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과 주주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99%의 경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모럴 해저드)는 원래 보험시장에서 사용하던 용어였다. 화재 보험 가입자가 보험에 들지 않았다면 당연히 했을 화재 예방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보험사가 화재로 인한 보험료를 지불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도덕적 해이는 사용범위를 넓혀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분야에서도 사용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도덕적 해이란 정부가 뒤를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 아래 정당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거나 회피해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게 도덕적 해이를 통해 자신이 부담할 비용을 타인이나 국가에 전가한다. 단기적으로 개인에게 이익이 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지출을 늘려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부의 불평등을 가져온다. 이런 도덕적 해이는 국가와 사회는 물론 기업에도 심각한 손실을 발생시킨다. 경영진이 회사에 손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사적 이익을 추구해 기업이 망하고, 경영진은 부자가 되는 현상도 도덕적 해이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도덕적 해이는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고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집단적 이기주의를 보이는 상태나 행위를 총칭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보수주의, 시장 자유주의에서는 모든 형태의 정부 지원에 도덕적 해이를 지적한다. 국가의 시장개입, 국가 지원은 어떤 형태든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코로나19 경제 위기에서도 정부가 저소득층 소득지원을 하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와 함께 국민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꺼내 든다. 경제 위기 등으로 본인이 져야 할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고 정부에 의존하게 됐다는 얘기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이 여러 차례 지급되면서 국민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만기 연장과 원리금 유예조치를 네 차례 연장한 것에 대해서도 “대출자의 모럴 해저드를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8월 30일 보고서를 내고 “우리 구직급여 하한액은 OECD 최고 수준이고 하한액 수급자가 80%를 넘는 비정상적 수급구조”라고 지적하며 “지나치게 높은 구직급여 하한액은 구직활동 저해 등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수십만 원 받는 재난지원금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정부 지원에 의존해 살아간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당장 문 닫을 판인 자영업자에게 대출금 만기를 몇 차례 연기해줬다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나아가 구직급여(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 상당의 너무 높은(?) 금액이어서 실업자들이 구직활동을 게을리한다는 주장은 구직급여를 받아본 일 없는 사람들의 얘기일 뿐이다. 이는 도덕적 해이 문제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얘기다. 이처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시장 자유주의의 지적은 도덕적 해이 그 자체보다 정부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의 시장개입이나 지원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아니다. 정부의 그런 개입이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고 보기 때문에 문제로 삼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문제를 따지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일반 국민이나 노동자, 서민이 아닌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크다. 왜냐하면 국가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바로 자본을 소유한 주주들이며, 가장 많은 자본을 가진 것이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곳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인플레이션 관리라는 명확한 목표에 집중해야 하며, 금융시장을 지키는 최종 대출자로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경제학 교과서에 나와 있고 한국은행법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소위 거시 건전성 감독이라는 명분으로 금융시장에서 국채는 물론 민간증권까지 사들이며 투자 전문가로 역할을 확장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특정 시장에 개입해 시장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결국 정치적인 판단이며 이미 그 순간 중앙은행의 중립성(?)은 사라졌다.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인한 대규모 유동성은 주식과 채권 등 금융시장에만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기대했던 실물 경제의 회복은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대책은 ‘금융시장 안정’이었다. 여기에만 135조 원+@를 배정한다고 밝혔고, 이중 한국은행에서만 89조 원 규모의 자금이 집행됐다. 애초 한국은행은 국채, 정부보증채, 통화안정증권, 주택금융공사 발행 MBS 등 국공채만 인수했었다. 하지만 규정을 바꿔 각종 금융채, 프라이머리 담보부채권(P-CBO), 여전채, 할부채 뿐만 아니라 투자 최저등급 회사채까지 중앙은행의 인수대상 증권에 포함했다. 특히 증권사 및 채권시장 구제와 관련해서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선언하고 나섰고 실제 37조 원을 공급했다.

또한, 채권시장이 계속 불안정하고 증권회사의 리스크가 커지자 한국은행은 더 많은 증권회사를 증권매매(RP매매) 대상기관에 대거 포함했다. 애초 17개 국내외 은행 이외에 5개 증권사가 매매 대상기관에 있었는데, 지난해 3월 26일 11개 증권사를 추가했다. 이로써 한국은행은 이들 증권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우량 증권을 현금으로 사들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증권사는 부실한 채권까지 제값에 현금으로 팔아 위험을 덜고 현금 보유를 늘릴 수 있게 됐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원칙은 어차피 구제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은행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다. 그러나 훨씬 큰 도덕적 해이는 금융업체들이 실물 경제에서 도피해 저금리의 달콤한 버블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의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마티아 베빌라크카(Mattia Bevilacqua) 등은 미국 연준(Fed)의 네 가지 주요 정책(유동성 지원, 금리, 거시건전성 규제, 달러 스왑)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과 최대 유통업체인 아마존의 주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당연히 JP모건에 대한 영향이 네 가지 정책 범주에서 아마존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중앙은행 정책의 즉각적인 혜택은 유통업체보다는 금융 시장과 그 기관에 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리 정책을 제외하고 중앙은행의 개입은 모든 만기에 걸쳐 시장 공포에 영향을 미친다.(1)



