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동 열사 수사…경찰, 피해업체의 ‘피해없다’ 진술 쏙 뺐다

피해 건설업체 소장 “경찰 현장 조사 때도 피해없다 진술…경찰도 '여긴 이상 없네' 했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내놓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대책이 건설노동자, 건설노조를 불법화하는 방향으로 강화되는 가운데 건설노조는 지난 5월 2일 산화한 양회동 열사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강압적이고 무리한 법적용을 통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찰이 문제 삼은 피해 건설업체들의 핵심 관계자들이 경찰에 진술한 내용과 영장의 내용이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건설노조는 강원경찰청이 사건 조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 참고인의 진술을 제멋대로 편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11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진행된 건설노조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건설노조는 양회동 열사 관련 혐의점을 설명하며 검경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검찰은 열사에게 공동공갈 혐의를 적용했는데, 건설노조는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는 단계부터 무리하게 수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강원경찰청은 피해업체로 4곳을 지목해 조사에 나섰는데, 이 중 두 곳은 알려진 대로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이중 A업체 소장 ㄱ씨는 열사 분신 전 강원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 ‘경찰에 진술할 때 강요가 없었다고 했는데 왜 본인 진술과 다르게 전임비 갈취라고 (영장에) 기재했냐’며 항의했다. ㄱ씨는 열사 분신 후 강원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 재차 연락해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당신들 때문에 사람을 죽인 꼴이 됐다’는 취지로 다시 한번 항의에 나서기도 했다.

또 다른 B업체의 현장 소장 ㄴ씨 역시 “우리 현장에선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의한) 문제가 전혀 없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ㄴ씨는 11일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경찰이 4월 현장에 찾아왔을 때도 우리는 분명히 피해가 없고, 모든 걸 제대로 했다고 이야기했다. 경찰 쪽에서도 아무 문제 없다고 확인하고 갔다”라며 왜 B업체가 경찰이 파악한 건설노조에 의한 피해업체로 분류됐는지 답답해했다.

ㄴ씨는 “경찰이 현장 실사 나오기 전 (건설노조에 의한) 문제없냐고 전화를 먼저 했을 때도 ‘문제없다. 나오지 말라’ 했는데 민노를 조사한다면서 한번은 확인이 필요하다고 직접 왔다”라며 “두 명이 왔길래 이미 민주노총은 떠났고, 지금 현장에 없다고 얘기하면서 문제가 없었다고 몇 번을 말했다. 경찰이 노조전임비 자료를 복사해 가며 ‘여긴 이상 없네’라고까지 했다”라고 당시 경찰 조사가 이뤄졌던 상황을 설명했다.

구속영장에 직접 실명이 언급된 B업체 관계자는 지난 2월 퇴사했다. ㄴ씨는 “지금 해외에 있어 연락이 어렵다. 하지만 현장을 소장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딨나”라며 “이미 몇 달 전 퇴사한 사람이 영장에 왜 언급됐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의아해했다.

  11일 건설노조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오른쪽)이 양회동 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출처: 건설노조]

한편, 경찰이 B업체에서 복사해 간 노조전임비 자료는 “공사업체를 공갈하여 금원을 갈취한 범죄 행위”의 증거로 쓰였다. 경찰은 노조전임비 지급의 근거가 되는 B업체와 건설노조 간 단체협약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요건을 갖춘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유효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그 이유에 대해 “피의자들이 건설 현장 공사업체들을 상대로 교섭 활동과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나타나 있는 이 사건 범죄 수법 등의 행위는 통상적인 노조의 단체교섭 기술이나 정당한 노조 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체결된 문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파악한 내용이 B업체의 핵심 관계자의 주장과 왜 배치되는지 묻기 위해 B업체를 방문해 피해 여부를 직접 조사한 강원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ㄷ씨에게 수차례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 사건 관련해 언론과의 연락 역할을 일임받았다는 강원도경찰청 형사과 강력계장과의 통화도 시도했지만 역시 ‘장기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 ‘언제 통화가 가능한지 모른다’는 답변만 받았다.

”특진까지 내걸며 성과 위주 수사를 펼친 경찰과 TF 활동의 필연적 결과”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건설노조 탄압 사건은 수사의 기본적인 패턴이 문제”라며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에 건설노조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의 집회 등으로 건설업체가 ‘무서웠다’ ‘앞으로의 피해가 걱정됐다’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협박의 증거가 되는 상황에서, 진술의 전체적인 요지가 ‘현장 피해 없음’으로 귀결돼도 경찰이 필요한 말들만 조서에 기술해 진술 당사자의 확인을 받았을 수도 있다.

권 변호사는 “노사 교섭에서 노사는 서로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압박을 가하고, 약점을 건드리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동적 과정 그 자체다. 양복입고 앉아 백분토론하듯 논리로 설득하는 곳이 어디 있나. 기업들도 손해배상 청구 운운하며 노조 교섭 전술로 이용하지 않나”라며 “경찰 논리대로라면 한국 사회의 다른 수많은 사용자들도 공갈로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경찰의 수사 논리를 꼬집었다.

