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하이솔루스는 2022년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친환경 기업’을 표방해 '인권 경영 헌장'을 제정한다. 이 헌장에는 국내외 규범 준수, 차별금지, 안전한 작업환경, 인권침해 구제조치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2023년 5월 15일 사측의 직장폐쇄 14일 차, 공장 앞에서 만난 금속노조 전북지부 일진하이솔루스지회 소속 노동자들의 증언은 ‘인권 경영’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한창 일해야 할 시간에 30도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 노동자 수십 명이 공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천막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 지난 5월 15일, 직장폐쇄 14일차를 맞은 일진하이솔루스지회의 농성장 [출처: 연정] |
“그 땐 노동조합도 없고 힘도 없어 2조 2교대제에 사인할 수밖에….”
2018년 봄, 일진하이솔루스에 희망퇴직 공고가 났다. 이유는 물량감소였다. 희망퇴직 신청자가 안 나오자,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점수를 매겨 연차를 많이 쓰거나 잔업 많이 빠진 사람, 평소 바른말 해서 밉보인 사람을 강제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신입사원 모집 공고가 났다. 그 후로도 수차례 직원을 채용했다.
이날 공장 앞 농성장에서 만난 문태 씨도 그해 여름 입사 했다. 봄에 있었던 ‘구조조정’은 현대자동차 넥쏘 탱크 납품을 앞두고 기획된 일종의 ‘노동자 물갈이’였다. 문태 씨가 입사해서 보니 기존 노동자들보다 신입 노동자가 더 많았다. 업무 체계가 잡히지 않아 어수선하고, 작업 환경도 지저분했다. 얼마 못가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도 문태 씨는 ‘다들 이렇게 일하겠지’ 생각하며 버텼다. 문태 씨는 물을 이용하여 압력을 높여 탱크가 새는 곳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내압 공정에서 5년 동안 일해 왔다.
“한 곳에 정착을 하기 위해 마지막 회사라는 마음으로 들어왔어요. 제 나이에 다른 데 간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있는 데가 낫다고 생각하며 다녔습니다. 저는 되도록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성격이었어요. 평일에 개인적인 일은 무조건 다 포기하고 잔업을 하고, 특근이 있다고 하면 거의 빠지지 않았어요. 그게 맞는 건 줄 알았거든요.”
문태 씨가 닫힌 공장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일진하이솔루스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35세. ‘다른 직장에서는 중간급 정도인데, 여기서는 ‘넘버 투’라며 40대 중반인 문태 씨가 멋쩍게 웃는다.
2020년 봄, 새로운 공정이 도입되어 공장을 풀가동 하려고 주야 2교대제가 3조 2교대제로 바뀌었다. 이 무렵 신입사원이 많이 들어왔다. 당시, 일진하이솔루스는 4일 일하고 2일 쉴 수 있는 3조 2교대 형태와 상여금 때문에 지역의 젊은 구직자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입사 경쟁률이 20대 1까지 될 때도 있었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일방적으로 주야 2교대제로 근무형태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미 2교대로 바뀌어서 출근을 하고 있는 상태인데, 불러가지고 사인을 하라고 했어요. 바뀌기 전에 충분한 설명을 해주는 게 맞다고 다들 말은 했지만, 그땐 노동조합도 없고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 70시간 노동, 월 300만 원
수소를 넣었을 때 터지지 않도록 플라스틱 용기를 탄소섬유수지로 감고, 뜨거운 열을 가해 단단하게 만드는 와인딩 공정에서 일해 온 조경호 씨(가명)도 다르지 않았다.
"2조 2교대로 바꾸면서 특근은 안 시킬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한 달만 해 달라, 격주로 해 달라, 이번 주만 해 달라’하면서 계속 특근을 하라는 거예요. 반장들이 각 공정마다 수첩 들고 다니면서 강제로 하게 했어요. ‘당신들 돈 많이 벌게 해주는 건데, 왜 불만을 갖냐?’는 말도 하더라고요. 2조 2교대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어 연차 내기도 힘든데, 회사에서 그런 걸로 눈치를 많이 줬습니다.”
노동자들은 의무 잔업시간을 포함한 12시간 맞교대제로, 매일 오전 8시와 저녁 8시에 교대 했다. 잔업을 포함한 주중 근무시간만 52시간이고, 토요일 특근을 하면 60시간이 넘는다. 일요일 특근까지 하면 한 주 노동시간이 70시간에 달한다. 경호 씨는 이처럼 장시간 노동을 해도 숨 쉬며 살고 있는 게 가끔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일을 해도 월 실수령액은 300만 원이 될까 말까 했다. 입사한 지 5년이 되어가는 경호 씨의 시급은 최저임금(9,620원)에서 백 원 남짓 더 되는 금액. 노동자들이 반강제로 특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과 평가하는 게 있어요. A, B, C, D, …S 등급까지 있거든요. 오래 다녔어도 관리자한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A나 B를 받는 거죠. 갓 들어온 사람이 ‘예예’하면서 말을 잘 들어 S를 받으면 시급이 금방 저보다 높아져요.” (조경호 조합원)
경호 씨를 회사에서 버티게 한 유일한 희망은 ‘상여금’이다. 2019년 임금동결·상여금 쪼개기 등의 문제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 48일 만에 직장폐쇄를 당한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일진하이솔루스 앞에 왔을 때만 해도, 경호 씨는 노동조합이 ‘남의 일’인 줄 알았다. 회사 임원은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상여금 안 줄일 거니 노조 가입하지 말라’고 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서 있던 자리에 자신이 서게 될 줄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친 사람이 운전해서 병원에 가야 해요”
“합성수지가 많이 날리는데, 호흡기에 많이 들어가요. 불을 끈 상태에서 라이트를 켜면 주변이 다 빤딱빤딱 거립니다. 마스크를 써도 숨을 쉬니까 들어갈 수밖에 없죠. 회사에 출근을 하면 습관적으로 기침을 해요. 이게 피부에 묻으면 두드러기처럼 일어나고 가려워요. 그런 가루가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면 배출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살아봐야 알겠죠.”
