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주택자에게 ‘갭투기’의 책임을 전가합니까?

[특집호] 갭투기 피해 그 후, ‘집’은 ‘불안’이 됐다

차례

① 안전한 곳에 살고 있습니까?
② 무주택자만 ‘빚더미’ 앉게 만드는 ‘갭투기’
③ 부동산 법인, 주택임대업에 뛰어들다
④ 청년들, 부동산 ‘몰수’와 ‘사회화’를 가리키다
⑤ 문 정부 5년, 주거의 질은 나아졌나요?
⑥ 문재인 정부의 ‘주거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⑦ [인터뷰] 문재인 정부도 ‘주택공급 만능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⑧ 인포그래픽 세계 집값 지도
⑨ 재벌의 부동산 투기 50년사, 서울 두 개를 사들였다
⑩ [인터뷰] 모든 무주택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법
: 전장호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시당 대표
⑪ 워커스 사전: 성장
⑫ 한국의 주거권 운동과 실험들
⑬ [인터뷰] 도시 난민들의 운동, ‘사적소유’를 흔들어야 한다
: 김상철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정책팀장
⑭ ‘의료 사회화’처럼 ‘주택 사회화’도 가능하다
⑮ [인터뷰] 빌라왕 잡는 유일한 대안, “주택 사회화와 탈 상품화”
: 이안 클로트워시 베를린 주택 사회화 운동 활동가

[출처: 홍진훤]

일명 ‘갭투기꾼’으로 언론에 가장 많이 거론된 진현철은 내가 사는 집의 임대인이다. 2019년 10월 진 씨가 방송에 나오기 전까지 나는 ‘갭투기’라는 것을 몰랐다. 서울에 사는 2030 무주택자인 내가 부동산에 유일하게 투자하는 것이라곤 10년 넘게 붓고 있는 청약 저축뿐이다. 박봉인 내 월급통장이 치솟는 서울 집값을 따라잡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시간에 그저 살기 바빴다. 그렇게 부동산 투기에 무지했던 나는, 하루아침에 부동산 투기 피해의 한복판에 서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집주인이 바뀌었다

2018년 여름, 내가 사는 2000년식 빌라 옥상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아랫집 반장님이 공사를 해야 하니 집주인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2016년 계약할 때 만났던 임대인 연락처를 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부동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바뀌었다고 했다. 새 집주인은 집을 보러 온 적이 없었다. 이 낡은 집을 부동산 계약서 하나만 보고 사들인 것이었다. 법적으로 전세 계약이 승계되기 때문에 소유주가 바뀌어도 계약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등기부등본상 따로 근저당이 잡힌 것도 없었다.

부동산에서는 임대인이 직접 연락을 해 올 것이라 했다. 하지만 2018년 11월, 계약 만료 시점까지 임대인의 연락은 없었다. 나도 이사 갈 계획이 없어 그대로 계약이 갱신됐다. 그 과정에서 처음 임대인의 주민등록증 사본을 문자로 받았다. 그는 전세자금대출 연장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군말 없이 내주었다.

2019년, TV를 통해 마주한 임대인

2019년 10월, 모르는 번호로 장문의 문자가 왔다.

“OOO씨의 대리인입니다. 임대인 OOO씨가 PD수첩에 나왔습니다.”


스팸이라고 생각했다. 문자를 캡처해 임대인에게 발송했다. 다음 날, 임대인에게 답문이 왔다.

“억울합니다.”


임대인의 실명이 PD수첩에 등장했다. 주민등록증 사본과 나이까지 같았다. 언론은 그가 강서구에만 주택 500여 채를 보유한 ‘갭투기꾼’이라고 했다. “억울하다”라는 문자 한 통을 보낸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법정대리인과 상의하라는 말만 했다. 언론은 그의 실체에 대해서만 폭로할 뿐, 임차인의 피해를 해결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안전한 보금자리였던 집이 하루아침에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불안’이 됐다. 나야말로 억울했다.

무주택자에게 전·월세가 선택이라고?

갭투기 피해를 상담해주겠다는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질문이랍시고 던진 비수 같은 말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다.

“결국 월세 대신 전세를 선택한 것 아닌가요. 자기 이득에 따라 선택한 것이면 책임을 져야죠. 그걸 왜 정책으로 해결하라고 합니까?”


