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법이 이례적으로 지난 7월 투표에서 갱신에 실패했다.(1) 역시나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내무부 장관 샤케드는 비공식석상에서 새로운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의 체류 허가증 처리를 거부하겠다고 언론에 말을 흘렸다.(2) 곧 만료되는 허가증을 소지한 팔레스타인인들만 속이 타들어 가게 됐다. 행정상의 공백으로 허가증을 연장하지 못할 경우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아내의 허가증을 갱신해야 하는 활동가 테이사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류학 박사 출신의 활동가이자 전직 교사인 그는 ‘믹스 커플’ 당사자로서 언제라도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해 16년간의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 테이사르와 아내 라나 [출처: 테이사르] |
이 팔레스타인 부부가 사는 이야기(3):
이스라엘 시민권자 테이사르와 서안지구 출신 라나
안녕 나는 ‘이스라엘’ 북서쪽 지중해의 아름다운 고대 항구 도시 악카에 사는 테이사르라고 해. 이곳에서 나는 사랑스러운 아내 라나와 14살, 13살, 7살 난 아이 셋과 함께 살고 있어. 아내 라나는 서안지구 북부 제닌 출신이야. 악카와 제닌은 거리상으로는 50km 남짓 떨어진 곳인데 그 사이에는 분리장벽과 검문소가 들어서서 자유롭게 오가기가 어렵지. 우리는 2차 인티파다 중이던 2002년 제닌에서 만났어. 이스라엘 군대가 제닌 난민촌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이다 철수한 직후였지. 나는 독일에서 대학 공부를 마친 뒤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었는데, 필요한 자료 수집을 위해 제닌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를 방문했어. 서안지구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라나는 당시 보건부에서 4년째 일하고 있던 근사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었지.
우리가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03년에 일명 ‘이산가족법’이라 불리는 임시법이 통과됐어. 그 법에 따르면 나의 아내가 될 사람이자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 라나가 내가 사는 악카에 와서 함께 살려면 임시 체류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했어. 보통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일용직 노동자로 이스라엘에 일하러 오면 받는 그 신분증과 같다고 보면 돼. 잠깐 왔다 가는 사람에게 주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확인증 같은 거지. 이 허가증으로는 당연히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운전을 한다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한다거나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어. 말 그대로 체류만 허가하는 거야, 삶이 아니라. 같은 대우를 받는 나라들을 보면 이게 얼마나 ‘내부의 적’ 취급하는 행태인지 알 수 있지. 이스라엘이 적국이라고 명시한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란과 나란히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해당이 되는 거야. ‘제5열’ 수준의 대우라고 봐. 이건 모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 처벌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
우리는 16년 차 부부야. 이 말은 즉 때에 따라 3개월, 6개월, 1년으로 매번 달라지는 갱신 주기에 맞춰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마음 졸이는 일을 16년째 해오고 있다는 얘기지. 갱신을 위한 서류는 방대하고 판단 기준이 불투명해. 우리의 실질적인 생활 터전이 거주지로 등록된 악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제출해야 해. 전기세, 수도세, 건물 임대료, 통신료는 기본이고 내 일과 관련된 재직 증명서와 건강보험 납입내역, 하다못해 주유비 영수증까지 모아서 내곤 해. 우리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까지 제출한 적도 있어. 우리를 귀찮게 하고 괴롭히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를 해가도, 저번에는 나왔던 허가가 이번에는 이유 없이 기각당하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가히 놀랍지. 검문소의 이스라엘 경찰과 다를 것 없는 위압감으로 우리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모욕감을 주며 마구 쥐고 흔들어.
2006년 결혼식부터 엄청난 모험이었어. 악카에서 나의 친지와 친구들을 초대한 예식은 모두 준비되었는데 신부인 라나의 참석이 ‘운’에 달린 상황이었지. 결국 병원에 입원한 가족 방문을 사유로 적어 이틀을 허가받아 극적으로 결혼식을 치렀어. 결혼 후에도 기적이 필요한 상황이 계속됐어. 라나에게 주어진 체류 기간을 고려해 ‘자녀 계획’을 해야 했지. 둘만의 아주 사적이고 친밀한 부분마저 ‘지금쯤 임신이 되어야 함께 이스라엘 병원에서 출산을 할 수 있겠구나’를 따지고 있는 내 사고체계가 원망스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했어. 아주 기본적인 삶마저 계획할 수 없는 신세임을 한순간도 떨칠 수가 없는 거지.
