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깃장 난 베를린 월세상한제, 총선 앞두고 후폭풍

부동산대기업 몰수 주민투표 요구안, 2개월만에 13만 명 서명

  지난 15일 독일 헌법재판소가 월세상한제를 무효화 한 뒤 일어난 규탄 시위 장면 [출처: 융에벨트]

독일 헌법재판소가 베를린 월세상한제를 무효화하면서 임대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줄다리기가 막을 내린 듯했지만 연방총선을 앞두고 그 후폭풍이 크다.

독일 언론들은 오는 9월 연방총선 때 임대료 문제가 독일 사회에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며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우선 독일에서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민당(SPD)이 지난 3월 1일 오는 9월 독일 연방총선을 앞두고 월세상한제를 연방정부의 공약으로 채택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민당은 월세 상한 기간도 베를린의 경우처럼 5년까지가 아니라 제한을 두지 않을 계획이다. 이번에 독일 헌재가 베를린 월세상한제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연방정부가 2015년 이미 월세 인상 상한을 규정한 바 있어 해당 입법권한이 오로지 연방정부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연방정부가 월세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리고 있어 실제로 향후 총선에서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헌재 판결이 나오자 사민당과 세입자연합은 이미 연방 월세상한제 도입을 위한 법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세입자단체들은 오는 총선을 ‘세입자들의 선거’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베를린 세입자들의 반발이나 집단적인 움직임도 향후 독일 총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헌재가 월세상한제를 무효화해 앞으로 세입자들이 상한제 시행 후 묶였던 인상분을 환급해야 하는데, 크게는 수천 유로씩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를린시정부는 월세상한제 무효화로 약 4만 가구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독일 은행 슈파카쎄에 따르면, 월세상한제로 한숨을 돌린 세입자 중 47%는 환급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 최대 부동산그룹인 보노비아(Vonovia)는 세입자들에게 환급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공지했지만, 3대 부동산그룹에 속하는 도이체보넨(Deutsche Wohnen)은 환급을 요구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3천 채 이상을 소유한 부동산대기업의 임대주택을 몰수하는 주민투표 발의안 서명자 수도 헌재 판결 뒤 더욱 증가해 여론을 달구고 있다. 26일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주민투표 발의단체는 약 2개월 만에 모두 13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하루 서명자 수는 최근 헌재 판결 뒤 더욱 늘었다. 주민투표가 성사되려면 모두 175.000명의 서명이 필요한데, 이미 3분의 2 이상을 모은 것이다. 이 주민투표안이 발의 서명자 수를 충족하면 연방총선일에 동시에 주민투표가 치러진다.

[출처: 융에벨트]

베를린에선 헌재 판결이 나온 지난 15일 저녁 2만여 명이 거리에 나와 시위했고, 시위 중 48명이 연행됐을 만큼 때론 격렬하게 진행됐다. 2019년 월세상한제 도입을 이끈 대규모 시위에 참가했던 최대 4만 명은 260개 연대단체가 몇 달 동안 조직해 동원한 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헌재의 판결에 베를린 시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한편, 지난 3월 독일 정당들이 연방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공약에 따르면, 월세상한제에는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이 찬성하고 있다. 녹색당은 비영리 임대 주택 증설에 중점을 둔 반면 좌파당은 부동산 대기업이 소유한 민영 임대주택 몰수도 약속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2020년 2월 23일, 5년간 150만 가구의 임대료를 2019년 6월 수준으로 동결했다. 임대인이 요구할 수 있는 임대료는 제곱미터 당 최대 8유로로 책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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