이 집은 서른셋에 마련한 인생 첫 전셋집이었다. 전세자금 중 50%를 은행에서 대출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전세를 고집했던 건 아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첫 월세 집을 계약한 후 10년 넘도록 월세만 전전했다. 보증금 500에 월세 30만 원으로 시작한 반지하 방은 안전은 둘째 치고 해마다 월세가 올랐다. 보증금을 더 모아도 월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관악구에 마련했던 집은 보증금 1000에 월세 60만 원이었다. 주변의 비슷한 집들은 이미 70만 원 이상으로 올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은 아들이 이 집에 들어올 거라며 나가 달라고 했다. 당장 이사를 가야 할 처지가 됐다.

때마침 주민센터로부터 장기전세주택 지원 대상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시가 2억 원 미만 60m2 이하의 집에 전세금의 85%까지 빌려주는 제도다. 대출 이자도 13만 원대로, 월세에 비하면 유혹적인 금액이다.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탁상행정식의 제도는 전세 시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지원자가 직접 집을 알아보고 정부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조건에 맞는 매물을 찾아 서류를 넣어도 번번이 ‘안 된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매번 허탕을 치다보니 제출 마감기한이 다가왔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알아본 동네가 전세매물이 많다는 강서구 화곡동이었다.

마음이 급한 내게, 공인중개사가 안내지 하나를 쓱 내밀었다. 거기에는 ‘HUG 전세보증보험’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만 해도 HUG(주택도시보증공사)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공인중개사는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보다는 비싸지만, 은행이자가 월세보다 현저히 적다”라며 “무엇보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사에서 보증하기 때문에 전세금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마침 주거래 은행에서 청년 직장인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전세자금을 대출해주고 있었다. 이미 공인중개사를 통해 알아본 집이었고, 등기부 등본도 확인했으며, 근저당도 없었고, 집주인도 동의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은행과 공사가 각각 매물의 안정성을 확인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대출과 보증이 불가능할 터였다. 예상대로 대출은 문제가 없었다. 나는 당시 임대인 A씨와 직접 만나 계약을 했다. 하지만 임대인이 진 씨로 바뀐 후, 이 모든 절차는 무용지물이 됐다.

은행을 위한 보험이라고요?

진 씨와 계약 갱신을 했던 2018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랬다. 진 씨가 세금을 체납해 집에 가압류가 잡힌 건 2020년 4월경이다. 진 씨가 집 앞에 놓고 간 편지를 보고 알게 됐다. 우체국 소인도 찍히지 않은, 그야말로 ‘놓고 갔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그 편지에서 진 씨는 자신의 세금 체납조차 ‘부동산 정책 변동’ 탓을 했다. 그리고 그가 해결방안이라고 내놓은 것은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전세금을 반환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보험에 가입해 있었다. 은행을 통해 가입한 ‘전세보증보험’이었고 보증료도 납부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의 전세금을 보호해주는 보험’이라고 생각했다. 별도의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진 씨가 보험을 통해 전세금을 반환받으라고 말했을 때도 그 뻔뻔한 태도가 기가 막혔을 뿐,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찾아간 은행에서 듣게 된 이야기는 청천벽력 같았다. ‘전세보증보험’은 전세금을 반환해주는 ‘반환보증’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은행의 권유로 내가 가입한 보험은 무엇이냔 말이다. 은행은 ‘은행을 위한 보증보험’이라고 했다.

지금은 전세보증보험이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필수’로 가입해야 한다는 인식은 많지 않았다. 2019년 금융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보험 가입률 자체가 저조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중가입’ 때문이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전세 대출은 시중보다 금리가 낮기 때문에 은행은 주택금융공사(HF)로부터 안정성을 보증받는다. 그게 내가 들었던 ‘보증보험’이다. 임차인이 전세금을 반환받기 위해 드는 보험은 ‘반환보증’이다. 문제는 당시 둘 다 은행을 통해 가입해야 하는데, 은행이 두 가지의 보험을 고객에게 설명하도록 의무화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은행이 필요한 보증보험만 설명하고 가입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후 2020년, 국토교통부는 이중 가입에 따른 혼란을 인정하고, 이듬해부터 전세보증부터 반환보증까지 모두 HF에서 가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또한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와 함께, 임대인도 보증료를 나눠 부담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중 가입’ 혼선으로 피해를 본 나 같은 사람은 후속 조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정작 HF나 HUG는 가입을 허가하지 않는다. 이미 임대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조치는 피해 ‘예방’ 일뿐, 이미 일어난 피해의 해결방안은 되지 못했다.

