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대우조선 사태 막으려면…원청이 교섭 나와야”

원·하청 책임 떠넘기기에 고통받는 하청노동자들 “노조법 개정하라”

민주노총이 ‘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막겠다며 원청 교섭 의무 쟁취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원청이 교섭 의무를 하청 업체에 떠넘기는 문제로 하청노동자들이 고공농성, 단식, 천막농성을 벌이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하는 악순환이 지난 20년째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하반기 정기 국회에서 원청이 (하청노동자와의) 교섭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포함한 조치를 위해 힘차게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하청노동자들이 임단협교섭투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 “하청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 산업안전 등 모든 것을 결정하고 좌우지하는 원청사용자가 교섭에 나오지 않고 아무런 권한 없이 인력공급만 하는 하청업체에 교섭 의무를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끝없는 하청노동자들의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막으려면 노조법 제2조 제2호 사용자 정의에 근로조건에서 사실상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미치는 자를 사용자에 포함해 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과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노동조건을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앞서 민주노총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10만 국민동의 청원을 지난 2020년 달성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기자회견에서는 하청업체와의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발언에 나섰다. 19년째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신성원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매년 진행하는 임금 단체협상에서 하청업체 사장들은 아무것도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자신들의 입으로 말한다”면서 하지만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면서도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 원청이 가장 먼저 고소·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금속노조 5개 비정규직지회(기아자동차비정규직3지회, 한국지엠비정규직3지회, 기아자동차판매연대지회, 현대자동차판매연대지회,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는 지난 6월 29일 원청이 하청 교섭에 나올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각각의 원청에 총 세 차례 교섭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원청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대서울병원의 미화 용역업체 노동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새봄지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7시간 주6일제 사업장의 1일 8시간 주5일제’ 등을 요구하며 사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관련해 우미영 지부장은 “(용역업체는)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노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고, 원청에도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도 교섭을 진행 중이지만, 사측의 입장이 바뀌진 않을 것 같다”면서 “원청에 이야기하면 하청에 이야기하라 하고, 하청에 말하면 원청에서 해줄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나”라고 전했다.

기타 공공기관인 우체국시설관리단 노동자들은 사측과 임금협상을 8년째 이어오고 있다. 우체국시설관리단에는 전국 우체국의 청소노동자, 청사 경비원, 금융경비원, 기술원 등이 고용돼 있다. 이들의 업무는 20여 년 전만 해도 원청인 우정사업본부 공무원들이 해오던 일이었다. 박정석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 우체국시설관리본부 본부장은 “우체국시설관리단 노동자들은 공무원의 3분의 1에 불과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면서 “하청과 백날 교섭해도 ‘예산이 없다’고만 답한다. 이제는 원청인 우정사업본부가 대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태승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원청이 교섭에 불응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22년 전인 2010년,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노조 사건과 관련해 “원청 사업주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면서 또한 “2011년 한국수자원공사에 대한 사내하청업체의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사건에서 원청 사업주인 수자원공사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라고 근거를 들었다.

특히 하 변호사는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앞선 대법원의 ‘실질적 지배력설’을 근거로 원청 사업주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다”면서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는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관점에서 노무 제공 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단체교섭의 대상인 노동조건 등을 지배·결정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