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원인을 간절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증거를 미치도록 찾고 싶었다. 세월호 도면을 보고 또 보고, 또 읽었다. 2017년 4월 9일 세월호가 바다 밖으로 올라와 목포 신항에 거치된 이후로는 집보다 목포 신항에 있을 때가 마음이 더 편했다. 세월호 안에 직접 들어가 보고 밖에서도 일일이 눈으로 살펴보면서 모든 것을 확인하려 했다. 수학여행길 단원고 학생들이 찍은 영상부터 세월호 화물칸에 실린 차량 블랙박스 영상까지 보지 않은 것들이 없다. 그 절박함에 잇몸이 내려앉았다.
“남들보다 내 상처가 큰데, 나는 더 알고 싶은데, 왜 이걸 안 알려줄까. 경주마 같았다. 옆을 볼 겨를이 없었다. ‘또라이’라는 소문까지 났으니까. 그렇게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세월호가 말해주는 증거를 찾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받쳐주지 못하니까 열불이 나고. 그러면서 동수를 향해 달려갔다. 그 끝에는 동수가 있겠지 하면서.
스트레스로 폭주하다가 결국 2019년엔 몇 번을 쓰러졌다. 한 번은 목포 신항에서 크게 쓰러졌는데, 눈을 뜨고 나서 사람들을 몰라봤다. 일에 대한 기억은 그래도 놓지는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사람들을 잊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동수 아빠는 현재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서 진상규명부서장으로 일한다.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아홉 번의 국가기관 수사와 조사가 있었다. 검찰, 감사원, 국회 국정조사, 해양안전심판원, 세월호특별수사단, 특검의 수사와 조사가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의 청원으로 만들어진 독립조사기구인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2015.3-2016.9, 이하 세월호특조위), 세월호 선체를 조사했던 선체조사위원회(2017.3-2018.8, 이하 선조위)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22년 9월 문을 닫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2018.12-2022.9, 이하 사참위)가 있었다. 이들 국가기관의 조사결과는 종합보고서로 여러 권에 나뉘어 발간됐다.
그런데도 동수 아빠는 진상규명에 필요하다며 또 책을 냈다. 하필이면 사참위에서 부결된 증거조작 관련 보고서를 다룬 책이다. 사참위에서 부결된 조사결과 보고서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조사관들의 뜻에 힘을 싣고 싶었다. 지난 3월, 본인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린 「증거가 말하는 세월호 참사- 사참위 조사관들의 세월호 핵심 증거조사」(북콤마)가 출간됐다.
《워커스》는 지난 3월 23일 안산에 위치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동수 아빠 정성욱 진상규명부서장을 만나 「증거가 말하는 세월호 참사- 사참위 조사관들의 세월호 핵심 증거조사」를 기어이 세상에 내놓는 데 동참한 이유를 물었다.
▲ 정성욱 진상규명부서장 [출처: 변정필 기자] |
「증거가 말하는 세월호참사」에 이름을 올리면서 논란도, 비판도 예상했을 것 같다. 사참위에서 부결시킨 보고서를 책으로 내는 데 공저자로 참여한 이유는.
선조위 보고서나 사참위 보고서는 주어가 빠진 보고서다. 선조위 종합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내부적으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조사관과 가족들이 외면했었다. 사참위 종합보고서 역시 조사를 담당했던 조사관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외부 집필진들의 의도대로 종합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생각한다. 부결된 보고서를 책으로 발간하는 일에 함께한 이유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활용된 어떤 증거나 조사결과도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은 세 번의 공적·독립적인 조사기구를 거쳤다. 어떤 한계가 있었나.
사참위 위원들의 구성을 보면 대다수가 변호사였다. 전문가가 없었다. 전문가가 필요했다. 조선학회처럼 정부 용역을 받아서 일해야 하는, 정부와 관계가 있는 전문가는 반갑지않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들어왔어야 했다.
여야를 대표하는 인사가 정당 추천으로 들어오는 것도 폐해다. 그러면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정치적인 쟁점이 이슈가 된다. 나는 세 번의 조사위가 다 그렇다고 느꼈다. 진상규명이 합의해서 되는 문제는 아니지 않나. 또, 사참위의 경우 위원이 총 세 번 바뀌었다. 마지막 위원은 6개월에서 7개월 정도 일했다. 위원회 조사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을지 의문이 든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놓고 마지막 조사 위원회인 사참위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종 결론까지 몇 차례 수정을 거듭하는 등 진통도 컸다. 일부 보고서는 부결됐다. 사참위 외부에서는 조사관들이 외력에 의한 충돌 가능성이나 항적 등 증거조작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조사했다며, 조사관들이 유가족을 내세워 ‘음모론’을 추종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세월호 내부의 기기결함 등 선체 내부에 침몰 원인이 있다는 내인설도 그렇고 외부 충격 가능성을 열어 놓았던 열린안도 그렇고 객관적으로 세월호 침몰 원인을 가족들에게 납득을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증거와 자료가 없다. 다 가정에 추정을 더해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걸 누가 받아들이겠나.
언론에서도 사참위 조사에 대해서 ‘열린안이다’ ‘내인설이다’ 자꾸 이렇게 구분해 가면서 그걸 이슈화하고 편을 갈랐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들은 세월호 침몰에 대해서 어떤 입장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가족들이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들이 희생돼야 했는지 납득하고 이해하면 수긍하겠다고 했으니, 최소한 가족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훼손된 증거를 돌이킬 수 없으니 침몰 원인은 어쩔 수 없이 추정의 영역으로 남는 것 아닌가.
