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유력 주자들 ‘비정규직 문제’, 전략적으로 회피”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정책 질의에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답변 거부

한국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는 이번 대선에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지만, 불평등 문제의 핵심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구체적 정책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8대, 19대 대선에서 거대 양당을 포함한 모든 대선후보가 비정규 정책을 발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비정규직 당사자 조직인 ‘비정규직 이제그만’이 20대 대선후보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을 물었지만, 유력 대선주자들은 답변을 거부했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비정규직 정책을 조금이나마 발표한 이재명 후보가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보낸 질의에 답변하지 않은 것은 공약으로 제시한 비정규직 정책의 실효성과 진정성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라며 “1100만 명의 비정규직의 삶과 고통을 외면하고 우리 사회 평등과 정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선 유력 후보인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답변 거부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비정규직 이제그만)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대선후보의 비정규 노동자 정책에 대한 답변 분석과 함께 입장을 발표했다. 앞서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현장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당면 현안을 중심으로 10개 요구안과 18개 세부 정책을 대선 후보 7명(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 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 당 안철수, 노동당 사회주의후보 이백윤, 진보당 김재연, 기본소득당 오준호)의 선거운동본부에 전달했고, 2주간 답변을 기다렸다. 질의한 결과 기본소득당 오준호, 노동당 이백윤, 정의당 심상정, 진보당 김재연 후보만 답변을 줬다.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힘 윤석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집행위원 명숙 활동가는 “이재명, 윤석열 등의 미응답은 비정규직 노동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사실상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대한 무시이자 거부라고 판단한다”라며 “그들은 단체와 교수연구집단의 질문에는 답하였으나 정작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을 결정할 자격과 능력이 없다고 보는 엘리트주의적 시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의 표를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답변을 제출한 기본소득당,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 등 4개 정당 후보는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요구안에 대해 성실하게 답하는 등 비정규직 차별과 불평등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에 동의했다. ▲상시업무 비정규직 사용금지, 파견법·기간제법 폐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특수고용, 플랫폼,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법 2조 개정 ▲비정규직 중심의 노동정책 폐기로 청년정책 구성 ▲5인 미만 사업장 노동권 보장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개정 ▲코로나19 관련 피해노동자 생계보장·모든 해고 금지·미등록이주노동자 체류허가 즉각 실시 ▲여성 및 장애인 등 소수자 차별적인 관행 및 제도 개선 ▲비정규직 차별 즉각 시정 및 특수고용노동자 단체교섭 성실이행, 불법파견 사용자 엄중처벌 등 10가지 요구안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후보가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다만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는 상시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법제화와 파견법 및 기간제법 폐지에 대해선 반대 의견을 밝혔다. 오 후보 측은 “비정규직 자체의 축소와 폐지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인 변화에서 쉽지 않은 방식”이라며 “기본소득당은 생계급여 이상 충분 기본소득 지급으로 노동자의 거부권을 부여함으로써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축소하고 줄여나가는 전략을 노동시장 개혁의 주된 경로로 상정했다”라고 밝혔다. 상시지속 업무의 비정규직 사용 금지 관련한 법제화에 대해선 “노동시장의 변화로 업무의 상시지속 여부를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용의 정당화 근거 지표로 사용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명숙 활동가는 네 후보의 답변은 “비정규직 제도의 폐지는 가능하며, 이를 통해 불평등한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과 착취가 노동자 개인이 능력이 없거나 운이 없어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과 산재를 겪는 것이 아니라 국가정책의 실패이자 책임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라며 “각 후보들이 답했듯이, 비정규직 정책이 잘못 설계되고 대기업 재벌 경영주의 범죄를 눈감아주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최근 공정이라는 말로 일부 정치인이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정책을 지속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정책이 곧 청년 정책, 단기 일자리 위주의 청년일자리 정책 폐기돼야”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청년 다수가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청년 정책의 핵심은 비정규직 정책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전체 비정규직 10명 중 3명은 청년이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 1년 또는 2년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늘려 청년고용은 증가한 듯 보이지만 청년 노동자들은 불안을 겪어야 했다”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신규채용 시 정규직 중심으로 채용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4명의 후보들도 비정규직 폐기가 바로 청년정책이라는 입장에 모두 찬성했다.

이를 위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전 국민 ‘일자리 보장제’를 제도화하고 평생학습 ‘자기 계발 계좌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심 후보 측은 “현행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예산은 국가가 지원하지만 각 지자체와 마을공동체가 일자리보장센터를 만들고, 지역사회에서 요구되는 돌봄, 생태, 문화, 안전 등 ‘사회적 가치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라며 “국민 누구든 일자리를 원하면 정부가 정한 생활임금-사회보험 보장 수준에서 일자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백윤 노동당 후보 측은 ‘국가책임일자리’로 완전 고용을 실현하겠다며 “생산수단 소유·운영의 근본적 변혁을 전제로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는 양질의 일자리, 권리로서의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라고 밝혔다. 재벌과 기간산업 공영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가사돌봄·사회서비스·의료 등에서 일자리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또 현행 헌법 32조 1항을 개정, “모든 사람은 노동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방법으로 고용을 보장하며, 법률에 따라 생활임금제를 시행한다”를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 측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가고용책임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공공 영역 사회서비스 부문 등에서 임금 삭감 없는 총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 측은 “단기 저임금 일자리에 대한 재정 보조금 지급에 반대하고 생계급여 이상 기본소득 지급으로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의 거부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청년 일자리 정책으로 제시했다. 충분한 기본소득 지급으로 노동자의 거부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은 기본소득당의 핵심 노동개혁 기조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당사자들, 다양한 사업장 문제 지적

기자회견엔 불법파견, 특수고용노동자, 공공 비정규직, 코로나19 시기 해고노동자, 제조업 하청 노동자 등 다양한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참석해, 현장의 다양한 문제들을 토로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문제가 커졌고, 결국 국제적 압력에 밀려 지난해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했다. 하지만 정작 노조법 2조 개정을 하지 않아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유력 후보들의 질문 회피에 대해서도 “거대 보수 양당은 비정규직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화됐을 경우 현재의 태도와 보수 양당의 정책 포지션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향후 거대 양당의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비정규직 문제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정동헌 쿠팡물류센터지회 동탄센터분회장은 최근 동탄물류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 쿠팡의 노동환경을 규탄했다. 정 분회장은 “쿠팡의 무능력한 사고대처 시스템 때문에 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라며 “지금껏 사망사고가 두 건이나 발생했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연쇄적 죽음의 비극을 끊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오는 19일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비정규직 대행진에 나선다. 노동이 실종된 대선을 규탄하며, 비정규직 요구안을 선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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