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의 보편성을 확장하는 투쟁으로 더 크고 단단하게!"

[기획연재③]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조합원 인터뷰 下

정부와 자본은 건설업 부문에서 좀체 사라지지 않는 온갖 부조리와 폐단의 근원으로 건설노조를 지목했다. 대통령부터 관계부처 장관, 건설업계, 보수언론에 이르기까지 한목소리로 기득권, 조폭집단이라고 건설노조를 몰아세우며 연일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불법, 폭력을 일삼는 세력으로 낙인찍는 데 그치지 않고, 이참에 노동조합의 존립 기반을 완전히 허물 기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관련 소식에 어느덧 감정은 무뎌지고 피로감마저 느낀다는 이들까지 생겼다.

우리가 이렇게 무감각해지는 동안에도, 정부는 강경 일변도로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건설노조를 향한 저들의 비타협적 투쟁 의지는 아마도 진심일 테다. 대체 건설노조는 어떤 조직이길래 이 정부로 하여금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게 만든 걸까?

가공할 탄압에 직면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현재의 국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정부와 자본이 사무치게 싫어하는 건설노조는 어떤 조직인지 알고 싶었다. 이 정부의 진심을 헤아리기보다는 조합원들의 진심을 읽는 편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더 유익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4월 15일,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사무실에서 네 명의 조합원을 만났다. 노동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인 당사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각각 청년과 장년, 이주, 여성의 정체성으로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기 위해 기사는 두 편으로 나뉘어 게재된다.


건설노조가 이끌어 낸 현장의 변화

원청에서 하청, 하청에서 하도급업자(일명 ‘오야지’, ‘십장’ 등)로 이어지는 ‘하청의 재하청 구조’를 끊임없이 양산하며 불법을 저지른 것은 다름 아닌 건설사였다. 건설사들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지속해 온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다. 공사를 맡긴 발주처는 비용절감을 위해 저가낙찰을 유도하고, 저가수주 경쟁에 내몰린 시공사는 자재비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헐값’에 ‘날림’으로 공사를 떠맡을 재하도급업자를 찾았다. 이는 건설노동자들을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위험한 작업환경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부실시공 논란도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노동자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시민 안전을 위해서도 건설노조는 이 뿌리 깊은 부조리를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지녔다. 건설노조의 활동으로 달라진 현장의 모습이 궁금했다.

이명호(이하 ‘이’) “건설노조 출범 원년인 2007년부터 단위사업장과의 개별 협약을 맺기 시작했어요. 그걸 넘어서 2017년에는 드디어 중앙단협을 성사시켜 내요. 개별 현장을 넘어 고용, 임금을 비롯한 제반 노동조건에서 그야말로 전국적인 표준체계를 만들어 낸 거예요. 임단협이란 게 그동안은 일반 제조업 생산직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아 이제 ‘노가다’도 드디어 단협이란 걸 하는구나! 참으로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의 모습이 많이 변했죠. 노조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현장의 모습도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안전과 생명 중심, 권리 중심이 노조의 주된 목표였고 그런 것을 현장에 적용시키면서 정말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공사기간을 단축해서 비용을 아끼는 데만 관심이 있는 건설사들은 이런 노동조합의 활동이 반가울 리 없었다. 자본 입장에서는 다단계 하도급을 문제 삼고 빨리빨리 ‘속도전’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는 건설노조야말로 이윤을 좀먹는 해로운 존재였다.

  이명호 조합원 [출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선전부장 엄재홍]

“사실 예전에는 화장실조차도 없었어요. 식사 질도 형편없었고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이런 기본적인 환경이라든지 처우에 대한 고민을 건설사들이 거의 하지 않은 거죠. 노조가 현장에 안착함으로 인해서 이런 문제들이 조금씩 개선되었고, 또 이런 변화는 단지 조합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죠. 비조합원, 일반 기능공들까지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순기능이 현장의 힘을 모아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아마 그런 것이 지금의 탄압의 빌미가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돈 때문에 양심까지 팔아치우고 속도전을 강요하는 현장에서 노동자의 존엄과 인권을 말하는 집단의 등장은 그 자체로 크나큰 변화였다. 날품팔이 일용직은 별 수 없는 신세라고 한탄했던 건설노동자들도 뭉치면 힘이 된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백영식(이하 ‘백’) “노조가 있으니까 (이제는) 회사가 함부로 해고를 못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일 못한다고 바로 사람 내쫓으니까, 잘리지 않으려면 일을 무진장 빡세게 해야 해요. 그러다 다치는 사람이 생겨도 돈 몇 푼 주고 내보내기도 하고요.”

신연옥(이하 ‘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건설 현장은 남성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인맥 아니면 인력공급소를 통해서만 취업이 가능했었는데, 여성을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는 보조적인 업무나 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회 인식이 그동안 건설 현장에서 여성이 설 자리를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처럼 기능학교를 나온 여성 건설노동자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동일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게 됐거든요. 그런 면에서 건설노조가 성차별을 앞장서 해소해 왔기 때문에 저는 우리 조직이 자랑스럽고 또 고맙기도 해요.”

  주형우 조합원 [출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선전부장 엄재홍]

주형우(이하 ‘주’) “저는 무엇보다도 노조가 없으면 속된 말로 ‘노가다’가 되고, 노조가 있으면 ‘직업’이 되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그 일자리가 과연 미래의 비전이 있느냐는 거예요. 노조가 아니면 인력사무소 통해서 시작부터 일당 1만원, 2만원 깎이고 현장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아, 여기서는 내가 제대로 대우받긴 힘들겠구나’ 그런 좌절감이 밀려오거든요. 노조가 있어서 중간착취나 임금체불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고민인 청년들에게 실은 굉장히 큰 안도감을 주는 요인 같아요.”