표에서 보듯 유동성 공급이 미치는 영향은 금융시장에서 가장 크다. 특히 장기(미래)에 대한 공포를 가장 크게 낮춘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거시건전성 규제 완화가 미치는 영향이다. 금융 회사에 대한 거시건전성 완화가 미래에 은행 자금을 더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존 주주들의 공포를 줄여주는 효과까지 있다. 즉, 시장은 거시건전성 완화를 장기적인 두려움을 줄이는 것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는 연준이 미래에 다시 개입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미래의 공포와 현재의 리스크를 완화할 것으로 해석해 금융시장 전체의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한껏 확대하던 올해 1월 테슬라 주식의 PER(Price Earning Ratio, 주가수익비율)은 1,396까지 올라갔다. 테슬라의 수익으로 테슬라 주식을 모두 사는 데 1,396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반대로, 당신이 지난 1월 테슬라의 모든 주식을 다 샀고 회사 수익으로만 투자 원금을 회수하면 꼬박 1400년이 걸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테슬라가 전기차에서 상상 이상의 혁신적인 발전을 하지 않으면 현재 투자자들은 1400년 또는 최소 350년 미래의 이익을 지금 지급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저금리가 없었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시장의 공포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은 외환 스왑이다. 그 영향은 유동성 지원이나 거시건전성 완화보다 최소 두 배 이상 크다. 게다가 글로벌 시장과 관련해 달러화 스왑이야말로 도덕적 해이를 가장 크게 부추기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특히 한국증시(KOSPI)의 경우, 달러 스왑으로 영국(FTSE), 독일(DAX), 일본(Nikkei) 주식시장보다 장기로 갈수록 공포가 줄어들었다. 그만큼 도덕적 해이가 더 심해졌다.

또한 달러 스왑은 글로벌 달러 차용자들이 평소처럼 사업을 계속하도록 장려하고 심지어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 그 결과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는 연준이 시장에 개입해 구제금융 할 준비와 능력이 있다는 믿음으로 시장 참가자들이 미래에 더 많은 유동성 위험을 감수하도록 고무한다. 특히 연준의 달러 스왑 라인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통화정책 집행의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추진됐다. 그러므로 스왑라인은 양날의 검이다. 달러스왑 라인은 즉시 해당국 금융시장을 진정시키면서도, 각국 중앙은행이 통제하지 못하는 타국 통화(달러화)에 계속 의존하도록 금융시장을 자극해, 추가적인 위험과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 그럴수록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의존도를 강화해 각국 중앙은행 정책을 무력화하고 연준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한책임 주주의 도덕적 해이

그동안 자본주의 거시경제 시스템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서 자유로웠던 주체는 다름 아닌 ‘주주(shareholder)’다. 도덕적 해이가 문제시된 후로도 주주는 주식만큼 책임진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의 조사 및 분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주주 혹은 대리인으로서 경영인에 대한 도덕적 해이가 간혹 언급됐을 뿐이다.

주주, 특히 상장된 민간기업 주주(주식시장에 참가한 주주)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바로 책임이 유한하다는 데 있다. 주주의 책임에 한계를 둔 것은 기업의 혁신적 활동을 고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그 자체로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 회사가 파산할 경우 주주는 오직 주식지분만큼만 책임을 진다. 주식만 털고 나가면 회사에 대한 책임은 없다. 그 때문에 기업 파산과 관련된 비용은 주식 소유자인 주주에게 온전히 매겨지지 않고 다른 채권자와 노동자,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주주들이 이윤을 위해 더 위험한 전략을 추구하도록 한다.

파산은 최악의 상황이고 파산법원에 가기 전에도 채권단 자율협약을 통해 일정액의 부채를 탕감받거나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파산하기 전에도 정부 개입으로 구제금융을 받고 기업 회생을 타진할 수 있다. 명백하게 주주의 손실을 국가가 대신 지불하는 ‘손실의 사회화’가 따르지만, 주주들은 별다른 손실 없이 기업을 다시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주식 제도 특히, 주주의 유한책임은 태생부터 ‘도덕적 해이’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출처: Goodhart(2021)]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는 ‘유한책임의 도덕적 해이’에서 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주주들의 투자수익률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수익성 함수로 표현된다. 회사의 수익성이 좋지 않거나 부실해졌을 때 주주의 투자수익률은 평평(flat)하다. 하지만, 기업이 잘하고 있을 때 주주의 투자수익률은 강하게 상승한다.(2)

이러한 수익 구조이기 때문에, 주주들은 완전히 안전한 정책(도표의 C점)보다는 A와 B의 결과와 균등한 확률로, ‘AB’ 기업의 평균 이익과 동등한 투자수익을 받는 위험한 전략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주주들은 경영진이 더 위험한 활동을 하도록 장려하는 선천적인 선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주주의 위험 선호는 손실 회피에 의해 다소간 완화된다. 하지만 주주의 손실 회피는 적절한 분산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단일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할수록 제한되고 위험 선호는 커진다. 따라서 주주의 유한책임은 자연스럽게 경영진이 사회적으로 최적인 것보다 더 위험한 전략을 채택하도록 유도한다.

경영진에게는 자기자본 가치를 극대화하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과 동일한 인센티브가 제공됐다. 이는 당연히 경영진이 추가 위험을 추구하도록 이끌었다. 한국처럼 대주주와 경영진이 일치하는 재벌 체제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전문 경영인을 CEO로 선임한다 해도 기대 수명은 5년 이하로 비교적 짧다. 이는 그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단기 주식 가치 평가를 극대화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보다 위험한 재무구조(자사주 매입 등)를 수용하고, 직원 수를 줄이고, 연구 개발 부문과 같은 장기투자를 줄이는 것으로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상 주주자본주의의 폐해이며, 주주의 도덕적 해이의 결과다.

이처럼 금융시장과 주주의 도덕적 해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도덕적 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시대, 중앙은행과 정부의 지원과 금융시장, 주주의 도덕적 해이가 맞물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자산 및 소득 불평등을 불러왔다는 점도 확인해야 한다.

(1) “Moral hazard, the fear of the markets, and how central banks responded to Covid-19” Mattia Bevilacqua, Lukas Brandl-Cheng, Jon Danielsson, Jean-Pierre Zigran

(2) The moral hazard of limited liability, Charles Goodhart, 202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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