출산이 임박했을 때도 우리는 아이의 태교에 집중할 수 없었어. 서안지구 출신인 여성 배우자가 이스라엘 병원에서 출산하려면 사전에 서류 증빙 작업이 필요하거든. 출산 예정일을 최소 3개월 앞둔 시점에 의사 소견서를 지참하고 국가보험관리청(The National Insurance Institute)을 방문해야 해. 나는 이스라엘 시민으로서 보험관리청에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해왔어.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시민권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산 비용은 별도 절차 없이 보험 처리가 되지만 우리 부부는 ‘보험관리청이 출산 비용을 납부할 것이다’라는 추가적인 증명서를 받아야만 수술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어. 안 그러면 매우 비싼 비용을 뒤집어써야 하지. 많은 경우 이 지난한 절차를 밟을 시기를 놓치거나 내용조차 숙지하지 못해 종종 더 저렴한 서안지구로 가서 아이를 낳곤 해. 그러면 아이 출생신고를 당연히 서안지구에서 하게 되지. 이럴 경우 아이가 12살이 넘으면 엄마와 마찬가지로 매번 허가증을 발급받지 못하면 이스라엘 도시에 사는 아빠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거야.
▲ 테이사르네 다섯 가족(아내 라나와 오빠 아드난, 언니 요르사, 막내 샐리) [출처: 테이사르] |
이렇게 세상에 나온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차별을 받아. 보통 이스라엘 신생아들은 태어난 직후 병원에서 즉각 식별번호가 적힌 출생 증명서를 받는데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임시 식별번호를 발급받아. 그걸 따로 남편이 내무부에 가서 신고해야 출생증명서 발급 절차가 마무리돼.
아내 라나는 경제학 학위를 보유하고도 그저 집에만 있어. 자체 가택 연금이라고 해도 과도한 표현이 아닐 것 같아. 레스토랑에서 일을 좀 해보려 해도 당국은 고용주에게 온갖 복잡한 증빙 과정을 요구하며 좌절 시켜 버려. 어느 고용주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굳이 뽑겠어? 이건 다시 나의 생업에도 영향을 끼쳐. 라나는 운전면허증이 있지만, 이곳에서 운전하는 건 허용되지 않아. 라나가 아이들을 학교에서 픽업한다거나 병원에 데려간다거나 하는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우리 가족 삶의 중심이 내가 돼야 해. 언제든 아픈 어머니나 아이들이 필요로 하면 달려갈 수 있는, 프리랜서 직업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지.
한번은 나랑 라나랑 하이파에 커피나 마시러 가자며 드라이브에 나섰는데, 경찰이 우리 차를 막아서고 신분증 검사를 요구했어. 운 좋게도 라나는 체류 기간이 딱 하루 남아 있어서 문제는 없었지만, 기분이 엉망이 됐는지 그만 엉엉 울기 시작했어. 잠시 망각했던 절망과 불안이 엄습해 와서일까. 라나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어. 커피를 뒤로하고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지.
올 10월이면 또다시 라나의 체류증 갱신 신청 시기가 돌아와. 법 자체는 없어졌지만, 기존 허가증 신청자들에 대한 지침이 없는 상태라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이 되질 않아. 3일 전에 인권단체들과 아내 라나를 비롯한 20명의 팔레스타인인의 이름으로 내무부를 상대로 한 탄원서를 중앙 법원에 제출했어. 내무부 장관이 팔레스타인 신청자들의 서류 검토를 잠정 중단하라는 말을 했거든. 다들 나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연락이 와. 라나와 아이들이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수밖에. 그런데 이번 주가 욤 키푸르(대속죄의 날, 유대인들의 중요한 명절)라 과연 우리 탄원서를 확인했을까 싶네.
‘진짜’ 원하는 건, 유대 국가 이스라엘
국제규범과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본 법의 위법성은 이미 이스라엘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를 비롯해 여러 국제기구와 인권단체(4)가 꾸준히 법의 위법성을 문제 삼아왔다. 이스라엘은 인종차별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등을 비준한 국가다. ICCPR에 적힌 대로 “국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공비상사태 시에도”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또는 사회적 출신을 근거로 한 차별을 포함하는” 조처를 금지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만성적으로 이를 위반해오고 있는 건 약과다. 이스라엘 대법원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안보를 구실삼아 매번 법 유지에 힘을 실어 왔다. 법원은 이 법이 이산가족의 상봉을 차단함으로써 이스라엘 내 인구 5분의 1을 구성하는 팔레스타인인 시민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법을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여러 차례 결론 내렸다.
