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된 정부 일자리 확충계획 목표치를 다 합치면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모두에게 일자리를 주고도 남는다. IMF, 금융위기, 코로나 등 경제위기만 오면 집권세력은 카메라 앞에 서서 수백만 명씩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숫자놀음만 하는 관료들이 써준 허상의 자료를 읽는 정치인 얼굴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정의선’ 불러내 뭘 하겠다는 건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열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과 한성숙 네이버 대표도 화면에 등장했다. 한마디로 재벌 민원 해결창구로 전락한 ‘그린뉴딜’의 서글픈 ‘한국판’이었다.
다음날 경향신문은 1면에 ‘160조 쏟아 일자리 190만개 창출, 한국판 뉴딜’이란 제목으로 화답했고, 한겨레도 1면에 ‘한국판 뉴딜, 임기 내 68조 투입해 89만 일자리 창출’로 화답했다. 코로나19 경제위기에 걸맞게, 정부가 노린 대로 190만개, 89만개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어 보도해줬다.
이날 두 신문의 해설기사는 노골적인 재벌 민원에 초점을 맞췄다. 경향신문은 4면에 ‘SOC 디지털화 앞당겨 전환… 데이터 관련 새 일자리 90만개’라는 제목의 해설기사에서 정부의 이번 발표를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고용.사회안전망 확충으로 이뤄진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화면에 등장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미래차 등 친환경 사업은 현대차그룹의 생존과도 관계가 있고 국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날 8면에 ‘공공데이터 14만개 공개해 활용… 스마트생태 공자 100개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 산업에 5G.AI 기술을 접목하는 융합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전기차(113만대).수소차(20만대)를 보급하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했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선 재벌 이해와 딱 맞아 떨어진다.
▲ 한겨레 6월 3일 1면 |
▲ 경향신문 7월 16일 1면(위)과 2면 |
미시적 비판으론 해결 안 돼
하루가 더 지난 7월 17일에 와서야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한국판 뉴딜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한겨레는 7월 17일 10면 ‘온실가스 감축, 기존목표의 20%뿐… 무늬만 그린뉴딜 비판’이란 제목의 머리기사에서 정부가 애초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턱없이 미달하는 목표치를 내세웠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이날 1면에 ‘탄소 저감 구체적 목표 없이… 대충 그린뉴딜’이란 머리기사를 실었다. 두 신문은 공히 ‘탄소 감축량’을 문제 삼았다.
이미 한겨레는 지난 6월3일 1면에도 ‘기후위기 전략 빠진 무늬만 그린뉴딜’이란 제목의 한국판 그린뉴딜 비판기사를 싣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목표와 에너지 전환 전략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탄소 감축 목표치만 충분히 제시하면 그린뉴딜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건가. 아니다.
그린뉴딜은 지난해 2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회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미 하원의원이 발표한 ‘그린뉴딜에 관한 하원 결의안’에 잘 나와 있다. 여기서 그린뉴딜은 “최전선 약자와 노조, 노동자 협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 학계, 기업을 포함하는 투명하고 포괄적인 협의, 협력, 파트너십에 의해 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엔 ‘최전선 약자’가 빠졌다. 정부가 재벌과 손잡고 밀어붙이는 한국판 뉴딜은 그린도, 뉴딜도 아닌 그냥 재벌 민원 해결 창구로 전락했다.
최전선 약자를 중심에 세워야
이렇게 큰 결함엔 눈 감은 채 ‘탄소 감축 구체적 목표가 없다’고만 비난하는 건 본질을 벗어난 곁다리를 잡고 판을 뒤집으려는 시도만큼이나 무모하다.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그린뉴딜에서 탄소배출 감축 목표가 빠졌다는 식의 미시적 비판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며 착취적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그린뉴딜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출권 거래제, 온실가스 감축, 탄소세 같은 미시적 접근으론 뉴딜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다. 여성과 장애, 이주노동자 같은 최전선의 약자를 중심에 세워야 제대로 된 뉴딜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