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시간을 정하지 마세요

[이슈] 응급구조사가 된 세월호 생존자…'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다시, 4월

① 들어가며
② 슬픔의 시간을 정하지 마세요 | 장애진
③ [인터뷰] "사참위 보고서는 주어 빠진 보고서"…"앞으로 만들 진상규명 위원회에선 피해자 참여 보장해야" | 변정필 기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세월호 ‘생존 학생’이라는 말이 너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목소리를 함께 내주었지만 다른 시선도 있었습니다. 세월호 기사엔 ‘정치적이다’ ‘눈물 코스프레를 한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가끔은 ‘우리는 웃으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의문도 품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세월호 생존 학생인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우리를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눈빛과 흐르는 정적이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되면서 주눅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생존 학생’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단어도 아니고, 사실이니까요. 그 후 점점 당당하게 생활하며 사람들 앞에서 진상규명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해마다 4월이 되면 마이크를 잡고 발언했습니다. 제 옆엔 세월호를 기억해주시고 본인 일처럼 앞장서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중에 꼭 도움을 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응급구조과에 진학해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은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세월호참사의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세월호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응급상황에서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진 참사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의 어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응급구조사는 응급상황에 투입되는 직업입니다. 내가 응급구조사가 되면 응급상황 시 초기 대응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을 가지면 응급상황 시 초기에 처치도 가능하며 사람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돌려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다른 친구들보다는 트라우마가 심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다르게 정신과 약을 먹지도 않고 극단적인 선택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 해서 트라우마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아픔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습니다. 종종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저에게 아픔을 꺼내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마음이 아려왔던 거 같습니다. 보이는 아픔만 트라우마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니 심정지로 오는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열심히 응급처치를 시행해도 결국 사망하게 된 환자의 가족들을 보면 세월호참사 유가족들과 겹쳐 보이고, 돌아오지 못한 제 친구들이 생각나 힘들었던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4월이 다가오고 봄이 오는 신호를 보게 되면 친구들이 그리워 힘들어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응급구조사로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그만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하면 됐다’ ‘그만해라’라는 말, 지금까지 듣는 말입니다. 저도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생 때 항상 4월 16일이 다가오면 혼자 많은 인터뷰를 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떠올리기 힘든 참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큰 부담이 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할 수 없었습니다. 제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데 어떻게 그만하겠습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한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요. 다신 세월호참사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안 되지만 갑자기 내일 본인한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만하라고 하지 마세요. 슬픔의 시간을 정하지 마세요. 자식을 잃은 슬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의 기간을 어떻게 정할까요.

저도 제가 세월호참사를 겪을 줄 몰랐습니다. 항상 여러 사고가 뉴스에 보도되면 슬퍼만 했는데 저한테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희생자가 될 수도, 유가족이 될 수도, 생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닌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과거의 참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원인을 밝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분들, 본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상황에 누가 있든 간에 모두를 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참사와 닮아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던 참사였는데 일어났던 것,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는데 막지 못한 것.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마세요. 어떤 말을 해도 슬픔은 가라앉지 않을 거 압니다. 제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생각하고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안전한 나라를 꿈꿉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을 선택해 일하고 있는 만큼 응급구조사로서 이제는 목소리를 내어 좀 더 국민들의 안전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119 구급대원은 알지만, 응급구조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알게 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월호참사가 일어나게 된 이유 그리고 친구들이 돌아올 수 없던 이유가 밝혀질 때까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행동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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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저는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다른 친구들보다는 트라우마가 심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다르게 정신과 약을 먹지도 않고 극단적인 선택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 해서 트라우마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아픔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습니다. 종종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저에게 아픔을 꺼내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마음이 아려왔던 거 같습니다. 보이는 아픔만 트라우마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 모모


    친구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 애진님의 삶을 멋지게 사는 것,
    모두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