이스라엘 법원 문서에 따르면 법이 시행되기 전인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어린이를 포함해 가족 통합으로 이스라엘 시민권이나 거주권을 취득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약 13만 명이었다.(5) 초기 13만 명의 가족 통합 신청 중 ‘테러리스트’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까지 간 사례는 단 7명이었다.(6)0.005%다. 그렇다면 만일의 0.005%를 위해 20%에 육박하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희생시킬 것을 권고한 법원 판단의 근간은? 다시 또, ‘유대 국가’다. 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은 이제 본심을 숨기지 않은 채 지난 7월 법을 둘러싼 투표를 앞두고 언론에 말했다.(7) “이 법은 이스라엘 국가의 유대 인구 다수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 중 하나”이며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민족 국가이며 우리의 목표는 유대인 다수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유대 국가라고 부르는 매 순간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의 특권을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 시스템에서 유대인이 아닌 2등 시민들, 하지만 유대인보다 먼저 그곳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아파르트헤이트다
보통 이스라엘 관료들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는 표현에 치를 떨며 이스라엘 내 ‘유대계’와 ‘아랍계’ 시민의 동등한 권리는 보장된다고 못 박는다. 하지만 그들이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처럼, 공중화장실 표시판에 대놓고 인종 구분을 적어 두거나 다른 인종 간 성관계 시 투옥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파르트헤이트는 아파르트헤이트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군사점령 형태는 말할 것도 없다.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동예루살렘과 갈릴리, 네게브 지역 토지에 유대인 통제를 최대화해 이스라엘 인구 약 19%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전체 이스라엘 토지의 3% 이내에 몰아넣는 정책이 대표적이다.(8) 혼인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지만 ‘이산가족법’이 작동한다. 결혼식과 출산, 육아를 위한 전제 조건인 ‘자유로운 이동’이나 ‘동거’부터를 막아 구조적으로 무력감을 안긴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과 아랍인 마을을 대놓고 벽으로 구분해 두진 않지만, 팔레스타인인 이웃이 이사 오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옵션을 법으로 확보해둔다. 유대인이 다수인 지역 사회에 아랍계 시민이 거주를 신청할 경우, ‘부적합’이라는 사유에 해당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 신청을 거부할 수 있는 식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일컫는 ‘나크바(대재앙)’라는 표현을 못 하게 하진 않지만,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모든 기관이 ‘나크바’를 기념할 경우 과중한 벌금을 물리는 법은 있다. 이렇게 은근하며 촘촘하고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을 배제하는 법은 주거, 고용, 교육, 의료, 결혼 가능 대상을 포함해 그들의 대부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 테이사르와 두 딸 요르사, 샐리 [출처: 테이사르] |
이런 지적에 대한 이스라엘의 단골 멘트는 이거다. ‘더욱 나아지려 노력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일 뿐’이라는 것. 즉, 세상에 완벽한 이데올로기란 있을 수 없는데 왜 맨날 이스라엘만 걸고넘어지느냐는 얘기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영국계 역사학자 아비 샬레임이 정리해준 말로 대신한다.(9)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분명 결함이 있습니다. 네, 모든 민주주의가 조금씩 그러하지요. 다만,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상황을 보노라면 이스라엘은 결단코 민주주의 국가라고 명명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민족정치(Ethnocracy)라고 부를 수 있는데요, 이는 한 민족 집단이 다른 민족 집단을 지배하는 체제를 말합니다. 민족정치를 일컫는 또 다른 단어가 있으니,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입니다. 네, 그게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한 달 뒤, 라나는 테이사르와 아이들과 악카에 머물 수 있을까? 라나의 가족은 어떤 연말을 보내게 될까? 현재의 법률적·행정적 공백은 당장 그의 가족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혹여 이 법이 사라진다 해도 분리와 차별의 속성이 제거되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사랑이 다른 형태로 방해받을 것을 잘 알기에 마냥 환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랑은 늘 이긴다는 진리를 믿으며, 사랑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이기는 순간을 끈질기게 쟁취할 수밖에.
<각주>
(1)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21/7/19/why-did-netanyahu-vote-against-a-law-he-wholly-embraces
(2) https://www.timesofisrael.com/with-ban-on-palestinian-family-unification-set-to-expire-what-happens-next/
(3)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테이사르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부연 설명을 넣어 독백으로 각색했음.
(4) https://www.amnesty.org/en/wp-content/uploads/2021/05/MDE1557372017ENGLISH.pdf
(5) https://www.timesofisrael.com/with-ban-on-palestinian-family-unification-set-to-expire-what-happens-next/
(6) https://electronicintifada.net/content/palestinian-families-denied-rights-israels-racist-marriage-laws/10866
(7) https://www.france24.com/en/middle-east/20210707-how-israel-s-political-hodgepodge-helped-end-its-contentious-citizenship-law
(8) https://www.hrw.org/report/2021/04/27/threshold-crossed/israeli-authorities-and-crimes-apartheid-and-persecution
(9) https://www.youtube.com/watch?v=pfw2AVqcn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