이렇게 노조 가입 유무, 국적, 성별, 세대(나이) 등 ‘다름’이 차별과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조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일부 건설 현장에서 “세금 한 푼 안 내는 불법외국인 고용”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 가며 건설 이주노동자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과 인력 퇴출 요구가 거침없이 올라오고 있다. 정부의 건설노조 때리기에 건설업체들이 발맞춰 조합원들을 채용 대상에서 배제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정부와 자본이 분할과 배제를 통해 건설노조를 무력화하려 할 때 노조의 대응은 어때야 할까. ‘분할과 배제’가 권력자들의 통치기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순간 경기중서부건설지부의 활동, 조합원들의 고민은 더없이 값지다.

“여성이, 청년이, 그리고 이주민들이 건설 현장에서 동등한 주체로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이고요. 저는 이렇게 저마다 다른 처지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건설 현장으로 더 많이 유입돼야 한다고 보거든요. 누구보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어야 그 일터는 적정하고 안전한 작업기준을 모두에게 보장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럴려면 모두에게 알맞고 편안한 작업 자세, 각자의 사정에 맞는 일 속도, 물량보다 사람에 기준을 맞추는 일이 좀 더 늘어나야겠죠. 이렇게 보편적 권리를 확장해 나가는 게 노조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주민 당사자로서 백영식 조합원은 떨리는 음성이지만 분명한 어조로 미리 준비해 온 글을 읽었다.

  백영식 조합원 [출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선전부장 엄재홍]

“전 세계 노동자는 하나입니다. 정주나 이주나 자란 환경이나 교육받은 정도의 차이지, 모두 자본가의 착취를 받고 누구나 삶의 행복을 누릴 자유가 있고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경기중서부는 조합팀 운영세칙이라는 하나의 규칙이 있어서 정주, 이주라는 틀을 넘어서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투쟁한다면 이 모순의 벽은 허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부의 탄압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건설노조의 저력을 굳게 믿고 있었다. 어떤 조합원은 ‘성과’를 펼쳐보였고, 또 어떤 조합원은 ‘과제’를 꺼냈다. 이제껏 건설노조가 해온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할수록 우리 조직을 꼭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충천했다.

“하여튼 이렇게 변화된 것들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그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의식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 않습니까? 지금 주요 활동가들이 구속되고 감옥 가고 상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조직을 재정비할 채비를 서둘러야죠. 2선, 3선, 4선까지 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고 싸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태껏 이런 탄압 회피해 본 적도 없고 맞서서 싸워보지 않은 적도 없습니다. 끝내 싸워서 이겨왔고 탄압을 정면에서 돌파했던 경험치가 충분합니다. 그 경험치를 가지고 저들과 싸움 한 판 벌여보도록 하겠습니다. 7월 총파업을 기점으로 판세를 뒤집어야겠습니다.”

“여성 조합원들은 기존에 일하던 조합원들은 지금 거의 일을 하고 있는데, 새로 들어가는 현장에 여성 조합원이 들어가기는 매우 힘들다고 해요. 건설업체들이 조합팀(노동조합 조합원으로 구성된 작업팀)에 일거리를 안 주면서 여성들부터 밀려나는 상황이 아닌지 저는 그게 좀 걱정이 돼요. 비조합원으로 구성된 일반팀도 이런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일반팀 얘기를 들어보면 쉬는 시간도 없대요. 그래서 참도 안 주고 그 시간에 그냥 일을 시킨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노조 활동이 위축되다 보니까 그제서야 노조가 현장에서 해 왔던 역할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이 상황을 좀 잘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간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지금과 같은 탄압 국면은 건설노동자의 권리를 지켜 온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의 풍파를 잘 견뎌내 더 단단한 조직으로 거듭나기를 조합원들은 진심으로 바랐다. 끝으로 노동조합의 향후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지금 탄압의 고리를 들여다봤더니 이건 ‘프레임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론이 가공하고 재생산한 그런 것들,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이른바 가짜뉴스들, 이런 것이 정책에 입안되고 그 정책이 집행될 때 이게 문제다. 그럼 이후에 우리가 이 탄압을 이겨냈을 때에도 그런 악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겠다, 또 다시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 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도 ‘언론 플레이’를 좀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언론으로부터 당했으니, 언론에 대한 올바른 재해석 내지는 재정립을 위해서라도 우리도 거기에 임해야 한다. 그것에 주력해서 보다 심층적인 선전 활동 내지는 언론 활동이 주되게 이뤄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어요. 그것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고 이후에도 이런 탄압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연옥 조합원 [출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선전부장 엄재홍]

“저도 언론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막 민주노총을 욕하고 빨갱이라고 하면 저는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저희 집안에서도 제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하면은 이게 너무너무 정부와 대립하는 단체라고만 생각을 하세요. 그런 면에서 인식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노동조합이 현장을 어떻게 바꿔 왔는지 시민들에게 잘 알리는 활동을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포괄임금제 폐지, 주휴수당 쟁취 이런 요구들이 앞으로 건설노조가 주력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저기가 일할 만 하더라. 저 일자리가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해서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더라. 이런 동의를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끌어내는 순간 건설 현장에서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가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 같아요. 그렇게 노동자들이 보편적 권리를 획득했을 때 안전하고 존중받는 건설 현장을 세워낼 수 있고, 나아가 그곳에서 살아갈 누군가의 삶도 한층 안전하고 쾌적하게 영위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불법과 각종 비리가 판치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설 현장은 건설노조의 활동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 희망을 포기하라는 협박이 난무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출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선전부장 엄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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