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지구 저편, 우크라이나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의 ‘주범’은 러시아이고, ‘종범’은 미국이다. 우크라이나가 미·러 간 동유럽 패권 경쟁의 대리 전장이 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자체의 참혹함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한반도의 유사성 때문에 더욱 시선을 끈다. 세계 패권국가의 틈바구니에 낀 약소국으로서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의 대리 전쟁터가 될 수 있는 약한 고리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이 유럽지역에서는 러시아를 겨냥한 나토(NATO)의 동진 정책으로 집약된다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대중국 봉쇄전략으로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 들어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의 내용과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국가안보 전략 잠정지침’,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
지난해 3월 바이든 정부가 내놓은 ‘국가안보 전략 잠정지침’은 중국을 안정적이고 개방된 국제 질서, 다른 말로 미국에 지속해서 도전할 잠재력이 있는 ‘유일한 경쟁자’로 명시했다. 또한 중국의 도전을 막기 위해 ▲트럼프가 망쳐놓은 글로벌 리더십을 복원하고 ▲민주주의 동맹을 구축하여 가치(인권·민주주의)문제로 중국을 압박하며 ▲첨단기술 투자와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의 경제 부상을 봉쇄한다는 대응책을 내놨다. 이와 함께 중국이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직접 위협할 경우 이에 응전할 것을 명시했다. 이는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군사, 첨단기술, 글로벌 공급망, 인권, 이데올로기까지 그 영역을 넓힐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일대일로’의 대항마인 ‘더 나은 세상 재건(B3W)’ 구상
지난해 6월, 미국은 7개국 정상회의(G7)를 통해 중국을 압박했다. G7 공동성명은 중국의 “신장자치구 인권존중, 홍콩 자치 보장, 대만 위협 중단”을 촉구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세계 경제 작동을 저해하는 중국의 비시장적 정책과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강조했다.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또 대외원조 프로그램인 ‘더 나은 세상 재건(B3W)’ 구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2035년까지 40조 달러(4경 원)를 투입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저개발국·개발도상국의 사회기반시설 개발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 방식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부합하는 것으로, 민간자본을 활용해 자금을 충당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B3W가 중국의 일대일로(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의 대항마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호주·영국 삼각군사동맹, 오커스(AUKUS) 출범
지난해 9월엔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명분으로 영국, 호주와 함께 새로운 3각 군사동맹인 ‘오커스(AUKUS)’를 결성했다. 핵 추진 잠수함은 미국이 군사 분야에서 가장 민감하게 보호하는 기술임에도 호주에 해당 기술을 이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본토에서 출발하지 않고 호주를 통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오커스는 사이버 능력, 인공지능, 양자기술, 해저 능력 등 최첨단 군사기술을 공유하고 상호 운용 능력을 높여나가는 등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외교, 안보, 국방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
이로써 미국은 나토, 안보 협의체인 쿼드,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중국을 견제하는 최첨단 군사기술동맹을 새롭게 구축해냈다. 오커스의 출범으로 미국과 중국이 계속 충돌해온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쿼드 격상
트럼프 시기, 미 · 중갈등 격화로 부활한 쿼드(QUAD)의 위상도 격상됐다. 쿼드 참여 4개국(미국·인도·호주·일본)은 지난해 3월 화상 정상회담에 이어 오커스 출범 직후인 9월에 첫 대면 정상회담을 열어, 대중국 견제 전략을 구체화했다. 쿼드는 매년 회담을 정례화해 중국의 백신 외교에 맞서 코로나19 백신의 인도·태평양지역 기부를 확대하고, G7 정상회의에서 강조한 인도 · 태평양 국가의 인프라 건설 지원 정책에 동참키로 했다. 아울러 반도체를 포함한 중요 기술과 재료의 공급망을 확보키로 했으며, 인프라·사이버안보·우주안보 협력 등으로 논의 의제를 넓혔다. 과학기술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견제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미국이 쿼드를 통해 인도와의 협력을 한층 구체화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추진하는데 핵심국이자 쿼드 참가국 중 유일하게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다. 동시에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고 중국과의 국경 충돌로 적대관계를 꺼리는 국가여서, 미국 입장에서 인도의 포섭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기 미국은 쿼드 참가국을 확대해 이를 동아시아판 나토로 키운다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쿼드 확대가 아닌 ‘쿼드 격상’과 ‘오커스 출범’ 등 맞춤형 동맹국 조합으로 대중국 포위망을 촘촘하게 짜고 있다.
RCEP 대응책,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지난해 6월 백악관은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필수 광물 및 재료, 의약품 등 4대 품목에 대해 미국 중심의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제외한 민주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바로 작년 10월 바이든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밝힌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라는 경제협력체다.
