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노동철폐운동의 승리는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이미 전체 노동자들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10% 가까운 청년실업자, 또한 80%가 넘는 1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지지와 스스로의 권리선언이 중요하다. 불안정노동철폐를 위해 대다수 노동자가 권리를 깨닫고 각자의 공간에서 불안정노동철폐를 위한 실천을 조직하면서, 그 실천이 연결되는 광범위한 힘이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
더 많은 대중이 권리의식을 갖게 하기
불안정노동자들이 권리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은 지금 일자리를 잠시 지나치는 일자리로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하며 차별과 어려움에 눈을 감는다. 불안정노동을 자기 책임으로 떠미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부터 권리에 눈뜨기 시작한다. 이제 ‘불안정노동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일하는 이들이 권리의 주체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런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와 개인의 자발적 연대체)에서는 ‘불안정노동자 권리헌장운동’을 시작했다. 세계인권선언이 각국 인권의 기준점이 된 것처럼, 일하는 이들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만들고자 시작한 운동이었다. ‘불만집담회’나 SNS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 소리질러’ 등의 활동을 통해 일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이 권리헌장 안에 담고자 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권리헌장을 대중이 자신의 권리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대중과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광범위한 불안정노동자 대중과 만나는 기회와 조건이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불안정노동자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우선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 현재 대중매체에서 만나는 불안정노동자의 모습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사회의 낙오자이거나 아니면 투사의 이미지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대중과 만나는 매체를 많이 활용해야 한다. 어린이책 작가들이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라는 책을 통해 어린이들과 만나듯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의자놀이’를 통해 대중과 만나듯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불안정노동자들의 현실과 권리의식을 밝혀나가야 한다.
투쟁에 연대하는 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재조직하기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대중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우선은 접촉이 가능한 곳에서부터 권리의식을 확장하고 주체의 틀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들은 바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다양하게 연대하는 이들이다. 많은 이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의 85크레인으로 향했다. 그중에는 조직된 노동자들도 있지만 ‘개인’들도 있다. 연대 과정에서 자신도 다른 처지가 아님을 깨닫고 자기 노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이들이다. 이러한 연대의 흐름은 쌍용자동차에서도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연대세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불안정노동자임을 깨닫고, 자기 공간에서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함께 연대하는 이들이 자기 노동권을 생각하고, 권리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기획이 필요하다. ‘희망버스 돌려차기’에서 ‘희망과 연대의 날’을 통해서 연대하는 이들을 중심에 세운 집회를 하기도 하고, 쌍용자동차에서 ‘talk, talk, talk’라는 길거리 강연을 통해 연대하는 이들이 자기 삶을 돌아보게도 했다. 쌍용자동차나 희망버스에 함께 했던 생활협동조합이나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자기 공간에서 비정규직문제를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기독교사회연대네트워크나 조계종 노동위원회 등도 쌍용자동차나 재능교육 등의 투쟁에 함께한다. 단지 투쟁을 응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계 내부나 신자들 중의 비정규직에도 관심을 갖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역할도 하려고 한다. 이처럼 불안정노동의 문제가 사회 전반의 문제로 다뤄지고, 그 문제를 고민해왔던 이들이 각자가 속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에 저항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자본은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학교를 기업화하고, 높은 등록금으로 학생들을 괴롭힌다. 지역에 파고들어 작은 가게들을 무너뜨린다. 대기업들은 하청에 압력을 행사하여 납품업체들을 수탈한다. 동네를 철거하고 재개발하는 것도 기업이다. 규제를 없애서 환경을 파괴하는 골프장을 짓고, 원자력 발전을 채근한다. 이러한 기업의 전횡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철거민들, 구럼비 바위를 지키는 평화운동가들과 지역 주민들, 골프장 건설과 원전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이렇게 저항하는 이들과 투쟁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어야 자본에 대한 포위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지고, 사회적 힘이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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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KY-ACT가 만들어졌다. “노동자가 하늘이고, 구럼비가 하늘이고, 쫓겨나는 이들이 하늘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용산과 강정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모였다. SKY-ACT는 국가폭력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폭력도 문제이지만 결국 이것은 모두 자본의 폭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윤만을 위해서 자연과 사람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본에 맞서는 공동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공동의 행동이 만들어질 때, 그동안 앞장서서 투쟁해왔던 불안정노동자들이 중심에 서야 한다. 그럴 때 무수히 많은 제도적 문제, 공권력의 문제 등 복잡한 현안들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자본의 전횡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자본을 고립시키는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중심축 만들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역별·부문별로 다양한 비정규직 관련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역과 부문에서, 그리고 다양한 개인들의 모임을 통해서 불안정노동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하는 더 많은 모임과 네트워크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불안정노동자들을 구석구석 만나고, 현장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토론도 하고, 교육도 하면서 불안정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임은 고립 분산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야 활동이 소통되면서 힘을 더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모임의 연결은 네트워크 구조를 가질 때 더 힘을 가진다. 비정규노조, 종교계, 지역비정규센터, 무슨무슨 협회, 학부모 모임, 비정규직단체, 문화예술인, 인권단체, 개인, 불안정노동자들의 권리찾기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이 만들어지고, 그 모임이 활성화되도록 촉진하는 데에 이것을 묶는 단일 형태의 조직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느슨하면서도 열정을 공유하고, 불안정노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와 같은 상시적인 네트워크가 각 모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구조로 적합할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에는 중심축이 있어야 한다. 더 많은 불안정노동자를 만나는 대중적인 기획사업도 하고, 각 모임의 활동을 공유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기획투쟁을 통해 각 모임의 힘을 집약시킬 수 있어야 한다. 희망버스가 그동안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의 힘을 큰 힘으로 집약했듯이, 이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기에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력과 핵심대오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단체 활동가들이거나 정규직 조합원이거나, 혹은 그저 개인인, 그러나 ‘불안정노동철폐’를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이런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자신이 하는 역할 ‘외’에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한 각종 기획사업과 활동을 적극 함께할 수 있는 동지들이 어느 정도 규모로 모여야 힘이 된다. 불안정노동철폐를 원하는 동지들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와 같은, 네트워크의 핵심대오를 구성하는 데에 적극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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