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수립하는 민주노총 제76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민주노총 집행부를 향한 성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안으로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을 제안했고, 해당 내용과 추진 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집행부가 제출한 초안에 따르면 진보대연합정당 설립은 기존 진보정당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보정당이 함께하는 총선용 선거연합정당을 창당, 이를 통해 지역과 비례대표 후보의 선출을 꾀하자는 제안이다. 집행부는 “진보 정치세력이 ‘선거 대응에서의 각자도생’을 끝내고 신뢰 회복과 단결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비례 집중 투표를 통해 3% 진입장벽 돌파가 가능하고 또한, 지역에서도 집중 지원을 통해 돌파할 수 있어 진보정당 최대의석 도전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정치·총선방침은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크다. 다수 중집위원들이 반대하며 합의안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위원장은 직권으로 안건을 상정해 물의를 빚었다. 진보대연합정당의 당사자인 진보정당들도 진보당을 빼고는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고문이기도 한 이갑용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민주노총의 정치·총선방침에 대해 “진보정당을 존중한다면 단결만이 최고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며 “진보정당들과 현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정치 사업부터 시작해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오는 4월 24일 열리는 민주노총 임시대대를 앞두고 이갑용 민주노총 지도위원/노동당 고문과 인터뷰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 건설을 정치·총선방침으로 내놨다. 노동당과는 어떤 논의를 거쳤나.
노동당에 그 내용과 방식을 전달한 게 다다. 진전된 논의는 없었다. 민주노총 중집에서도 합의가 안 되는데 정당이 합의하긴 더욱 어려운 안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위원장이 정치·총선방침안을 직권을 통해 일방적으로 올리고 있는데 지도부가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지도부의 뜻이 강하다. 임시대대에서 정치·총선방침이 상정되면 어떤 결과가 예상되나.
집행부의 안을 반대하는 인원들이 절대 적지 않다. 반대 서명을 하고 있고, 일파만파 일이 커지고 있다. 만약 표결로 가서 결국 부결되면 집행부의 신뢰도, 위원장의 리더쉽에 심각한 타격이 갈 거다. 윤석열 정권하에서 싸우겠다며 민주노총이 준비한 7월 총파업까지 영향이 간다. 이런 내부의 위험을 왜 무리스럽게 안고 가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반대 목소리가 이렇게나 큰 상황에서 집행부가 가져가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치방침과 총선방침 논의를 시작한다는 내용으로 조정하는 게 가장 적당한 선일 것이다.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 건설을 어떤 이유로 반대하나?
음식점 가서 음식 빨리 나오게 메뉴 통일하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다. 각자 개성이 있고, 차이가 있는데 그렇게 쉽게 단일화할 수 없는 거다. 1년 전 노동당은 변혁당(사회변혁노동자당)과 통합했다. 기간으로 따져도 2년은 걸린 일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강령, 당헌·당규 등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어도 마지막 순간에 또 못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정당이다. 눈앞의 총선 성과를 위해 당장 1년 앞두고 연합정당을 만들자는 건 진보정당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각 정파, 정당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토론할 수 있게 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노동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관련해서 따로 안을 발표할 계획이 있나?
정당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 20년 동안 꾸준히 선거에 출마하고 낙선했던, 진보정당 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속 편하게 말할 수는 없다. 현재 집행부 안은 수정안을 제출해도 타협이 어려운 안 아닌가. 당을 하나로 만든다는데 노동당은 못 들어간다. 정의당 대표가 당 이름을 바꿔서 지역에 출마하는 게 가능하겠나. 집행부 안 중엔 위성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위성정당 반대 입장에서 돌아서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 노동운동이 견지해야 하는 태도에 비춰서도 맞지 않다. 민주노총으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안까지 말하고 있는 건데, 그럼 국회의원 확보해서 뭘 할 건지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이조차 명확하지 않다. 87년부터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다가, 민노당에서 13석 만들었더니 20석 필요하다 하지 않았나. 의석만 차지하면 뭐하나. 그래서 뭘 할 건지가 중요하다.
민주노총의 확대간부의 설문조사 결과가 정치방침 수립의 근거로 쓰이고 있다. 확대간부들마저 보수양당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민주노총이 서둘러 정치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 120만 조합원 중 국민의힘 지지자도 있고, 민주당 지지자도 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찍은 조합원은 거의 반을 넘는다. 왜 그렇게 됐냐가 중요하다. 얼마 전 전주 지역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후보가 민주당에 양보해줘서 고맙다고 플랑을 걸지 않았나. 기가 찼다. 민주당은 민주노총이 보수양당이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견지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진보정당간의 차이를 민주노총조차 조합원에게 교육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볼 땐 민주당까지 진보정당이라 인식하고 있으니 되는 놈 찍어주자는 심리가 발동한다.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 출신들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 운동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또 노동운동 곳곳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바깥사람들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조차 진보정당과 민주당을 변별해서 보지 않는다. 국힘에 대해선 무조건 단절을 얘기하고, 민주당에 대해서도 단절을 얘기하면서, 전직 위원장들을 비롯해 간부들이 민주당으로 갈 때 가도 된다는 식으로 암묵적으로 눈감아준 게 있다. 진보정당과 민주당 간 변별력을 없앤 건 중앙이지, 조합원이 아니다.
(민주노총 확대간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답변을 보면 찍을 정당이 없다 하는데 40년 전부터 그랬다. 8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될 놈 밀어주자면서 우리 사람 키울 생각을 안 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배타적 지지가 심각한 문제였다. 민주당과의 각종 합종연횡을 다 정리하고, 다신 안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기반 없이 연합정당 만들면 총선에서 머릿수 몇 개 만들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그렇게 뽑은들 민주노총에서 통솔을 자신할 수 있나.
그렇다면 정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뭐라고 보나
민주노동당이 분열되고 만들어진 진보정당들은 각자의 이념과 강령을 채택해 이를 토대로 당 활동을 전개해 왔다. 나름의 결과물이 지금의 네 개 정당인데 지금 하나의 당으로 뭉치기는 불가능하다. 강령의 차이가 있는데 세 개 정당의 강령 차이를 좁혀내는 방법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 지금 진보정당이라 불리는 당이 네 개다. 그중 녹색당은 색깔이 명확해서 노동자 중심인 민주노총에서 하나로 합치기 어렵지 않을까 싶고, 개인적으로도 녹색당이 녹색당을 유지하며 그 색깔을 가져가는 게 사회를 위해서도 좋지 않나 생각한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나머지 진보정당과 무언가를 도모하고 싶다면 함께 하는 투쟁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해 보인다. 유럽같은 연합정당을 만들 수 있도록 선거법, 정당법 개정 운동을 시작한다든가 군소정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선거 제도 개편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든가 노동악법을 공동으로 막아내는 시도 등 함께 할 수 있는 영역들을 넓혀가는 식으로 민의를 모아야지 갑자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뭉치자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절차 없이 진보의 단결만을 강조하는 건, 20년 넘게 진보정당 활동을 한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다. 진보정당을 뭉치려면 이 정당 간 논의가 끝없이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그 진행 과정이 각 정당의 당원들에게 공유돼야 한다. 기존 정치세력화 전략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무조건 단결만 외쳐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조차 나온 지 오래다.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가 및 반성적 성찰과 함께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 위기의 원인이 뭔지,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논의가 먼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