미국은 올 초부터 IPEF의 구성 준비에 돌입했고,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IPEF 출범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중국이 주도하고 한국을 포함해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RCEP)’이 올해 1월 공식 발효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RCEP를 통해 세계 경제 주도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미국의 경제봉쇄를 어느 정도 극복할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미 고위 관리들을 각국에 파견해 IPEF에 동참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한국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로 중국 견제
바이든은 후보 시절부터 민주적 가치를 위협하는 핵심국가로 중국과 러시아를 지목해 왔다. 그는 취임 1년 안에 “민주주의를 위한 글로벌 정상회의”를 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동맹국을 동원해 ‘민주주의 대 독재’ 프레임으로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미국은 지난해 12월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세계 110여 개국 정상을 화상으로 초대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었다. 바이든은 회의 직후 “민주주의 파트너들과 동맹을 재건했다”라고 강조했지만, 한국 보수언론에서조차 초청 대상국의 선정 기준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초청국 가운데 파키스탄, 이집트 등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는 국가들과, 중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대만, 그리고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민주주의 정상회의 직전,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이유로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도 선언했다. 이 역시 가치와 이념으로 중국을 고립시킨다는 바이든 전략의 일환이었다.
대만 활용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월 미국은 1979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대만 주미 대표를 공식 초청했다. 3월에는 대만과 ‘해안 경비대 워킹그룹’ 설립에 합의했고, 1979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대사가 대만을 방문했다. 바이든은 7억5천만 달러로 예상되는 무기 판매도 승인했다.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인 만큼, IPEF에도 참여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양국은 반도체를 비롯해 핵심 공급망 구축에 협력하기로 했다. 6월에는 미국과 대만이 FTA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5년 만에 재개했다.
미국과 대만이 지난 3월 해경분야 협력양해각서에 서명하자 중국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역대 최대 규모의 무력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중국이 대만 하늘을 최첨단 전투기로 위협한 것만 940차례가 넘는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며 대만해협에 군함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대만은 미·중 간 군사충돌의 잠재적 화약고가 됐다.
심화하는 미·중 경쟁
중국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지난해 중국은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열어, ‘쌍순환(雙循環) 발전전략’과 ‘기술혁신’의 세부내용을 승인했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내 자체 산업 사슬을 구축하고,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해 2035년까지 2020년 대비 2배 수준의 GDP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통제 및 투자 제재에 맞서 세계 공급의 80%를 차지하는 희토류 수출 규제와 국익에 손해를 끼치는 외국기업에 수출입 및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법·제도를 2020년부터 정비해왔다. 대만, 홍콩,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매개로 한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도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시기 시작된 미국의 대중 고관세는 철폐되지 않았고, 미 · 중 간 경제전쟁, 이념전쟁, 군사 경쟁은 더욱 격화하고 있다. 바이든 취임 후 열린 미 · 중 정상회담은 양 정상 간의 설전으로 끝났을 뿐 갈등 해소를 위한 그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올 11월 미국은 중간선거를,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3연임 확정을 위한 당대회를 앞두고 있어 올해 안에 미·중 갈등이 누그러질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의 대립’이 미·중 경쟁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미 · 중 경쟁은 올해가 지나더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격화할 것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윤석열 신정부의 한미동맹론이 만나면?
미·중 경쟁이 격화할수록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도 미·중 경쟁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은 이미 한국에 IPEF 참여를 제안한 바 있다. 남중국해의 군사적 갈등이 심화할 경우 한국의 동참을 요구할 수도 있다. 향후 한국 정부에 동맹의 이름으로 오커스 합류를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미사일 방어체제 완성을 위한 사드 추가 배치도 적극 요구할 것이다.
때마침 한국에는 미국의 구상에 적극 동참할 의지가 있는 신정부가 들어선다. 윤석열 신정부의 외교정책은 한미동맹 전면화와 대북 적대 정책 강화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신정부의 정책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정상화 ▲3불(사드 추가배치 불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불가,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폐기 ▲한미 외교‧국방(2+2) 핵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실질 가동 ▲미 전략자산 전개(폭격기, 항공모함, 핵잠수함) ▲한미 확장억제(핵우산) 실행력 강화 ▲한국형 3축 체계(선제타격능력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대량 응징 보복 역량) 복원 ▲첨단전력 고도화 ▲국방백서 북한군 주적 명시 등이다.
실제 윤석열 당선자는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은 미국”이라며 “민주당 정권에서 무너져 내린 한미동맹을 재건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과 신기술, 글로벌 공급망, 우주, 사이버, 원자로 등 새로운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맺겠다”라고 밝혔다. 미국이 권하지도 않았는데 ‘쿼드’ 가입 의사도 밝혔다. 미 의회조사국이 발표한 〈한국의 새 대통령 선출에 관한 보고서〉도 ‘윤석열 후보의 승리로 북한과 일본, 그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정책 등 (중략) 여러 문제에 대해 (한국의 새 정부가) 미국과 더 일치할 수 있음을 예고한다”라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 노선을 분명히 하며 ‘김정은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라는 윤석열 당선자의 발언에, 북한은 3월 24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화답했다. 미국이 동맹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대중봉쇄정책 동참을 요구하고, 신임정부가 이에 적극 응하면서 향후 한반도는 남북대결로 인한 위기와 미국의 대중국봉쇄전략 참여로 인한 위기가 중첩되는 ‘이중 위기’의 가능성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먼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 또다시 확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