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조계사 마당에는 가사장삼을 입은 스님들과 남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앉았다. 종교계 최초로 종단 직속으로 설립된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초대해 개최한 무차대회가 열린 때문이다.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노동현안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찾을 것을 약속했던 자승스님은 지난 21일 ‘조계종 노동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령’을 제정 공포했다. 이후 27일에는 노동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무차대회에서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 공양을 나누며 노동현안과 노동자들의 고충을 듣고 이후의 활동 방향을 결정한다.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양한웅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는 “종교계를 통틀어 종단 직속에 생긴 첫 노동위원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무차대회를 “조계종단의 본산인 조계사에서 조계사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초청해 함께하는 행사”라는 사실을 짚으며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향후 노동운동 진영에 작지 않은 도움과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차대회는 22번의 타종으로 시작됐다. 쌍용자동차에서 희생된 22명의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22번의 타종엔 쌍용차지부와 재능교육지부를 비롯한 각 투쟁사업장의 대표 22명이 올라 의식을 진행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은 “그동안 불교계가 사회의 아픔을 함께해야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었다”며 “노동위원회가 노동현장의 신음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위로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상시적 기구가 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지금 우리사회는 최선을 다해 일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오래 일한 직장에서 쫓겨나 죽음에 이르는 불평등의 시대”라며 “지금이야말로 생명과 노동이 평등하다는 무차대회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앞장서 뜻있는 종교계 인사들이 더욱 노동현안에 관심을 갖고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며 조계종 노동위원회의 역할을 당부했다.
무차대회의 저녁공양 배식은 자승스님과 도법스님, 노동위원장인 종호스님 등 조계종의 스님들이 직접 맡았다. 조계종 스님들은 직접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함께 식사를 하며 노동 현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노동위원회 설치와 무차대회가 노동자들의 마음에 큰 위로와 격려가 됐다”고 전했다. 김정우 지부장은 “노동위원회가 앞으로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노동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며 조계종 노동위원회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노동위원회의 앞으로의 활동방안에 대해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주로 당면한 노동 현안과 투쟁현장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힘이 될 수 있는 활동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고 밝혔다. 조계종 자성과쇄신 결사추진본부와 노동위원회는 향후 100일 도보순례 등의 일정을 기획하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무차대회에서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올리는 서원문’을 발표했다. 서원문은 “소외된 노동자 이웃을 초청하여 함께하는 무차대회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존중, 보호하여 소박하고 정의로운 삶이 빛나는 평화 공동체를 가꾸는 불교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밝혔다.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모든 이에게 차별이 없는 무차대회의 정신을 살려 소외된 노동자와 이웃들에 부처의 자비를 전달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