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화 없이 농성 풀 수 없습니다”

현대차 농성 조합원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들어왔다”

“농성이 우발적인 것 같지만 우린 이미 마음속에 파업을 심고 있었습니다. 정규직화라는 단어가 없으면 농성을 풀 수 없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발적인 농성이 시작됐다. 그래서 농성장에 가장 기본인 은박매트 같은 깔판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터질 일이 단 며칠 당겨졌을 뿐이었다. 현대차 사쪽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공장 점거 농성은 시트사업부 동성기업 폐업 사태가 원인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NO’라고 대답했다. 이미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의 파업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것이다.

합동취재팀이 만난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공장 라인을 멈추지 않고 7월 22일 대법이 판결한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이미 2006년 처절하게 졌던 기억이 대부분 남아 있어 이번 공장 라인 점거 사태가 뭘 의미하는 지도 알았다. 경로는 단 두 가지였다. 죽기 아니면 정규직화 되기.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였고 비정규직이라는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를 맞고도 계속 참는 것은 장한 정신이 아니었다.

그이들에게 죽는 일은 공장안에서 처절히 두들겨 맞고 끌려 나가 해고가 되는 것이고 살아남는 일은 대법원이 판결한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고 정규직이 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다른 해결책은 없고 ‘우리 회장님은 정몽구 회장님입니다’ 투쟁이라는 것이다.

나흘째 이어진 1공장 점거 농성장은 평온했지만 540여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쟁터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식은 컵라면에 가끔 김밥을 먹고 있고, 잠자리는 미리 은박매트나 침낭을 준비하지 않아 맨 바닥에 비닐과 박스를 깔고 잔다. 화장실도 하나밖에 없어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큰일을 치를 수 있다. 그러나 농성장 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인터뷰를 하자면 처음엔 빼다가도 어느 순간 8~10년 동안 겪은 자기 설움과 분노를 쏟아냈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이번 농성의 결론은 정규직화 밖에 없다”는 말에 다다른다. 한 치라도 다른 해결책이나 타협으로는 농성장을 결코 떠나지 않겠 다고 강조한다. 정규직화라는 단어가 합의문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절대 나가지 않는다는 말은 우발적으로 일어 난 농성 같지만 이미 마음속에 파업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본 게임에 들어가 있다는 말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로 8년을 일한 A씨는 어제 밤새 2층 농성장 불침번을 하느라 막 잠에서 깬 상태였다. 그에게 가장 서러웠던 일은 작업을 하다 불량이 나면 직영에겐 회사가 웃으며 넘어갔지만 업체 비정규직에겐 첫마디가 ‘이 새끼 저 새끼가 먼저 나왔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A씨는 “업체 사람들은 대부분 더 더럽고 시끄럽고 무겁고 그런 일을 하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반도 안 된다. 현대차는 ‘너희가 뭐? 너희 같은 게 뭘 한다고’ 그런 식이다. 이번에도 폭력으로 정리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봤겠지만 잘못 본거다”라고 말했다.

A씨는 “이번 파업의 승리의 조건은 조합원들이 대오에서 이탈하지 않게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가고, 싸워나가는 것만이 승리의 조건이다. 정규직 조합원의 힘도 필요하고 외부의 연대도 필요하지만 대오가 사라지면 큰 도움 받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냐”며 농성과 파업유지를 강조했다.

