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위한 대통령을 꿈꾼다

[기고]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부쳐

매년 돌아오는 세계인권선언기념일. 올해는 어느 해보다 많은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모양이다. 지난해와 올해 전국 십여 개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권도시를 표방하며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인권관련 기구들을 설립했으니 그 규모와 활동과 상관없이 첫 번째 맞이하는 세계인권선언일에 작은 행사라도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전국 40여 개 인권단체들의 유일한 네트워크인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는 기자회견 장소로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을 택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해 싸우는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족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의 중심부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이다.

쌍용.강정.용산의 연대 SKY_ACT에 탈핵운동이 함께하면서 SKYN_ACT가 되어 지난 10월 5일 제주 강정마을을 출발, 전국 40여 개 도시 30여 곳의 투쟁현장과 연대한 ‘2012 생명평화대행진’의 결과물이 바로 함께살자 농성촌이 아닌가.

함께살자 농성촌은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과 행정당국의 강제철거 위협 속에서도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의 40일이 넘는 단식, 올 겨울 첫 번째로 철탑 농성을 시작한 울산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최병승, 천의봉과 쌍용자동차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의 평택 송전탑 고공농성, 24시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팔이 꺾이고 살이 패여도 다시 레미콘을 막아서는 강정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은 함께살자 농성촌이 서울의 중심부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이유가 된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함께살자 농성촌은 매일 선전전과 희망행진, 주 1회 이상의 문화제와 잔치, ‘함께살자 시민증’발급(skyact1103@hanmail.net로 신청), 함께살자 팟캐스트 방송 ‘시청역2번출구 (http://exit2.iblug.com)’ 등을 진행하며 매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세상의 모든 관심이 대선후보들과 그 측근들에 집중되고 있는 시기,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말해주지 않는 이들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세상에 외치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함께살자 농성촌이다.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하던 일을 하고, 살던 곳에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

용산참사로 여섯 명의 목숨이 불에 타 세상을 떠났음에도 성공한 진압이라고 추켜세우며 반 년 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현장에 더 잔혹한 경찰특공대를 출동시켜 스물세 명을 죽음으로 내몬 정부. 주민 동의 없이 강행으로만 밀어붙이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위해 24시간 수백 명의 경찰을 상주시키며 온갖 폭력을 자행하는 공권력.

자신들의 비리나 모자람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서민들을 향해서만 강력한 법집행을 내세우는 국가공권력과 아무리 절규하고 호소해도 눈감고 귀 닫은 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정권. 이 참혹한 조화가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국민들을 얼마나 억압하고 짓밟았는가?

언론의 자유는커녕, 이토록 많은 기자와 피디들이 잘리고 파업하고 농성한 시절이 있었던가? 정권에 반대하는 말을 하면 프로그램에서 쫓겨나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표현의 자유는커녕, 리트윗 한 번에 구속이 되고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고 기소가 되고 군부대와 구금시설에는 열독금지 서적 리스트가 생겼다.

집회나 시위가 열렸다하면 경찰버스가 차벽을 만들고 집회 참가자의 몇 배나 많은 경찰병력이 곳곳에 배치된다. 이명박 정부 5년은 이토록 철저한 통제와 억압, 억지와 트집의 세월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5년이 다시 연장되려고 하니 대한민국의 인권이 위태롭다 못해 응급상황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은 그저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는다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나는 박근혜 후보가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의 딸이라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외조부께서 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5.16 쿠테타에 동참했고 공화당 독재에 부역하셨던 분이기에 더욱 그런 이유로 박근혜 후보를 비판할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부모님 두 분을 총탄에 잃었다며 동정을 구하지만 단 한순간도 가난한 삶을 살아보지 않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청와대 자신의 방을 내어준 이후 단 한 번도 자기 것을 빼앗겨 보지 않은 사람이 서민을 위해 살겠다고 나서는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은 국민감정이 격해지면 사형집행도 불사하겠다는 대통령이 탄생하는 일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제주에 해군기지뿐만 아니라 공군기지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국가원수가 되는 일이다. 사용자를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집주인을 위해 세입자를 내쫓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믿는 사람이 우리들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나서게 되는 일이다. 이 끔찍한 일이 지금 현실이 되려고 한다.

우리는 대통령 후보로 나서신 분들이 송전탑을 오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절박함까지 진심으로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루 24시간 레미콘이나 시멘트 구조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한나절에 몇 번씩 경찰들에게 팔이 꺾여 들려나오며 인간 존엄의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1초라도 지연시키겠다는 평화지킴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당신들께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소박한 꿈을 꾸며 함께 살고 싶다는 사람들도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의 시야 속에 이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하루 속에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단 10분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제발 다음 청와대의 주인은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는 대통령과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12월 20일 당선자의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참배한 후, 두 번째 일정으로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을 방문하는 대통령 당선자를 감히 꿈꾸어 본다.

오는 12월 12일은 중구청에서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을 강제철거 하겠다는 행정대집행이 예고되어 있지만, 우리는 강제철거가 되더라도 다시 천막을 치고 대통령 당선자를 기다려 줄 요량이 있다. 열흘 후, 대통령 당선자가 찾아갈 곳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을 지켜내야지 싶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사형제도와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는 대통령,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4대강을 복원할 수 있는 대통령, 국민의 인권과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욕심인가? 함께 살자! 함께 살기 위해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