실제로 경찰과 검찰은 B업체에서 건설노조가 집회한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데 집회 등을 하겠다는 것이 ‘해악의 고지’가 되어 협박죄가 적용됐다. 검경은 이에 더해 건설업체가 조합원을 채용하게 되면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한’ 것으로 보고 ‘강요죄’를, 단체협약에 따라 임금과 전임비를 지급받으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 것’이므로 ‘공갈죄’를 씌웠다.

노조의 집회 개최와 관련해 한 건설업체의 관계자는 “요즘 누가 노조 집회를 무서워하나. 옛날이나 채용 강요가 통했지, 요즘 얘기는 아니다”라며 “이번 정권에서 노조 탄압하는 것 다 아는데 현실적으로 노조가 강압적으로 한다고 굴복할 사람이 어디있겠나”라며 소위 말하는 ‘건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열사가 발생한 사건을 두고 “특진까지 내걸며 성과 위주 수사를 펼친 경찰과 TF 활동의 필연적 결과”라고 무리한 수사임을 다시 한번 비판했다. 건설노조는 “경찰 조직은 압정형 구조로 진급이 매우 어려워 1계급 특진은 일선 경찰관에게 대단히 큰 인센티브”라며 “이것이 무리한 수사를 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양회동 열사는 2월부터 3차례의 소환조사와 압수수색을 겪었다. 2월 강릉경찰서의 1차 소환조사는 약 4시간이, 3월 16일 2차 소환조사에선 무려 약 8시간 30분이, 4월 3차 조사에선 약 4시간이 소요됐다. 3월 9일엔 휴대폰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건설노조는 “사측의 고발이나 민원이 없었음에도 경찰이 노사관계에 개입해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고, 노사 자율과 사적 자치의 원칙을 훼손했다”라며 ‘압박수사’가 동원됐다고 보고 있다.

건설노조, 오는 16·17일 서울 도심서 1박 2일 총파업 결의대회 진행

건설노조는 오는 16일과 17일 서울 숭례문 일대 도심에서 ‘양회동 열사 염원 실현을 위한 건설노동자 1박 2일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다. 지난 7일 건설노조 탄압 중단, 강압수사 책임자 처벌, 윤석열 정권 퇴진을 내걸고 총파업 상경투쟁을 결의한 건설노조는 열사의 명예회복을 위한 세부요구안도 발표했다.

[출처: 건설노조]

건설노조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건설노조는 “양회동 열사의 마지막 말을 심장에 새기고, 기어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윤석열 정권을 향해 총파업에 나선다”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와 중앙위 회의를 통해 구체화된 총파업 상경투쟁은 양회동 열사 죽음에 책임 있는 정부기관과 건설사 단체를 규탄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용산삼각지, 대통령 공관, 경찰청,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를 대상으로 분산해 투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건설노조는 “‘건폭’의 발원지 윤석열 대통령과 건설노조만을 특정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의 책임자 한덕수 총리, 건설노조에 대한 강압수사를 종용하고 밀어붙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양회동 열사와 유가족에 진심 어린 사죄에 나서야 한다”라며 “열사와 노동조합의 명예회복을 위해 전 조직적 역량을 동원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열사의 명예회복을 위한 세부요구안으로 △윤석열 정부의 공식 사과 및 진상규명 △범정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 해체 △건설노동자 고용개선 법안(불법하도급 및 불법고용 근절, 임금체불 등) 처리 △고용개선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국회-정부-노동조합-사용자 포함)을 요구했다.

또한 열사의 명예회복을 위해 강압수사의 총책임자 윤희근 경찰청장 파면,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 해산, 건설노동자 고용개선 법안(‘불법하도급 근절 건산업 개정안’(민형배 의원 대표발의), ‘불법고용 근절 건산법 개정안’ (김주영 의원 등) 재·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설노조 “국토부, 법무부, 노동부, 경찰청이 열사 죽인 공동정범”

한편, 이날 건설노조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의) 후속대책에 이름을 올린 국토교통부, 법무부, 고용노동부, 경찰청 모두가 양회동 열사를 죽인 공동정범”이라며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법률과 법원의 판단을 무시하면서 체계적으로 건설노조를 죽이기 위해 공모한 증거”라고도 보인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3월 8일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주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서 원희룡 장관은 '건설현장 정상화'를 약속했다. [출처: 국토부]

정부가 앞서 지난 2월 발표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의 후속조치를 내놓으며 ‘건폭’ 잡기 광폭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11일 민당정은 <건설현장 정상화 5대 법안>을 신속하게 개정하기로 했다. 월례비 수수, 공사방해 등 처벌근거가 모호한 부당행위에 대한 제재기반을 강화하고 특별사법경찰 제도를 도입해 불법하도급, 채용 강요 등 노사 양측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즉각 노동조합의 입장을 내고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건설노조는 “후속조치에 명시된 대책 대부분이 건설사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상징적인 선언과 도구적 차원의 제도개선에 머무르는 반면, 노동자들에 대한 제재는 생존권을 파괴하는 수준의 조치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비대칭적으로 구성돼 있다”라며 “문제의 핵심은 불법하도급이지만 이번 대책은 불법하도급 문제에 대한 해결책 대신, 소위 ‘노동조합의 불법행위’만 바로잡겠다는 편향적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라고 비판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다솔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