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 대한 권리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8) 초 단위 통제·감시... 콜센터 노동자

[편집자 주]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세상과 함께 사회헌장의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7조.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가 있어야 한다. 적정한 휴가와 휴식시간을 누리고,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살 수는 없다.”

정부에서 소위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자리는 결코 노동자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시간 일자리를 양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단시간제에서 전일제로 전환할 수도 없고, 단시간 적합직무를 개발해서 그 직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무조건 단시간제로 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가 원하는 시간에 무조건 맞출 수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쉬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제 때 밥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밤에는 잠도 자야 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언제라도 자신들이 원할 때 노동자를 부려먹으려고 합니다. 일을 하는 시간은 철저한 통제 아래 두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은 항상 피곤하고 방광염도 걸리고, 위장병도 많습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시간에 대한 통제에 맞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계에 맞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 생산성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한 시간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상담 AP 왼쪽 상단에 상태표시가 메뉴가 있다. 의자에서 일어나기 전에는 ‘이석’, 밥을 먹으러 갈 때는 ‘식사시간’, 통화 중이면 통화시간이 1초, 2초, 3초... 흘러간다. 콜 응대 후 문의내용과 답변 내용을 기재하거나 민원접수를 하는 동안 통화 종료와 함께 ‘후처리 시간’이 1초, 2초, 3초... 흘러간다. 민원접수가 되거나 이력 저장 후 ‘상담 가능’을 클릭하면 ‘통화시간’이 흘러간다.

이렇게 수치화(계량화)된 시간은 나의 등급이 되고 급여가 된다. 인바운드(걸려온 전화) 총통화수를 8시간으로 나누어 CPH(시간당 콜수), 이석시간, 후처리 시간 등이 동료 상담사들 간의 상대평가를 통해 나의 등수가 매겨지고 등급이 된다. 다른 상담사들보다 콜수가 낮거나 이석·후처리 시간이 길면 나는 등급이 떨어져 월급이 적어진다. 내 옆자리 상담석에 앉은 상담사보다 많은 콜을 받기 위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쉬지 않고 ‘상담 가능’을 누르고 무한 경쟁을 하면서 일명 ‘콜 땡기기’를 한다.

관리자는 앉은 자리에서 상담사가 통화를 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실시간으로 통화내용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실에 갔는지, 밥을 먹으러 갔는지, 누구와 주로 같은 시간에 흡연을 하러 가는지, 민원을 접수하고 있는지, 이력을 남기고 있는지, 몇 분 몇 초 동안 통화하고 있는지, 누구와 몇 시에 나가서 아직도 들어오고 있지 않은지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소름끼치는 사업장 통제 감시이다.

더욱 소름끼치는 현실은 이런 콜센터 노동현장의 상황을 노동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관리자가 콜 관리를 실시간으로 하고 콜센터 노동자들을 실시간으로 감시,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반적인 인식이다. 하루 일하는 시간이 1분 1초 단위로 기록되고 감시, 통제당하고 있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노동조합 초기에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은 서울시가 직접 고용해야하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정작 당사자들에게 설득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은 서울시의 시·구정 업무를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는 비정규직이기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직접고용을 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과 함께하자고 했을 때 상담사들은 자신들이 3개의 민간위탁된 업체의 정규직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는 KTcs, MPC, 효성ITX 3개의 민간위탁 업체의 콜센터 노동자들이 다산콜센터지부라는 노동조합으로 서울시 직접고용이라는 하나의 요구로 함께하고 있다. 매일 오전8~9시까지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 11월은 매주 금요일 서울시청 앞에서 토크콘서트를 한다. KTcs는 복수노조 때문에 교섭권과 파업권이 없어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못하여 공정대표 의무위반으로 제소한 상태이고, MPC, 효성ITX는 분기별 2시간 조합원 교육시간과 전임자를 쟁취하여 조합활동을 하고 있다. 올 하반기 서울시를 상대로 다산콜센터 상담사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일하는 시간동안 초단위로 감시를 받으며, 다른 이들보다 적게 일을 하면 바로 월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숨막히는 무한경쟁을 하는 다산콜센터 노동자들. 이제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많은 연대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