 틀리신듯.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나 할까

  • 그냥

    저는 이명박과 한나라당만 지지안해도 기회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민노당지지하는데 손학규나 정동영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사람들이 서로 씹고 서로 죽어라고 싸워도 좋은쪽으로 모두가 결국은 원하는게 뭔지 생각은 하고 싸워서 서로 상처는 받지는 않았음 좋겠어요 그래 나 씹을수 있지 저입장에서는 그래 저렇게 생각할수도 있어 저생각에서는 뭐 그런거 노동계든 운동하는 사람들이 황석영 욕하는건 제가 보기엔 너무도 당연하거고 어쩌면 좋은 현상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쪽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버티고 있어줘여 무엇이 원칙인지도 있지 않겠지요 근데 좁아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자그만 바램이 있어요 저는 이제서야 조금 알았지만 정치든 운동이든 다 사람이 하느거라 사람마음이 달려있는거더라구용~~~~ 하여튼 이독재를 헤쳐나아가는 정면으로 대면하는 노동계 힘내세요~~~~ 투쟁!

  • 그냥

    시대가 힘들어지면 가장 당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힘내세요 그렇다구 구석으로 내몰린다고 이상해지면 안되구요 뭔말인지 아시지요 하여튼 날카로운 이성과 뜨거운 심장을 항상 챙기구요 건강챙기구요 홧팅!!!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