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청문회 “해결된 것 없다”...국정조사 열 수 있을까?

국정조사 실시 여부...“새누리당 의원들이 오늘 약속 잊지 않았으면”

쌍용차 청문회가 열렸다. 거리에서나 상영되던 경찰의 진압영상이 국회에서 상영됐고, 여야 의원들은 조현오 전 청장과 이유일 쌍용자동차 대표에게 책임을 추궁했다. 청문회는 두 번의 정회를 포함해 1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러나 길었던 청문회가 끝나고, 해결된 것은 아직 없다.

청문회에선 많은 쟁점에 논박이 오갔다. 정리해고의 원인이 됐던 회생방안과 구조조정, 77일 옥쇄파업 당시 발생한 국가폭력, 이후 발생한 죽음과 심리적 외상까지. 20일 청문회에서 오갔던 이야기와 청문회로 도출된 향후 과제를 정리했다.

쟁점 1. 하루 아침에 급전직하 한 쌍용차의 자산가치

청문회에서 가장 많은 논박이 오고간 부분은 쌍용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원인이 됐던 안진 회계법인과 삼정 KPGM의 ‘회계조작’에 대한 추궁이었다.

쌍용자동차는 2008년 3사분기 자산평가액이 1조 3천억원대 였으나 몇 달 지나지 않은 2월에 공개된 안진 회계법인의 쌍용자동차 자산평가액은 8600억 원이다. 그러나 며칠 뒤 3월 10일에 다시 한국감정원으로부터 1조 3천억 가량의 자산가치를 평가받았고, 20일 뒤엔 뒤 삼정 KPMG와 법정관리인은 다시 쌍용차의 자산가치를 8600억 원으로 평가했다. 한 달여동안 자산가치 평가액이 5천억 원 가량 널뛴 것이다.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를 의도된 ‘회계조작’으로 ‘기획부도’를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산가치를 평가절하 해 회사의 위기상황을 연출하고 이를 통해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획득하려한 ‘회계조작’이라는 주장이다.

안진회계법인의 이상근 전무이사는 안진이 쌍용자동차에 자산가치 감액을 제안한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 자산가치의 변화로 쌍용자동차의 부채비율은 561%로 급증했고 당기 순이익은 282억 원 적자에서 7천억 원대의 적자로 급락, 순식간에 법정관리가 필요한 부실기업이 됐다.

쟁점 2. 두루뭉술한 출처표기로 데이터 신뢰도 제고

삼정 KPMG는 2009년 3월, 쌍용자동차 경영정상화 검토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극히 낮다는 데이터를 근거로 들었다. HPV로 표시되는 생산성 통계에서 쌍용자동차는 경쟁업체인 현대, 기아차보다 낮은 생산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삼정은 이 통계가 미국의 유명 경영 컨설트 회사인 올리버와이먼 사의 하버리포트에서 밝혀진 통계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하버리포트에는 쌍용은 물론 현대, 기아 등 국내 자동차 회사의 HPV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삼정이 보고서에 인용한 HPV 수치는 회사가 자체 조사 보고한 데이터다. 민주통합당의 김경협 의원이 제기한 이 데이터 조작 의혹에 대해 삼정 KPMG의 윤창규 상무이사는 “실무진의 실수로 출처표기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법원과 언론에서 이 보고서를 검토할 2009년 당시에는 이 수치가 세계 유수의 경영 컨설트 회사가 보장한 수치인 것으로 통용됐다.

윤창규 이사는 “출처표기에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데이터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HPV가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산출한 수치인데다 회사는 자신들이 산출한 수치를 토대로 작성된 보고서를 다시 정리해고의 근거로 이용했다.

더구나 청문회에선 HPV의 무차별적 적용이 노동 생산성을 그대로 표시한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참고인으로 청문회에 나선 정명기 한남대 교수는 “차종과 공장의 모듈화 정도, 노동자들의 숙련도에 따라 HPV는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기업과 기업 간의 단순한 HPV 비교는 설득력이 없다”고 증언했다.

결국 삼정과 쌍용차 사측은 설득력 없는 데이터를 신뢰도가 떨어지는 조사를 통해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설득력 없는 데이터’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근거로 작용했다.

[출처: 국회방송 캡쳐]

쟁점 3. 조현오 ‘망언록’과 경찰폭력에 대하여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은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제시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당시 촬영된 자료들이다. 자료에는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과 구타장면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노조원들에게 벽돌을 던지는 경찰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경찰의 불법적인 폭력은 없었으며 오히려 노조의 폭력 때문에 자신을 비롯한 경찰들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조현오 전 청장은 “테이저 건을 얼굴에 쏘아도 되냐”는 무소속 심상정 의원의 질문에 “빗 맞은 것”이라고 답했다. 장하나 의원이 제시한 경찰의 벽돌 투척 사진에 대해서는 “벽돌을 줍는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조현오 전 청장은 끝끝내 당시 경찰은 불법적 폭력을 시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77일간 노조에 의해 폭행을 당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책상을 내리치며 분노를 표시했다.

