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문화도 이와 관련이 있다. 취향에 대한 기존의 계급적 접근은 저급문화와 고급문화라는 문화적 위계가 계급적 차이를 반영하고 있고, 이러한 취향의 구별 짓기가 계급 재생산을 문화적으로 정당화한다고 봤다. 하지만 오늘날의 구별 짓기는 저급과 고급이라는 질적인 위계 구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장르적으로 다양하고 포용적인 취향을 가진 문화적 ‘잡식성(omnivore)’을 토대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이전에는 문화자본을 축적하고 체화한 계급이 클래식을 듣고 고급취향을 과시하며 문화적 지배를 정당화했다면, 오늘날에는 클래식뿐 아니라 대중가요와 팝송, 월드뮤직 등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취향 중심으로 구별 짓기의 방식이 대체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잡식성은 장르를 가로지르며 그 내용이 지리적·역사적으로 확장됐다.
이 같은 취향 구조의 변화 때문에 레트로 문화가 부상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지만, 동시에 이는 단순히 소비와 취향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레트로 문화는 소비를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소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와도 관련 있기 때문이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를 위해 조직된 일련의 복잡하고 상호 연계된 활동들의 집합을 가치사슬(value chain)이라고 한다. 이는 생산에서 유통 그리고 소비까지의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과정의 약한 고리와 강한 고리를 파악하고자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가치주기(value cycle)로 전환되고 있다. 전자폐기물 등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제품의 부가가치에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제품 자체의 감소·재사용·재활용을 화두로 삼는 것이다. 산업계나 학계만이 이런 데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대중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냥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하려는 흐름들이 있다. 제품이 망가지거나 수명이 다했을 때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고쳐서 이용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수리(repair)의 부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리 행위를 시민의 권리로 주장하면서 이를 사회운동으로 이끌어간 흐름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애플이나 모토로라 등의 핸드폰이 망가졌을 때 이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매뉴얼과 정품부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조사가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싼 공식 AS센터가 아닌 사설 업체를 이용하거나 스스로 고치려고 할 때 위험부담이 있었다. 즉, 기기 수리 방식을 직접 결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정보적·기술적 환경이었다. 그래서 일군의 시민들이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기업이 제품의 매뉴얼과 부품을 공개하도록 하는 입법 청원을 제기해 뜨거운 논쟁을 거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수리도시(repair city)에 대한 주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따라서 수리는 소비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량생산하고 대량소비된 뒤 폐기되는 소비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실천이기도 하다. 턴테이블, 워크맨, 시디플레이어 등 옛날 고물들을 구매해서 다시 고쳐서 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음향기기만이 아니라 명품시계를 중고가격에 사서 수리해 쓰기도 한다. 수리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술자들과 대중들이 연결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도 생겨났다. 특히 이러한 수리 행위는 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정도의 소극적인 수리가 아닌, 고물 자체를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재생 행위로서의 적극적인 수리다.
그렇기 때문에 레트로 문화를 단순히 소비문화의 하나로만 보기는 어렵다. 레트로 문화를 떠받치는 행위는 빈티지한 상품을 새로운 내용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고물을 수집해 오늘날에 맞게 다시 고쳐 쓸 수 있도록 하는 수리라는 기술적 행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