‘반환보증’이 아닌 ‘전세보증’ 보험만 가입한 임차인은 어떻게 될까. 앞서 말했듯 전세보증보험은 은행 대출에 대한 보험이다. 그래서 주택금융공사가 은행 대출분의 90%를 은행에 지급한다. 그리고 그 90%를 비롯해 나머지 10%까지 고스란히 임차인의 ‘빚’이 된다. 정작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집에 대한 가압류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우리 집 등기를 기준으로, 국세청이 체납 국세를, 서울시가 지방세를, HUG가 16억 원의 가압류를 신청했다. HUG는 진 씨가 소유한 다른 매물의 임차인들 중 반환보증에 가입한 이들의 보증금을 돌려준다. 그리고 진 씨의 남은 매물에 가압류를 넣는다. 그 가압류가 다시 임차인의 발목을 잡아 보증보험 가입 거부는 물론, 은행 대출까지 문제가 생긴다. 겉으로는 임대인의 재산이 가압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모든 피해는 ‘반환보증’에 가입조차 하지 못하는 임차인의 몫이다.

집단대응, 갭투기대응시민모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혼자서는 이 지옥 같은 굴레를 빠져나올 수 없다. 그래서 다른 피해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익명으로 운영되는 단체 대화방에 가입했다. 여기에는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모인 170여 명의 피해자가 있었다. 피해의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단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익명 방이었고, 모두 사기를 경험한 이들이라 신뢰를 갖고 모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언론에 실명으로 기고했던 글을 공유하며 연락처를 남겼다. 그리고 2020년 12월,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공동 대응하려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모였다.

한 자리에 모인 피해자들은 2030 세대의 직장인과 신혼부부였다. 그들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말했다. 민사소송인 전세 반환 소송은 물론이고, 형사고발을 한 경우도 있었다. 전세 반환 소송은 피해가 명백하기 때문에 대부분 승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사는 달랐다. 사기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을 통해 많은 피해가 보도됐음에도, 증거가 되지 않는다며 고발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사기로 인정되는 판례를 찾아오라고 하거나, 더 많은 피해자나 증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는 첫 공식 활동으로 피해사례를 모아 알릴 수 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피해자임을 확인하고 중복 참여를 막기 위해 계약내용 등의 확인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올해 1월, 총 108명의 피해자가 참여한 갭투기 피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는 처참했다. 피해자들은 자책을 하다 우울증을 겪거나 가정 파탄으로 극심한 정신적 피해에 시달렸다.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토부와 HUG에 질의서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PD수첩이 방영되기 이전부터 이미 국토부와 금융위원회가 빌라촌을 중심으로 갭투기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한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전세반환보증보험으로 갭투기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나선 집단행동에서 희망이 아닌 좌절을 맛봐야 했다. 질의서를 보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 30명 중 단 9명만이 답변서를 보내왔다. 심지어 피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고 답변한 곳은 관련 법안을 낸 소병훈 의원실 단 한 곳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병훈 의원실 조차 피해예방에 관한 대책만 이야기할 뿐, 이미 벌어진 피해에 대한 해결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 사이 단체 대화방에는 더 많은 피해자들이 모였다. 새로운 임대인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우리의 피해를 알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했던 사람들은 경매에 나서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우리의 문제는 다시 개인의 문제로 귀결됐다. 그리고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빚을 떠안지 않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계약 갱신밖에 없었다. 더는 평안함도, 안정감도 주지 못하는 집에서 나는 다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주택자 주거정책, 다시 튀어나온 ‘갭투기’

정부가 종부세 인상 정책을 발표하자 포털 기사에 다시 ‘갭투기’라는 세 글자가 떠오른다. ‘갭투기’로 내 집 마련을 한 사람이 종부세로 고통받을 것을 우려하는 뭐 그런 내용이다. 기사를 보며 진 씨가 집 앞에 남긴 ‘억울하다’라는 편지를 생각했다. 종부세 체납으로 가압류된 전셋집의 등기부 등본도 떠올랐다. 내가 서 있는 현실과, 주거정책 속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 2년의 계약이 끝나기 전,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더 해야 할까. 그리고 무주택자인 나는 왜 내가 하지도 않은 갭투기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걸까.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