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는 이상한 성역

[레인보우]


4월 15일, 육군의 고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 첫 공판심리가 대전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 변희수 하사의 원고 자격은 유족이 대리해 맡았다. 육군은 변희수 하사가 고의로 심신장애를 초래해 임무 수행이 곤란하다고 강조하면서 “성 주체성 장애에 대한 쟁점은 군이 정책적으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니 심신장애로 판단하여 내린 전역 처분이 정당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춰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군은 심신장애에 근거한 전역 처분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에 앞서 육군 본부 법무실이 제출한 서면답변서에 따르면 군은 변희수 하사가 수술로 고환과 음경을 제거하고 호르몬 주사를 맞는 것이 전차 조종수로서의 임무 수행에 곤란을 초래한다고 봤으며, 다른 부대로 전입하더라도 호기심의 대상이 돼 부대원과 융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9년 대대에서 유일하게 전차 조종 A 성적을 받았다는 변 하사의 조종 실력이 고환과 함께 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미 군에는 여군 전차 조종수도, 장갑차 조종수도 있다. 남성 성기의 제거와 호르몬을 이유로 전차 조종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보는 군의 결정은 명백히 성차별에 해당한다.

호기심의 대상이 돼 부대원과의 융합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또한 자의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군인이 군의 역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2016년 6월 미 국방부 차관 인사 준비실이 RAND 국방연구소에의뢰하여 진행했던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군인의 건강관리, 병력 준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고 호주, 캐나다, 이스라엘, 영국의 사례도 비교했으나 “어떤 경우에도 작전 효율성, 작전 준비 상태 또는 부대의 응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었다” 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들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리더십 훈련을 지원하고, 전 군에 다양성 관련 교육과 훈련을 제공할 것, 명확한 괴롭힘 방지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할 것을 군의 역할로 제안했다. ‘호기심의 대상이 돼 부대원과의 융합이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은 군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이지 당사자에 대한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 군은 오히려 소속 부대의 승인과 지지 하에 성별 정정 과정을 진행하게 된 변희수 하사에 대해 군 내에서의 부당한 차별이나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에 나섰어야 한다.

결국, 어떤 변명을 해도 군의 답변은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이 끝내 변희수 하사에 대한 전역을 결정한 것은 군을 특정한 영역으로 지키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군을 성별로 구분된 위계 체계를 통해 작동하는 영역으로서 유지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군을 성별로 구분된 위계 체계로 작동하는 영역으로서 지킨다는 것은 단지 남군과 여군의 위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군의 업무 수행에 적합한 신체의 기준을 남성 신체에 두고 ‘강하고 훼손되지 않은 신체’라는 상징을 그 위계의 근거로서 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자격을 갖춘 남성만이 가장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체계이다. 그런데 이 ‘강하고 훼손되지 않은 신체’에는 육체적 조건만이 아니라 남성성의 발현도 포함된다. 군대는 이러한 신체를 ‘남성다움’의 자격과 상징으로서 끊임없이 강화하고 훈련시키는 곳이며, 그에 실패할 경우 통제와 폭력, 심지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각인시킴으로써 ‘남성다움’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면화하게 만든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위력을 이용한 폭행이나 성폭력 또한 이러한 위계와 두려움을 각인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오랫동안 유지돼 온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군대 내 에서만이 아니라 군대 밖의 사회로도 연결돼 남성적 신체와 남성성을 위한 유대 관계, 언제든 폭력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욕구를 지닌 존재로서의 남성 섹슈얼리티를 권력의 상징으로 위치시킨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남성적 신체와 남성성, 남성 섹슈얼리티는 사실 타고나는 속성도, 동일한 속성도 아니기에 의도적으로 강화하고 확인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억지로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남성성 이나 남성 섹슈얼리티는 유도되고 만들어지는 것이지 고환 이나 호르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기에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폭력성을 남성적 속성으로 유지시켜 온 사회가 문제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때, 폭력을 다루는 관심과 지형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많은 남성이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지말라”면서도 진정 무엇이 남성들을 쉽게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태로 훈련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여자들도 군대 가라”고 하지만 여성 군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 남성 중심의 위계와 통제는 바꾸지 않는다.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를 군대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군 가산점으로 보상하라는 요구가 의무 징병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나 군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요구보다 훨씬 본질적인 문제인 것처럼 다뤄진다. ‘훼손되지 않은 신체’를 요구하는 국가가 어떻게 징집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훼손을 야기하는지, 징집의 대상이 되거나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신체 자격뿐 아니라 경제적 환경과 인종, 국적 등이 어떻게 차별적 조건을 군대의 안과 밖에서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구도 억지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갈 수 있는 자격이 그 자체로 인정받은 시민으로서의 명분과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 되기도 하는, 그 ‘이상한 성역’이 바로 군대다.

그러니 분명히 이야기하자.

군은 결코 변희수 하사에 대한 전역 결정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군이 할 수 있는 변명은 고환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트랜스젠더 직업 군인을 해고하는 성차별적 위계를 통해 군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그 왜곡된 남성성과 남성 섹슈얼리티의 권력 위계를 통해 군의 수많은 문제를 간신히 덮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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