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요금 논쟁, 사회적 관점과 생태적 관점

[이슈] 기후위기 해법을 둘러싼 서로 다른 생각들①


[편집자 주] 지난 3월 14일,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의 대정부 요구안이 일부 수정됐다. ‘시민들의 필수적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철회하고, 존엄한 삶을 위한 에너지 기본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라’라는 요구가 ‘에너지 공공성 강화로 전체 에너지 수요를 대폭 감축하고, 시민들의 필수적 에너지를 탈상품화해 에너지 기본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라’로 최종 수정됐다. 414 조직위 안팎에서 비판과 이견이 제기된 ‘시민들의 필수적 전기/가스 요금 인상 철회’ 요구가 수정·보완된 것이다.

앞서 3월 9일 〈‘기후위기 시대’ 공공요금 인상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쟁점 토론회가 열렸지만, 기후운동 진영 내 에너지 수요 감축 및 전환의 경로와 방법에 대한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워커스》는 쟁점 토론을 이 어가기 위해 세 명의 활동가에게 기고를 부탁했다. 에너지 요금 인상 문제로 촉발된 이 논의가 기후정의운동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킬 수 있길 바란다.


최근 에너지요금 논쟁이 뜨겁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글로벌 인플레이션마저 가세하면서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원료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화석에너지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가스공사가 수입가격 상승 부담을 일시적으로 떠안았다. 하지만 그 결과 지난해 한전의 영업손실은 약 32조 6천억, 그리고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8조 6천억 원에 달해 이를 어떻게 해소할 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정부와 여당은 에너지 소매가격을 일부 올리는 방안을 선택하게 됐고, 한전은 2023년 1분기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당 13.1원 인상했다. 산업부가 kWh당 51.6원 올려야 한다고 지난해 국회에 보고했으니, 전기요금 인상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가스요금 역시 지난해 메카주울당 5.47원이 인상됐지만 산업부는 올해 그 두 배 가까운 10.4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겨울 난방비 인상 부담에 대한 시민들의 부담과 정책 대응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전력소비가 늘어날 올여름에 어떤 식으로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계기로 에너지요금을 결정하는 정책에 근본적으로 수정을 가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에너지요금이 책정돼야 하는지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시민사회와 기후운동 쪽에서는 모든 국민이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자 가격을 시장의 수요공급 흐름에 따라서 결정하면 안 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사회공공성 관점에서 시민들이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정책적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여기서부터 문제를 풀어가 보자.

시장적 관점을 넘은 사회공공적 관점에서의 에너지요금 접근

우선 에너지요금을 둘러싸고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전기와 가스가 ‘공공재’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어떤 사람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없어(경합성) 가격을 지불한 사람만 한정적으로 소비하게 만들 수 있고, 또 그렇게 가격을 지불한 사람만 소비하도록 통제(배제성)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는 모두 시장재다. 즉, 시장에서 수요-공급논리에 따라 이윤이 얹어진 가격을 받고 거래할 수 있다면 다 시장재인 것이다. 반면 시장에서 돈을 받고 사고팔 수 없어 시장 공급이 안 되지만 시민이 필요로 하는 국방 서비스 같은 것은 한정적으로 공공재로 본다. 시장거래를 위주로 규정한 이런 관점에 따르면 전기, 가스, 수도도 당연히 ‘시장재’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경제학적 정의는 다분히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재화만을 잔여적으로 공공재로 규정하게 된다. 이는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많이 어긋난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장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공공성 관점에서는 모든 시민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재화와 서비스들을 권리의 차원에서 다룬다. 예컨대 수도, 가스, 전기 등 사회 인프라나 교육, 보건 등은 시장에서 공급이 가능하든 아니든 관계없이 개인의 지불능력에만 의존해서 시장에서 구입하게 방치할 수 없다. 개인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국가가 직접 제공하거나 또는 공공이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인 접근권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접근으로부터 ‘에너지 기본권’이라는 개념도 나온다. 이는 틀림없이 시장적 관점보다 더 진전된 발상이며 현대 복지국가에 어울리는 제안이다.


에너지 서비스는 교육, 의료 서비스와 다르다

하지만 에너지는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교육, 보건 등과 달리 에너지는 시장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을 넘어 ‘생태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생태적 관점에서는 시장거래 가능성이나 사회적 필수재인가의 여부와 별도로, 특정 재화가 지구생태계의 수용능력 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따진다. 자연으로부터 획득한 재화가 화석연료처럼 재생 불가능한지 아닌지, 목재나 물처럼 재생가능하더라도 지구의 재생능력 안에 있는지, 특히 기후의 관점에서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다르게 재화를 규정하는 것이다.

전기에너지는 시장적 관점에서는 시장재고, 사회공공성 관점에서는 틀림없이 공공성이 있는 필수재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에서는 똑같은 전기에너지라도 무엇으로 생산되는가에 따라 성격히 완전히 달라진다. 석탄-가스 등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전기에너지는 무상으로 무한히 공급하는 것은 고사하고, 가능한 빨리 완전히 없애야 하는 재화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더라도 무한히 생산을 늘릴 수는 없다. 특히 한국처럼 전체의 70% 내외를 화석연료에서 공급받는 한국의 전기에너지는 소비를 강력히 제한해야 하는 비재생에너지임은 물론, 기후위기에 가장 책임이 큰 탄소배출 에너지다. 빠르게 줄여야 하며, 동시에 태양과 풍력 등 재생가능한 방식으로 대체해야 한다.

