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심어야 할 건 머리카락만이 아니다

[레인보우]


이재명 후보의 탈모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여론을 크게 흔들었던 지난 1월, 한 동성 부부가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은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두 사람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는 관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소송을 제기한 김용민-소성욱 부부는 10년 차 커플이며, 이미 2017년부터 함께 살았고 2019년에는 수백 명의 지인과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됐다. 이들은 주거비와 생활비 등을 함께 분담하고 서로를 돌보는 실질적인 돌봄 부양자 관계에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격 관리 업무처리 지침에 따르면 당사자 사이에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으나 혼인 의사가 있고, 현재 동거를 하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만한 실체가 있는 사실상의 배우자라면 피부양자로 인정할 수 있게 돼 있다. 두 사람은 이 자격 기준을 모두 갖췄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2월 해당 업무처리 지침에 따라 이들의 피부양자 자격 신청을 받아들였다가, 관련 보도가 나오자 8개월 만에 돌연 ‘실무 담당자의 실수’라며 인정을 취소했다. 그들이 동성이라는 사실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는 유일한 이유였다. 이에 두 사람은 소송을 통해 법원의 해석을 기다렸지만, 법원마저 동성 간의 결합을 혼인 관계로 해석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건강보험공단의 결정을 인정했다.

사실혼 관계의 사람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이들이 제도적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을 뿐, 애정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관계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과 똑같이 매일 일상을 함께 보내며, 누구보다 서로의 상황과 상태를 잘 알고, 아프거나 위기에 처하면 가장 가까이에서 돌봄을 제공할 사람인데도 단지 그 상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자격을 거부당하는 건 너무 부당하지 않나.

건강보험 제도에 숨어 있는 차별

국민건강보험이 부당하게 적용되는 것은 동성 부부만이 아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은 내국인보다 훨씬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이주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개인별 소득이 아닌 전년도 전체 가구당 평균 보험료를 기준으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9년 이주민 가구의 월평균 보험료 인상률은 한국인 가구 보험료 인상률의 4배에 달했다. 게다가 이주민 가족은 노인 부모와 만 19세가 넘은 자녀를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다. 소규모 사업장이나 임시직 노동이 많고, 코로나19로 실직이 증가해 지역가입자 수가 더 많아지고 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보험료에 체납이라도 하면 바로 체류 자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이주민에 대한 명백한 제도적 차별이다.

건강보험의 보장 대상이나 적용 질환의 확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사람이 쉽게 “내가 낸 세금으로 왜 저들을/그런 걸 도와줘야 하느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회보장으로서 국민건강보험은 애초에 상호 연대의 취지를 지니고 있다. 다 함께 공동의 기금을 마련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를 돕는 것이 사회 공동체 전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간보험은 각자의 계약 내용에 따라 보험 비용과 보장범위가 달라지지만, 국민건강보험은 소득이 적은 사람은 적게 내고, 소득이 많은 사람은 좀 더 많이 부담하며, 설령 질병을 경험하는 비중이 다를지라도 사회 전체의 부담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에서 가입자 간 보장 내용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취지를 더욱 살려 보장성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꾸준히 진전돼 온 정책 방향이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의 사회연대 취지에 따른다면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보장 혜택을 누릴 자격은 충분한 것이다.

더구나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이라면 불이익을 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차별적 조건을 해소하고 형평성을 맞춰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성 간 혼인 관계뿐 아니라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원가족에서 독립해 새로운 가족이나 돌봄 관계를 이룬 경우, 현재의 법‧제도적 한계로 실질적인 돌봄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사회적, 경제적 차별을 받고 있다면 건강보험은 사회연대의 취지를 살려 법의 한계를 뛰어넘을 필요도 있다. 이주민 가족 또한 이러한 방향에서 불합리한 보험료 부담 제도를 바꾸고 피부양자 자격 기준을 확대해야 한다.

건강보험에 사회연대의 의미를 더 심자

40대가 지나자 부쩍 탈모가 심해졌고,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면서 임신중지와 피임 시술에 보험을 적용하라는 요구를 꾸준히 해왔으며, 동성의 파트너와 올해로 16년째 삶을 나누고 있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난 1월 건강보험을 둘러싼 각종 이슈는 나에게도 여러모로 중요했다. 어째서 그 와중에도 탈모는 남성의 이슈로만 부각되는지, 왜 탈모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는 더 관심을 주목하지 않는지, 왜 남성의 여성형 유방에는 보험이 적용되지만 시기를 놓치면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임신중지나 피임 시술의 보험 적용에는 이토록 저항이 큰지, 이런 모든 것들이 건강보험이 단순히 무얼 심고 뽑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정말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한다면, 우리가 정말 신경을 써야 할 것은 건강보험의 사회연대 의미를 더 넓고, 더 단단하게 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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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40대가 지나자 부쩍 탈모가 심해졌고,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면서 임신중지와 피임 시술에 보험을 적용하라는 요구를 꾸준히 해왔으며, 동성의 파트너와 올해로 16년째 삶을 나누고 있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난 1월 건강보험을 둘러싼 각종 이슈는 나에게도 여러모로 중요했다. 어째서 그 와중에도 탈모는 남성의 이슈로만 부각되는지, 왜 탈모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는 더 관심을 주목하지 않는지, 왜 남성의 여성형 유방에는 보험이 적용되지만 시기를 놓치면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임신중지나 피임 시술의 보험 적용에는 이토록 저항이 큰지, 이런 모든 것들이 건강보험이 단순히 무얼 심고 뽑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정말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한다면, 우리가 정말 신경을 써야 할 것은 건강보험의 사회연대 의미를 더 넓고, 더 단단하게 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