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새잎 깃발

[식물성 투쟁의지](43) 2006년 4월 26일, 삼성 SDI 규탄 울산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연둣빛 새잎에 어울리는 건 바람뿐만이 아니다
한 없이 이쁘기만 한 나이에
거리로 내쫒긴 삼성SDI 젊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풋풋한 봄빛처럼 연둣빛 새잎과 나란히 섰다
참 다정한 이웃들이다

금속노조 곤색 조끼 위로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머리띠를 둘렀다
마스크와 목장갑을 끼고 피켓을 들었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구조조정 분쇄하고 가자! 현장으로”
바람에 자신의 온 생을 싣는
저 수천 수백의 연둣빛 새잎의 참 다부진 몸짓들
봄빛에 빛났다

출퇴근길로만 유용했던 거리에서
연둣빛 새잎은 어느새 주목 받는 생이 되고 있다
잘나고 강해서가 아니라
삼성 자본의 폭력과 미행 감시
가족까지 찾아가 회유하고 협박하는 탄압 속에서도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흰 이를 드러내며
동지를 향해 웃는 저 모습이
“오늘은 투쟁 내일은 해방”
우리 동지 힘들다고 피켓으로 바람을 부쳐 주는 저 몸짓이
이 세상 밖의 것이기 때문이다

거리와 전투에서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동지를 향해 함께 웃는
저 수천 수백의 연둣빛 새잎이 만들어내는 빛의 만개,
삼성SDI 젊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서로를 향한 저 다정한 몸짓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서로를 향한 저 친절한 웃음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이미 다른 세계를 이루고 있다

2007년5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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