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되지 못한 픽셀, 66X100cm, Pigment Print, 2019 |
0. 자주 가던 동네 뒷산(이하 △)이 파헤쳐졌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이미 공사가 시작되고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느 날 가보니 산은 반 토막이 되어있었고 포크레인 몇 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속으로 집이 지어지나보다고 생각했고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금세 잊히고 시간은 또 꽤 흘렀다.
1-1. 문득 생각나서 다시 산에 가보았을 때, 웬일인지 공사는 멈춰있었다.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 가보아도 공사는 없었다. 그리고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아마도 공사가 진행되다가 다시 경매에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 산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다시 긴 시간을 보냈고 속살을 드러내던 산에는 다시 새싹이 돋고 새들이 모였다. 하루는 덩그러니 컨테이너 상자가 있기도 하고, 쓰레기가 쌓여있기도 했다. 20억이 넘는 비싼 몸은 아마도 잘 팔리지 않는 듯했다.
1-2. 산에 관한 얘기를 동네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자식이 개발해보려다가 돈이 부족해 경매에 넘어갔다더라, 사기를 당했다더라 등등 정확하진 않지만 대체로 비슷한 얘기가 들려왔다. 한 아주머니는 땅 주인이 불쌍하다고 했다. 슈퍼 아주머니와 엄마는 혀를 차며 그냥 가지고 있지 욕심을 부렸다고 했다. 근데 그 △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 토막 난 산을, 뽑힌 나무를, 쓸모없는 곳이 돼버린 그 △을 위로하는 사람은 없었다.
2-1.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산을 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다시금 포크레인과 레미콘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살뜰히 자라고 있던 물오리나무는 이미 베어지고 난 뒤였다. 누군가에게 낙찰이 되었구나 싶었다. 돈이 있었다면 내가 사고 싶었는데,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그랬다. 돈이 많은 어느 대부업체에서 그 △을 산 것 같았다. 다시 플래카드가 걸렸다.
2-2. “본 부지는 당사 ○대부(주)의 사업부지로서 관계자 외 무단출입을 금합니다. 만일, 이를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습니다”
3. 산 아래는 커다란 돌이 있는 듯했다. 산을 갈 때마다 돌 깨는 소리가 머리를 울렸고 산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주 커다란 돌이었던 것 같다. 도시보다 시끄러운 산을 걸으며 어쩌면 돌이 이 산의 정령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 전체를 연결하고 지탱해주는 무엇, 후에 완전히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없어지지 않을 기운.
4. 그 △은 이제 어떤 사람들의 집이 되었다. 18개의 조각으로 남았다.
5. △이라고 부르기는 낮은 언덕이긴 하지만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깎이고 다듬어져 언젠간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래도 이름이라도 있으면(혼자 아는 것일지라도) 낫지 않을까 싶었다.
6. <가루산>은 사람에 의해 계속 변화하는 동네 산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촬영하며 시작하게 되었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땅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어떻게 변화하는가는 주목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애정 있던 동네 산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기억해보고자 했다. 산이 변화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풍경이 변하고(시각적) 괴로운 소리를 매일 듣고(청각적) 땅이 울리는(촉각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공터였던 산은 누군가의 재산이 되기 위해 깎이는 과정을 반복했는데 돌산을 깨기 위해 포크레인, 레미콘 같은 중장비들이 매일 동네에 드나들었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산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꽤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만 열면 소리가 들렸는데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상상과 더불어 픽셀이 깨진 사진 이미지가 떠올랐고, 상상된 이미지를 시각화하고자 했다.
* 작업을 진행하며 수십 번 오르내린 산에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알지 못할지라도 작업에서만큼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고, 언젠간 사라질 것 같은 산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가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 그 △을 기억하는 방법, 32X40cm, Pigment Print, 2018 |
▲ 그 △을 기억하는 방법2, 80X100cm, Pigment Print, 2019 |
▲ 그 △을 기억하는 방법3, 80X100cm, Pigment Print, 2019 |
▲ 무제, 120X80cm, Pigment Print, 2018 |
▲ 밤섬, 40X50cm, Pigment Print, 2018 |
▲ -불 산, 75X50cm, Pigment Print, 2018 |
▲ 비산, 60X40cm, Pigment Print, 2019 |
▲ 비산2, 100X66cm, Pigment Print, 2019 |
▲ 비트맵(BMP), 50X40cm, Pigment Print, 2018 |
▲ 뼈, 65X50cm, Pigment Print, 2019 |
▲ 잡음, 100X66cm, Pigment Print,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