따라서 화석에너지와 같은 반생태적 재화에 대해서는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공급하는 스타일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사회공공성 관점에서는 교육, 보건, 에너지 등이 다 똑같이 가급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더 많이 제공해주면 줄수록 복지가 증진될 것이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교육, 복지와 에너지(그것도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는 완전히 다른 재화 또는 서비스다. 화석에너지 공급은 사회적 관점에서는 많이 공급할수록 복지가 늘어날지는 몰라도 생태적 관점에서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요금에 올바로 접근하려면 시장적 관점은 물론, 사회공공적 관점도 뛰어넘어서 생태적 관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고, 이를 전제로 일정 수준의 사회공공적 관점을 투사해야 한다. 에너지요금 정책도 이를 기반으로 결정돼야 한다.

시장가격 활용이 시장주의라는 착각

그런데 요금 인상 불가를 주장하면서 사회공공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요금 인상에 대해 시장주의적 원가주의 발상이라거나 시장주의적으로 필수재(또는 가치재)를 공급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에너지 기본권을 지킨다면서 요금 인상을 동결하고 더 나아가 현재 에너지 기업들의 공공성을 더 강화하면 기후를 포함한 생태적 이슈가 자동으로 풀릴 수 있는 것처럼 잠정적으로 가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사회공공성이 해결된다고 생태적 문제들이 절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회공공성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 꼭 시장적 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공공성 관점에 갇혀 에너지요금 인상 요인을 시민들이 느끼기도 전에 공공이 자동적으로 흡수해버린다면, 적어도 소비자 시민 입장에서는 에너지를 덜 쓰고 효율화 방안을 찾거나,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자고 요구하는 등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동기부여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오히려 요금동결로 과거보다 에너지 사용을 계속 확대하는 관성을 방치할 개연성이 높다.

생태적 관점에서 에너지요금 결정은 기본적으로 생태적 관점을 먼저 전제하고 그 안에서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에너지 사용의 총규모를 통제하면서 특히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사용을 현재 기후운동이 요구하는 만큼 빠르게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방향을 기본으로, 그 안에서 에너지 기본권 보장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태적 한계를 먼저 긋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구매가격은 물론, 에너지 생산과 소비 행동을 바꾸는 유인이나 규제 제도를 모두 동원해야 한다. 석탄화력발전 폐쇄 같은 국가적 규모의 전환은 시장 메커니즘이 아니라 사회적 결단으로 국가의 규제를 통해 풀어야 한다. 대규모 내연기관 자동차의 축소도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 금지 같은 강제를 동원할 수 있다.

당연하게 가격기제도 충분히 활용돼야 한다. 에너지가격(특히 화석에너지가격)을 다른 재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만들면 가정이나 기업에서 에너지 효율화 방안을 모색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에 단열 같은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공적 지원 유인제도가 붙으면 효과를 가속화할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의 행동 변화는 이렇게 다면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할 때만, 소득이 낮은 시민들에게 (현재의 극히 한정된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넘어서) 필수적인 에너지 보장을 위한 복지정책을 얹을 수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가격기제가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격기제의 힘은 세다. 1970년대 석유파동, 2008년 유가 급등 등 에너지 가격 폭등의 시기에 대부분의 소비는 큰 폭으로 줄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덴마크는 풍력산업 전환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석탄 의존국 영국은 1990년대와 2010년대 두 차례 석탄 가격의 상대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을 축소했고, 그 결과 이제 사실상 석탄화력발전의 완전 폐쇄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시민이 지난겨울 전기요금과 난방비가 오르면서 가정에서의 에너지 효율화 방안을 훨씬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시장사회라는 우리 현실에서 시장을 무시한 발상은 오히려 시장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가격이 개입됐다고 해서 시장의 효율에 의존해 문제를 푸는 것이라 착각하면 안 된다. 배급의 형태로 자원배분을 하지 않는 이상 가격 메커니즘을 우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에서는 불평등과 생태위기를 동시에 풀자면서 가정용 에너지 사용과 산업용 에너지 사용을 필수재, 비필수재로 구분해 접근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사회적으로 ‘필수’와 ‘사치’ 사이의 경계선이 얼마나 임의적인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은 물론, 가정용에도 필수적인 것과 사치적인 것이 섞여 있고 산업용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무시한 발상이다. 산업용에서 영세 자영업이나 농민의 에너지 소비를 비필수적이라고 해야 하나? 대기업 에너지 소비도 필수재 생산에 들어가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어쩌면 과거에 사회적 형평성 고려 없이 생태위기만 강조했던 편향에 대한 역편향으로 사회적 형평성을 앞세우는 경향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생태적 한계를 확실히 한 뒤, 사회적 형평성을 도모할 해법들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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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기후를 위한 경제학』 저자, 기후경제와 디지털경제 연구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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