그 부분이 문제다. 추정으로 가려면 상당 부분 위원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원위원회에서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전원위원회가 가족들에게 전부 공개되지 않았다. 투명하게 했으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안 됐을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숨기지 않았나. 종합보고서 편찬위원회도 다 공개가 안 됐다. 그래서 저는 그 결과를 100% 인정하지 않는다.
침몰 원인 조사결과 보고서는 항적 조사에서 나온 증거와 충돌했는데, 수정을 거쳐서 채택됐다. 사참위 종합보고서에서 침몰 원인을 서술할 때는 선조위 조사결과가 포함되기도 했는데, 사참위에서 검증도 안 된 사안이 사참위 조사결과와 무관하게 포함되기도 했다. 이럴 거면 (충돌하는 조사결과를) 모두 부결시켰어야 했다. 그리고 조사관들이 조사했던 모든 증거를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공개해 이후에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이런 위원회를 운영할 때 피해자 참여를 보장했으면 좋겠다.
진상규명 조사에 피해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가족협의회가 사참위에 처음부터 요구한 바가 있다. 종합보고서를 작성할 때 유가족들과 소통해달라고.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위원회 활동이 끝나고 종합보고서 하나를 유가족들에게 던져주면서 진상규명 조사결과를 다 이해하라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조사 과정을 세세하게 알지 못하니, 조사결과가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할 길이 없다. 그냥 결론만 있는 거다. 결론만 보고 수긍하라고 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결론에 이르는 여러 증거와 길들이 있었을 텐데 그 증거와 길을 다 살펴보고 싶다는 거다.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고 느낀 데는 세월호참사 책임자들이 충분히 처벌받지 못했다는 생각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사람의 목숨값이 너무 싸다. 사람의 목숨, 사람의 인권을 하찮게 본다. 123정장은 세월호에 도착해서 아무 일도 안 했고, 이 때문에 처벌받았다. 123정장 판결문을 보면 추후에 더 높은 상급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말로만, 판결문에만 존재한다. 실제로는 그 책임이 물어지지 않았다. 청와대 책임자나 해경 책임자들에 대해서 수많은 수사와 조사가 있었고 우리 가족들도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결국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났다.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부족해서, 법으로는 입증이 안 돼서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씨랜드 화재 이런 재난 참사가 있었지만 제대로 밝혀진 게 있었을까?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나온 게 있나. 없지 않나. 하찮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국가에 가르쳐줘야 한다. 이를테면 ‘생명안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법과 제도만 만든다고 좋은 게 아니다. 계속 같이 싸우면서, 국가가 생명과 인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도록 해야 한다.
왜 그럴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그 답을 국가 매뉴얼이나 법령 혹은 정부 공문서로 작성해 넣는 것이 어려워서는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이미 참사는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며 어이없는 희생에 국민들이 집단 우울증에 다시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름대로 ‘정답’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각 참사에 대해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 「증거가 말하는 세월호 참사」 책을 펴내며 중
▲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진상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와 「증거가 말하는 세월호 참사」 [출처: 변정필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재난 참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싸움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우리 가족들이 싸워서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 처음엔 안 갔다. 못 가겠더라.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9년 동안 싸우면서 재난·참사의 재발 방지, 안전사회 건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어디에다가 외친 걸까. 수도 없이 거리에서 노숙과 단식을 했는데 그게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이 들고 ‘나는 무엇을 위해 9년이란 시간을 보냈나’ 후회도 했다. 솔직히 죄책감이 들었다. 더 열심히 싸웠어야 했는데.
그런데 시민들도 재난참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지만, 정부도 세월호참사를 학습했다. 정부의 대처가 상당히 빨랐다. 애도 기간도 딱 7일로 끝내버렸다. 그리고 바로 가족들을 개별 접촉하기 시작했다. 세월호참사를 보고 학습을 한 것 같다. 국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유가족들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모이지 못하게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애도와 추모의 시간을 충분히 줬어야 했다. 만약 그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안에 국가 장·차관의 아들, 딸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끝냈을까? 아마도 절대 그렇게 안 끝냈을 거다.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는 어떻게 되는 건가.
일단 세월호 영구 거치가 확정됐다. 세월호가 임시 거치돼 있는 목포 신항 반대편에 생태공원이 있다. 그쪽으로 세월호를 이전하고, 세월호 안전체험관 등이 포함된 건물 총 세 채가 지어질 예정이다.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전공원에 대한 예산은 마련됐는데 세월호 보존에 대한 예산 부분은 해결이 필요하다. 세월호를 이전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책에 “결국 진상규명의 긴 터널을 가족들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썼다. 그동안 스스로를 목격자이자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해왔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섭섭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세월호참사 이후 8년여 국가의 공적 조사기관을 통한 진상규명은 끝났다. 이 시점에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 스스로가 고민해야 한다는 걸 말한 거다. 사참위 보고서를 자세히 읽고 이해하는 것은 결국 가족들의 몫이고, 가족들이 충분히 납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건 온전히 피해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시민들은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나.
시민들과 함께 참사의 진상규명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4.16가족협의회에서 각종 자료를 목록화하고 있다. 시민들한테 공개할 수 있는 자료는 다 공개할 예정이다. 특조위, 선조위, 사참위가 조사에 나섰지만 이 조사 과정에서 빠진 것은 무엇일까. 밝혀진 것과 밝혀지지 않은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를 함께 토론하고 싶다.
▲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진상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와 「증거가 말하는 세월호 참사」 [출처: 변정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