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한테 전화 했더니만, 혹 나오게 되면 공장 앞에 돗자리 깔고 노숙농성이라도 하라더라. 자기가 밥해 날라 준다고.”
“애한테는 그냥 아빠 회사 다닌다고 했어요. 혹여 애가 유치원에 가서 ‘우리 아빠 자동차 회사 다닌다’고 말했는데, 나중에 비정규직인 걸 알게 되면 상처받을까봐…….”
모두 현대차 점거농성에 참여한 비정규노동자들의 말이다.
가족대책위 부대표 김경자 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울산에서는 비정규직이라면 처녀들도 싫어하고 은행에서 대출도 잘 안 해 준다.” 남성 노동자의 경우 그들의 “부인들도 직영(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잘 못 어울린다.”
이런 풍경들의 꼭대기에는 임금과 노동자 권리, 노동조건을 넘어 결과적으로 인간의 자존감과 삶까지 중간착취하는 간접고용이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이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을 때, 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책정하면서 차액을 원청과 하청이 나눠 갖는다.
“시트 쪽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입사했다. 처음에는 중소기업보다 공장도 깨끗하고 작업환경이 좋아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정하고 돈 좀 모아 보겠다고 잔업, 특근, 반대조 지원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규직이 하기 꺼리는 일도 하청노동자가 했다. 2년을 그렇게 했는데도 나중에 보니까 모은 돈이 얼마 안 됐다. 게다가 울산이 물가가 비싼 편이다. 저는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일을 하니까 몸만 축났다.”(8년차 사내하청 노동자 B씨)
따지고 보면 파견업체들은 실제 권한은 갖지만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원청기업 대신에 노무관리를 하는 것이 주된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관리비는 원래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받아야할 돈에서 나간다. 겉으로는 마치 원청기업이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 처럼. 하지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협을 요구하면 하청업체는 아무런 힘이 없고 원청에게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업체폐업, 계약해지로 해고 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랬고, 이번 현대차 사내하청 동성기업이 그랬다.
실례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등의 단체가 비정규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5~6월에 조사한 ‘2010 간접고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조합이 매우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66.1%, ‘고충이 있을 때 도움받기를 희망하는 곳’을 노동자 조직(노조 등)이라고 답한 비율이 43.9%, ‘노조에 미가입한 이유’로 회사 측의 반대와 불이익이라고 답한 비율이 34.0%로 각 문항에서 이 답변들이 모두 가장 많은 비율을 나타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간접고용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중간착취 배제’를 무너뜨린 파견법을 비롯한 간접고용은 이렇게 기업이 노동자와의 사이에 하청업체를 끼워 넣으면서 원래 노동자에게 가야할 임금을 중간에서 나눠 갖고, 권한은 가지되 책임에 눈감고, 눈에 보이는 차별로 자존감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 연결고리가 되는 하청업체는 실체가 없다.
“하청업체 직원이라면… 사장, 소장, 경리 그리고 AB조 반장이 있죠. 하청업체는 다 그래요. 노동할 때 사용하는 마스크, 장갑, 안전화 등등 보급품도 원청에서 타서 쓰는 형태고, 임금도 사실은 원청에서 결정하는 거고, 뭐 딱히 회사 운영이랄 게 없죠.”(8년차 사내하청 노동자 B씨)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다녔다는 회사는 실체 없이 종이서류에만 존재하고, 별다른 자본이나 기술력은 필요 없이 상품이 아니라 사람을 공급하는 회사였다. 오죽하면 현대차 사내하청에 ‘수궁 해물탕’ ‘렛츠고 분식’이라는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한 업체가 있었을까.
자신들이 다닌 회사가 현대자동차가 아니라 ‘수궁 해물탕’ ‘렛츠고 분식’이었다니, 그들이 느꼈을 박탈감은 어쩔까. 하지만 그들이 중간에서 빼앗긴 자존감의 사례는 더 있었다.