한명애 민주통합당 의원은 당시 강제진압으로 감옥에 가거나 유명을 달리한 이들이 있는데 사죄하는게 맞지않냐고 물었으나 조 전 청장은 “국가정체성에 위배된다”고 답했다. 끝내 당시의 진압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청문회가 열리는 당일, <한겨레>는 경찰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어 당시에 노사가 합의를 목전에 두고 있었으나 조 전 청장이 이를 알면서도 진압을 강행했다고 보도했다. 이가 사실이라면 조 전 청장은 원만한 해결을 방해하고 작금의 사태를 유발한 주범으로 지목될 수 있다. 당시 노조 지부장을 맡았던 한상균 전 지부장도 이를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조 전 청장은 타결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과 과정이 다르다”고 증언했다. 조 전 청장은 “노조가 정리해고 완전철회 주장을 고수하면서 협상이 결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한 전 지부장의 증언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장하나 의원은 “조현오 청장의 모든 증언을 하나하나 복기해 위증을 입증하고 국정조사에 다시 출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오 전 청장은 청문회 참석한 증인들을 대표해 위증을 하지 않고 위증하면 벌을 받겠다는 선서를 했다.

쟁점 4. 참여정부와 MB정부, 책임은 어쨌든 정부에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참여정부를 향한 책임 추궁의 목소리도 높았다. 주영순 새누리당 의원은 “문제의 발단이 된 상하이기차가 들어오던 당시의 산자부 장관인 정세균 민주당 의원과 당시 산업은행 총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도 “참여정부가 상하이기차에 특혜를 주면서 이 사태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상민 의원은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상하이기차 관계자를 만나서 “‘상하이기차가 쌍용차에 투자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형의 발언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가 특혜를 줘서 상하이기차가 기술을 유출시키고 먹튀할 수 있었고, 이를 현 정부가 방조해서 쌍용차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참여정부와 현 정부가 공통적으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태 의원은 “상하이기차의 쌍용차 인수 당시 사회 전반에 상하이기차가 기술유출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참여정부가 반대를 무릅쓰고 상하이기차의 쌍용차 인수를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당시 공기업화와 파산, 상하이기차의 인수 등 여러가지 방안이 논의 됐지만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작은정부’를 추구하며 공기업화를 극구 반대해 상하이기차의 인수가 불가피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모두 그 크기를 막론하고 전 정부든 현 정부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원인을 제공한 것은 참여정부지만 이를 방조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현 정부라는 것이다.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은 “전 정부든 현 정부든 어쨌든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은 공적자금 투자와 생활안정비용 지원 등 정부차원의 역할과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쌍용차 문제가 한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노동과 인권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는 점에 여야 의원들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출처: 국회방송 캡쳐]

국정조사 할 수 있을까

여야 의원들은 모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부와 국회가 사태해결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 대안은 사뭇 달랐다. 야당의원들은 모두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하루 만에 끝나버리는 청문회로는 쌍용차 사태의 진상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도 끊임없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청문회에는 코웬카 마힌드라 사장과 박영태 전 대표이사가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문회는 이들의 출석을 강제할 수 없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은 증인들의 불출석을 성토했다. 심상정 의원은 “인도까지 찾아가서라도 마힌드라 관계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조사를 실시하면 법적 구속력을 갖고 보다 심도있는 진상조사가 가능하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시민사회는 그동안 청문회뿐 아니라 국정조사를 요구해왔다.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 자리에서 국정조사 개최 합의를 요구했으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명확한 답을 내지 않았다. 신계륜 환노위원장은 “여야 간사가 빠른 시일내에 합의하라”고 지시했다.

청문회가 열리기 전부터 환노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새누리당에 국정조사 개최와 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당론이 결정되지 않았고 환노위 내 초선의원들이 많아 특위 구성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청문회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정작 ‘국정조사’라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청문회가 끝났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없다. 국정조사를 비롯한 더욱 본격적인 조사와 해결노력이 없으면 얼마 안남은 대선 국면에 쌍용차 사태는 국민적 관심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당장 안철수 교수의 대선 출마를 하루 종일 속보로 다뤘던 방송 3사 중 어느 곳도 청문회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장하나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오늘 한 지속적인 노력의 약속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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