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파업에 대한 재산권 침해 주장은 강도권”

손배피해 당사자 등 단식 8일차…60여 개 인권단체 나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7일 오전 60여 개 인권단체가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정기국회 종료를 이틀 앞두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막판 추가 심사에 돌입해, 이를 압박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손배가압류 소송 당사자 등 노조법 피해 당사자들이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며 단식에 나선 지 8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출처: 손잡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는 인권단체는 국회 앞 단식농성장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3권 보장이 목적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며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동돼 왔다”라며 국회가 지금 당장 노조법 2·3조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환노위의 노조법 개정 논의가) 다들 잘 안될 거라고 예상하지만, 8년 중 국회 논의가 가장 뜨겁다”라며 “국회의원 중 누가 또다시 경영자집단의 주장을 앞세워 국민을 등지고 있는지 함께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선 활동가는 노동자 파업을 ‘불법’과 ‘손배 책임’으로 모는 경영자 집단의 주장을 정부와 여당이 동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손잡고의 파업 관련 소송 기록 분석에 따르면 사측이 불법 파업으로 건 소송들은 평균 1심까지의 소송기간이 2년 2개월, 최장 7년이 걸렸다. 또 이러한 소송들은 ‘불법 파업’을 주장하는 사측의 주장만으로 소송이 가능했고, 소송에서 지더라도 사측은 조합원의 노조 탈퇴 같은 부수적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2019년 손잡고가 노동자 236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을 때, 손배를 경험한 노동자 90% 이상이 동료가 노조를 탈퇴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고 답했다. 또한 소송의 영향이 노동자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윤지선 활동가는 “원고가 100% 이긴 소송은 197건 중 11건에 불과하다. 5% 남짓이다. 정부여당은 나중에 노동자들이 옳았으면 합법이었다는 게 밝혀지지 않냐고 하지만, 회사가 항소하면 13년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게 손배소송이다”이라며 소송 과정 자체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서기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장애인에게도 노조법 개정 투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공동대표는 노조법 2조가 사용자 규정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어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이 실질적인 사용자인 보건복지부와 교섭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고용과 노동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데, 지금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각 개별기관이 맡고 있다. 단가 조정, 근무 환경 등 모든 고용조건을 보건복지부가 하달해 진행하지만, 활동지원사 노동조합은 각 개별기관과 소송을 진행하고, 보건복지부는 책임 없이 방관만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장애인 일자리 사업도 지자체와 노동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지만, 책임있는 사용자들이 이를 개별 기관에 맡기면서 노동조합 활동에 제약이 많다고 덧붙였다.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는 노조법 개정을 두고 경영계에서 앞세우는 ‘기업의 경영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반박했다. 류은숙 활동가는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한국경제인연합회는 헌법상 평등권, 직업의 자유, 재산권 침해 등을 말하고 있는데 권자를 붙이면 죄다 정당한 권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영계의 권리 주장을 ‘강도권’이라 비판했다. 이어 “강도권이라 할 수 있는 소위 재산권의 주장은 배타적인 사유화”라고 지적하며 “타자의 삶을, 사회적으로 취약함과 불리함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생존을 나몰라라 할 수 없다. 전체 구성원의 실질적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보호될 재산권이 될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류은숙 활동가는 이어 노동자의 권리만이 타락한 재산권 주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으로 재산권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는 맥락에서 출발했고, 그 뿌리는 인간의 몸에 대한 권리, 생존을 도모할 권리다. 같은 뿌리에서 자랐으나, 큰 권력을 업은 재산은 타인과 사회의 생존을 위협하며 배타적으로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쉽게 변질되곤 했다. 재산의 타락에 대한 방부제로 등장한 것이 노동자의 권리다”라며 “소유권 절대의 원칙을 모든 구성원의 ‘살아갈 권리’로 바꿔온 것이 노동권이고, 불리한 조건만 늘어놓고 도장찍게 만드는 강요를 ‘계약자유의 원칙’이라 우기는 체제를 노동자의 단결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로 바꿔온 것이 입헌주의와 인권의 역사다”라고 지적했다.

단식 8일째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유 부지회장은 “반쪽짜리 임금, 반쪽짜리 권리, 반쪽짜리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없다”라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인권을 세울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이든 하청이든 플랫폼이든 특수고용이든 어떤 조건에 처해 있더라도 자신의 진짜 고용자와 교섭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라며 “누군가의 투쟁,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이제는 입법으로 국회가 국민들에게 자신의 역할을 다할 차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란봉투법 통과될까 잔뜩 긴장한 경영계, 국회 찾아가 읍소도

한편, 경영계 역시 노조법 2·3조 개정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경련, 경총 등 6개 단체 상근 부회장단은 6일 국회를 찾아 ‘노란봉투법’ 입법을 위한 심의를 중단해 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조합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입법은 세계적으로도 그 입법례를 찾을 수 없다”라며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사상 면책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우리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과 평등권,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꾸준한 지적처럼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은 적법한 파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① 현행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이 불분명한 특수고용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할 경우, ②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의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되지 못한 소수노동조합이 단독으로 쟁의행위를 할 경우, ③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할 경우, ④ 정리해고에 대항해 쟁의행위를 할 경우, 현재까지의 법원 판례 경향상 ‘불법쟁의행위’로 판단되기가 십상(1)이기 때문이다. 위법한 파업을 할 경우 수십억, 수백억의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 손잡고 조사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24개 사업장에서 진행된 64건의 손해배상 소송의 총 청구금액은 1,867억 원에 달했다. 규모가 큰 사업장에서 손배소송이 취하되면서 현재 손배 청구금액은 상당 부분 줄었으나, 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직 단위에선 손배 소송의 위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야당이 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할 시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민주당 역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여론 악화 등을 이유로 재계와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법안 단독 처리를 피하는 모양새다.

7일 국회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선 국민의힘이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연말까지만 적용되는 52시간 적용 예외를 다시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상정을 요구하면서, 노조법 개정안이 연동된, 여야가 서로 주고 받는 식의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생겼다. 이날 환노위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번 소위에서 합의되지 않은 안건을 여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건을 상정하셨는데 그럼에도 법안심사에는 참여하겠다”라며 이와 함께 근로기준법 개정안 상정을 요청했다. 김영진 고용노동법소위 위원장은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절차대로 여야 간사 협의 통해서 우리 법안소위에서 정상적으로 같이 논의하시면 된다”라며 노조법 개정안과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동시 논의에 대해 “건설적인 의견”이란 뜻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국민의힘의 ‘한시적 추가연장근로’ 연장 논의에 즉각 비판 성명을 내고 “한시적 추가연장근로 연장 논의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소·영세기업노동자들을 위험에 방치하는 것”이라며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장시간노동에 방치해 건강과 안전의 사각지대로 내동댕이치려는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 <손배가압류 제도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의 필요성과 방향>, 하태승, 질라라비 2022년 9월호, http://workright.jinbo.net/xe/issue/7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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