“예전에 사내하청에서도 정규직을 일정 비율로 뽑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것도 비율이 4:6으로 밖에서 신규채용하는 비율이 더 높았어요. 그때 당시 우리 업체가 80명 정도 됐는데, 겨우 2~3명이 정규직으로 전환 됐죠.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고 짬밥이 늘다 보니까, 그 2~3명도 업체 소장이 추천을 해줘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죠. 그러니까 소장한테 잘 보여야 정규직이 될까 말까 하는 거에요. 아무리 자격증을 많이 보유하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죠. 저 사람이 어떻게 정규직이 됐을까 싶은 사람도 많아요. 진짜로. 컨베이어벨트를 타니까 일하는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그리고 하청업체 관리자가 아는 사람을 정규직으로 넣으려고 미리 업체에서 일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6년차 사내하청 노동자 A씨)
“당시 하청에서 정규직을 뽑을 때 기준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74년생이면 근속 2년 이상’ 형식으로. 그런데 어느 날 직영 형님이 ‘너 돈있냐?’고 물어봐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가 원청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왜 돈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정규직이 되려면 로비도 해야 하니까 돈이 든다’고 해요. 그때 형님이 얘기한 금액이 2천만 원이었요. 사실 2천만 원을 주더라도 하청으로 계속 일하는 것보다 그게 더 낫죠. 빚을 내더라도 3천만 원 주고 정규직 될 사람 많을 겁니다. 내가 그때 2천만 원만 있었어도…….”(8년차 사내하청 노동자 B씨)
이렇게 기업이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타인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이용하는 간접노동이 단순히 해당 노동자의 임금과 권리, 노동조건만을 중간에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그 결과 노동자 자신과 가족의 총체적인 삶까지 빼앗아 갔다.
“자동차에서 일한다고 하면 어딜 가나 사람들이 물어봐요.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사회적인 열등감이 심했죠. 그러다 결혼해서 애 하나 낳으니까 생활이 쪼들려요. 정규직하고 비교했을 때,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왜 내 아내와 내 자신이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지… 제 아내가 친구들 모임이나 계모임에 나가면 친구 남편은 정규직인데 저는 비정규직이니까 기죽어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봤었요. 그리고 애한테는 그냥 아빠 회사다닌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뭐라고 얘기할 지 많이 망설였어요. 혹여 애가 유치원에 가서 ‘우리 아빠 자동차 회사 다닌다’고 말했는데, 나중에 비정규직인 걸 알게 되면 상처받을까봐……. 정규직은 아이들한테 영어다 과외다 해서 많이들 가르치는데 우리는 일반 학원 한 두 개 보내는 것도 빠듯해 교육을 많이 시키지 못하니까 화가 나는 거죠. ‘왜 이렇게 차별을 받아야 하나’ 싶은데도 또 막상 나이 먹고 밖에 나가면 마땅한 일자리가 없고, 그러니까 한탄 속에 빠지는 거죠.”(6년차 사내하청 노동자 A씨)
최근 현대기아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한 입찰에서 밝힌 현금성 자산이 12조원 대다. 현대자동차는 한 해 2조원대의 이익을 남긴다.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는 100여 개가 넘는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는 한탄 속에 빠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이윤과 한탄은 다 어디서 시작 됐을까.
“‘PD수첩’에 사측 인터뷰하는 거 보니까, ‘도급은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조선, 철강, 전자 등등 산업 전반에 걸쳐있다’면서 얘기하던데, 결국 그 얘기는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거다. 도둑놈을 잡아 놨더니 ‘왜 나만 잡냐. 이 놈도 도둑놈이고 저 놈도 도둑놈인데’라며 따지는 격이다. 아니 현대차 그렇게 법 좋아하더니 이제 와서 법 무시하고 ‘나만 갖고 그래’가 말이 되나.”(6년차 사내하청 노동자 A씨)
농성장 한켠에 한 노동자가 써 붙인 문구가 그들의 목소리를 가득 담아냈다.
‘우리의 삶은 너희의 이윤보다 소중하다.’
(울산=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