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 우리는 어떠한 체제를 만들 것인가?

[워커스 서평] 손호철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박정희, 87년, 97년 체제를 넘어서>

[출처: 서강대학교 출판부]
대표적인 진보학자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발 빠르게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그는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3월 11일까지 134일의 긴 여정에 걸친 항쟁을 ‘11월항쟁(또는 혁명)’으로, 그 성격을 ‘시민혁명’으로 규정했다.

이번 촛불항쟁은 광화문광장이 중심지이지만 전국적 항쟁이라는 점에서 ‘11월항쟁’이 적합하다는 표현이란다. 실제 11월 집회는 박근혜에 대한 판단과 거취가 거의 결정났다고 할 정도의 절정을 이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또한 ‘시민혁명’이라는 성격은 시민들이 단순한 박근혜 퇴진을 넘어 헬조선 탈피 등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합하다고 하였다.

촛불혁명의 3가지 원인과 배경

손호철은 이번 촛불혁명을 알튀세의 ‘우발성의 유물론’을 빌어 고영태와 최순실의 강아지 사건에 의해 우발적으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촛불혁명의 미래는 예측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세 층위가 있다고 봤다.

첫째, 표피적인 수준에서 보면 촛불혁명은 박근혜 게이트에서 촉발된 것이다. 이것은 사건사적 계기를 이루지만 그 뿌리에는 ‘박정희 체제’가 착근되어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단순히 ‘박정희 신화’ 덕분인데, 박정희 신화는 단순한 ‘이데올로기 현상’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의 체험을 토대로 한 ‘물적 기반’ 때문이다. 더불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패로 인한 민생 고통이 죽은 박정희를 불러냈다고 진단하고 있다(38쪽). 박정희 체제는 냉전과 반공주의에 기반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시스템이다.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보수적 이념으로 사회구조를 획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발독재 체제를 지지하고 신민형 문화에 적응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취약한 조건에서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면서 오늘의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둘째, 중간수준에서 보면 87년 체제의 폐습인 제왕적 대통령제와 불완전한 민주화에서 기인한다. 87년 6월 항쟁은 정치사회의 여야 엘리트 계급의 타협에 의해 보수적 민주화로 귀결된 항쟁이었다. 당시 항쟁의 정치적 목표는 대통령 직선제였으며, 이를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하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도 앞당겨질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결국 2017년 우리는 6월 항쟁 30년을 맞이하지만 아직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하면서 사상의 자유를 제약당하고 있다. 게다가 특정한 이념과 정당을 금지하고 있는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40쪽).

이렇게 불완전한 정치적 민주주의는 제왕적 대통령제, 후진적 정당체제, 분열적 지역주의, 부정부패 등의 폐단을 계승하면서 현재의 불안정한 일상을 배태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촛불혁명은 구조적 측면에서 불안정한 일상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셋째, 가장 심층적인 수준에서 보면 ‘헬조선’으로 호명되는 97년 체제의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깔려있다. 1987년 이전의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억압적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안정적 직장이 어느 정도 보장됐었다. 반면에 30년이 지난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졌지만, 경제적으로는 취업에서부터 해고까지 불안이 지배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이 지배하는 헬조선의 ‘지옥’이 되고 말았다(58쪽). 87년 보수적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에 의해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의해 전면화 돼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한 ‘헬조선’ 또는 ‘헬자본주의’의 토대를 닦았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더욱 심화했으며, 사회적 차별과 갈등 또한 확대 재생산돼 대중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2017년 체제란?

결국 대안은 책의 부제처럼 박정희, 87년, 97년 체제를 넘어 ‘2017년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촛불항쟁의 현장에서도 표출된 적폐청산이 핵심이다. 문제는 적폐가 너무 많아서 최소주의적 수준에서 청산 작업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손호철에 의하면 이번 사건은 유신시대의 제왕적 대통령과 그를 시녀처럼 부린 최순실로 상징되는 권력의 사유화, 삼권분립이 무색하게 견제와 민의 대변이라는 제 기능을 잃어버린 국회, 대통령의 사적 소유물에 불과한 ‘내시여당’, 권력과 재벌과의 정경유착, 금도를 넘어선 대학의 권력과의 유착, 십상시사건 은폐로 상징되는 검찰의 사유화, 사회경고 기능을 잃어버린 주류 언론과 지식인들,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에 대한 배제와 탄압 등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63쪽).

이 대목은 적폐청산의 기본 과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법-제도적 청산과 인적 청산이다. 새로운 체제의 필요조건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신자유주의를 넘어 복지사회로 나가는 것이다(69쪽). 권력구조 혁신에 필요한 새로운 정부형태도 고민해야 한다. 선거제도의 개혁은 더욱 중요하다. 국민소환제 강화, 시민발안제의 도입 등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의 민주적 통제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는 요원하다. 재벌체제 해체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첩경이다. 교육모순 해결없이 계급모순 해결은 없다. 또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언론이다. 노동자민중의 기본권은 반드시 확장돼야 한다. 어떠한 차별도 존재해서는 안 되며 개개인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민주주의는 일상의 민주주의다. 가정, 학교, 직장, 공장, 마을 등 모든 곳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한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과제가 너무 많다.

결국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2017년 체제는 우리의 실천에 달려있다. 레닌은 “혁명은 하층계급이 과거 방식으로 살기를 원치 않는 것만으론 어렵다. 상층계급도 과거 방식으 로 통치할 수 없는 상태여야 한다”고 했다. 촛불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워커스 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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