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한국 사회의 대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에서도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우크라이나 평화 행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긴급구호연대’를 조직해 우크라이나 평화촛불 집회를 개최했고,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거나 계획 중에 있다. 재한 우크라이나 커뮤니티가 매주 주말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서 개최하는 집회에도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며 한국인들은 일상에서 전쟁을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전쟁을 바라보는 한국의 입장은 복잡하다. 일례로 지난해 발생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해서는 국회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우크라이나 결의안은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는 국제사회의 외교적·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확대에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무기 지원 불가 및 현재 수준의 러시아 제재 유지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의 호소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느냐이다. 재한 우크라이나 커뮤니티 입장에선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조국을 침공해 민간인 대량 학살을 벌이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서울 시내 건물에 우크라이나 국기 조명을 설치하는 것 외엔 무기 지원도, 대규모 인도적 지원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4월 11일, 한국 국회가 개최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화상 연설에 고작 60명의 국회의원만 참석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선거기간 동안 우크라이나 지지를 선거 캠페인으로 활용했다. 또한 쿼드(Quad) 가입을 언급하는 등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10명도 채 안 됐다. 그런데도 만약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무기 지원과 경제제재 강화를 받아들인다면 한국 사회운동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수용했다는 명분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에 연대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얼마만큼 수용할지를 결정하는 일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아니, 이미 중요하게 다뤘어야 하는 과제임에도,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야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벨라루스로부터의 질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만 해도, 벨라루스는 한국 미디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던 국가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벨라루스인들이 한국 정부를 향해 부정 선거와 EU의 제재를 받는 벨라루스와의 경제협력을 중단해달라고 호소(1)했음에도, 정부와 기업은 벨라루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왔다. 그러다 러시아가 벨라루스 루카셴코 정권과 협력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에야 한국 정부는 벨라루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했다.
벨라루스 시민에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벨라루스 독립노총위원장과 간부들을 구속(2)한 루카센코 정권이 전쟁에 동참하면서, 푸틴의 전쟁은 벨라루스 시민의 전쟁이 돼 버렸다. 실제로 벨라루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고 있으며, 전쟁에도 참전하고 있다. 한국의 벨라루스 커뮤니티는 우크라이나 커뮤니티와 함께 러시아 침공 규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재한 우크라이나 커뮤니티보다 먼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벨라루스 커뮤니티도 한국 정부에 비슷한 실망을 해왔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한국이 왜 독재국가와 경제협력을 확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미얀마 쿠데타에 비해 벨라루스 문제에 관심이 적은 것에 아쉬움을 표해왔다. 특히 벨라루스 커뮤니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 사회가 보여준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러시아의 선전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운동에 던져질 질문들
갈수록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인권탄압, 민주주의 훼손 문제 등에 한국 사회가 연대하고 개입해야 한다는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국내에는 전 세계의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책임의 무게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관여와 지원 요청은 한국의 사회운동에도 똑같이 들어오고 있다. 물론 미얀마 사례에서 보듯, 한국 사회는 미얀마 군부와 협력하는 한국 기업의 투자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5·18정신과 한반도 평화를 강조해왔던 문재인 정부가 자랑스럽게 무기 수출 실적을 홍보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푸틴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설령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휴전에 합의한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포기하는 휴전협정을 받아들인다면 푸틴은 전쟁을 멈출 것인가? 민간인 학살을 벌인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합당한가? 벨라루스 루카셴코 정권과의 경제협력은 다시 추진돼도 괜찮은가? 휴전을 해도 여전히 재한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들은 거리에 나와 연대와 정의를 호소할 것이다. 그때 한국의 사회운동은 윤석열 정부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중국과 대만 간의 무력 충돌 위험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신냉전 시대로 불리는 현재의 국제정세는 한국 사회운동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51897
(2) https://www.ituc-csi.org/belarus-kgb-detains-union-leaders?msdynttrid=cIv8gI2uFUOQCfpjsr2kpWoGkqvw2MaXh2zl5ZSKJtQ&fbclid=IwAR0LEfoOm8va4LVI_a6OJUHS7zvxShanCBMdzsRZPhRwCCBJXT06LvhV-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