A씨는 “시트 사태가 이번 투쟁의 시발점이라고들 하는데 시트는 시발점이 아니다. 이미 파업은 정해져 있었고 시트 상황이 생긴 것 뿐”이라며 “조합원들은 이미 파업을 마음에 먹고 있었다. 그런데 시트에서 옷과 신발이 벗겨지고 끌려가는 것을 보고 분노가 터졌다. 이미 마음속은 파업으로 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조합원들이 용역과 경비에게 맞고 쓰러지면서도 이렇게 버티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제 우리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언제까지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겠는가. 비정규직은 자본이 만든 말이고 대물림을 할 수 없다. 비정규직은 우리까지 만 하고 더 이상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며 “생산직 근로자는 라인을 정지시키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 라인을 막고 생산량을 줄이게 하는 것이고 그 자리가 우리 일자리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라인을 정지시키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현장을 이동하고 파업해도 더 견고해 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김성욱 1공장 사업부 대표가 17일 정규직들인 연대방문을 한 자리에서 투쟁 결의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자료사진]
A씨는 비정규직 지회에는 “우리는 더 이상 2006년처럼 힘을 못 쓰는 비정규직이 아니다. 어떤 회유나 협박에도 굴하지 말라”며 “조합원이 처음 시작한 그 마음으로 믿고 따를 테니 승리할 때까지 나가라. 이왕 시작된 싸움 물러날 곳도 없으니 즐거운 싸움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A씨에게 이번 목표는 너무 단순했다. “목표요. 정규직화요. 시트부터 징계해제하고 연행조합원을 석방하라는 그런 요구안이 아닙니다. 정규직화라는 말이 없으면 저희는 농성을 풀지 않을 것입니다. 택도 없는 일입니다. 여기 올라온 조합원들 있잖아요. 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올라왔습니다. 어영부영 무너져서 나가면 저희는 일자리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이 없습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로 7년을 근무한 B씨는 다른 조합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던 주변 조합원들 중 나이가 적어 대표로 인터뷰에 응한 그도 이번 투쟁의 끝은 당연히 정규직화였다. 그는 말도 느리고 질문을 하나 하면 한참을 생가하다 대답했지만 답은 단호했다. B씨는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마지막 기회”라며 “정규직화가 아니면 다른 답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B씨도 이번 농성을 두고 “원래 파업 계획이 있었고 시트 사업부 사태로 일이 커졌다”며 “정규직 노조도 같이 도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아직까지 적극적이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B씨도 “비정규직은 더 많은 일과 더 힘든 일을 하는데도 임금과 복지에 차이가 난다. 불량부분에 대해 업체랑 정규직에 대하는 게 다르다. 정규직은 아무렇지 않지만 업체가 하면 시끄러워 진다”고 서러움을 토로했다.

점심 사수조에 속해 계단 앞에서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던 C씨는 대법 판결이후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05-06년 투쟁은 처음 시작단계라 실패 했던 것 같다. 이번 대법 판결을 계기로 가입하다보니 그만큼 힘이 커진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동성 기업 사태는 사측에서 비정규직 노조를 와해 하려고 업체를 바꾸는 것이다. 조합탈퇴가 계약조건이다. 그 다음은 해고다. 그런 방식을 전 공장에 걸쳐 추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C씨는 “동성기업 사태든 뭐든 모든 건 정규직화가 되면 끝난다. 이번에 동성기업 조합원들이 박살나면 시트 2부 업체부터 줄줄이 물갈이 되고 정규직이 되기 전에 길거리로 내쳐질 것”이라고 봤다. 자신도 처음 해보는 투쟁이지만 C씨도 이번 투쟁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싸운다. 그는 “여기 처음 농성 들어 왔던 1200명 마음이 요번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싸운다”고 밝혔다.

  17저녁 1공장 농성장에서 열린 투쟁 보고 대회

입사 8년차인 D씨는 형광등 빛이 없는 조금 어두운 곳에 앉아 쉬고 있었다. D씨에겐 조합원들이 왜 이렇게 물러설 생각들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상황 자체가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투쟁이 다음에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대법판결이 휴지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여기 계신분들 작게는 4~5년 일하고 길게는 10년이나 일 했습니다. 오랜 기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정규직이 기피하는 작업 다하며 월급은 반도 못 받았습니다. 우린 더 이상 이렇게 못삽니다. 정규직화해야 합니다. 지금은 모 아니면 도인 상황입니다. 이기면 정규직 되고 사람답게 사는 거고 지면 끝나는 겁니다. 회사가 손을 들던지 우리가 손을 들던지 해야 합니다”

D씨에게 용역들에게 맞아 끌려 나올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불안하죠. 만약 뚫린다면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 죽더라도 싸워봐야죠. 뭐 죽기야 하겠습니까.”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농성 노동자들의 각오와 집념은 돌덩이 같았다. (울산=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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