회사에는 사무직·생산직 노동자가 2백 명이나 되지만, 공장에 상주하는 의료 인력도, 아플 때 잠시 쉴 보건실도 없다. 일하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진 사람도, 높은 곳에서 일하다 떨어져 실려 간 사람도 회사는 산재가 아닌 공상 처리를 해주었다.
▲ 노동자들이 공장 철조망에 머리띠로 만든 문구 [출처: 연정] |
“다친 사람이 운전해서 병원에 가야 해요. 눈에 화학약품이 튀면 심한 경우 실명도 올 수 있는데,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자기 차로 직접 운전해서 병원에 간 경우도 있습니다. 바닥이 많이 미끄러운데, 직원 한분이 폐아세톤을 버리러 가다가 미끄러진 적이 있어요. 한동안 허리를 부여잡고 못 일어나니까 주변 사람들이 너무 놀라 119를 불렀거든요. 근데 관리자가 오더니 ‘119 누가 불렀어?’ 하며 추궁을 하더라고요.”
회사 측이 발표한 산업재해율 현황에는 부상자가 2019년 2명 2020년 1명에 불과하다.(1) 이 회사에는 대부분의 공정에 의자가 없다. 충분히 앉아서 설비를 볼 수 있는 공정이나 컴퓨터 작업을 하는 공정에도 의자가 없어 하루 10시간 이상을 서서 일해야 한다. 쉬는 시간에도 서서 쉬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단 몇 분이라도 앉아있기 위해 다른 건물에 있는 식당에 간다. 한 노동자가 ‘사무실 의자도 빼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농담을 던진다.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은 반장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반장들이 중간에 조율만 잘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 겁니다. 반장이면 적어도 자기가 맡은 공정만큼은 알아야 하는데, 몰라요. 사람이 비면 반장들이 도와줄 수도 있는데, 일을 안 하려고 하거든요. 우리한테는 한 달에 연차 한 개만 써도 잔소리 하면서, 본인들은 한 달에 두세 개씩 써요. 우리는 금요일 날 5시 퇴근하는 것도 생산에 차질 있다고 못하게 하면서, 반장들은 두 명 다 빠져버리죠. 새벽에 누가 다치거나 급한 일 생겨서 전화를 하면 안 받아요. 위에 올라가서 문 두드리면 눈도 못 뜨고 나오거나 탁구 치고 있고. 저희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데, 반장들이 갑질까지 하니까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히 원했던 노동조합
무능하고 부조리한 관리자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는 전략이 계속 통할 리 없었다. 2022년 11월 28일 점심시간, 작업복을 입은 60여 명의 노동자가 공장 마당에 모였다. 야간조 노동자들도 회사 게이트를 열고 뛰어 들어왔다. 노동조합 설립보고대회가 진행되었다. 얼마 뒤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 10여 명까지 가입하면서 생산직 전체 노동자(90여 명)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80여 명이 조합원이 되었다.
“사측에 미리 정보가 새 나갔다면 설립하기도 전에 와해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그만큼 우리가 절박했고, 간절히 원했다는 거예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니까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지금은 이 노동조합 조끼를 내 옷처럼 당연하게 입고 있지만, 처음에는 이거 입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거든요.”
문태 씨는 노동조합이라는 ‘든든한 백’이 생기고 난 뒤, 평일에 일이 있으면 5시에 퇴근하고 특근도 거의 하지 않는다. 덕분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늘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
“노조 생기고 나서 달라진 게 많아요. 예전에는 20분 전에 와서 조회를 했어요. 노조가 생기고 나서는 8시 이후에 조회를 하니까 조장들 통해서 공지사항만 전달해 주더라고요. 하지도 않으면서 사인만 하게 했던 안전교육도 실시가 되고, 산재신청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잔업을 2.33(2시간 20분)을 하는데, 그동안 2.2로 계산해서 수당을 준 것도 소급해서 받았고요.” (조경호 조합원)
노조 와해를 목적으로 한 ‘선제적 공격적 직장폐쇄’
일진하이솔루스는 5월 2일 0시 부로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유휴창 지회장이 출산휴가에 들어간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공장 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직장폐쇄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노동조합은 쟁의권을 확보한 04. 18부터 04.28까지 파업, 잔업 거부, 지속적 태업 등 쟁의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으로 회사는 정상적인 조업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일진다이아몬드 사례를 알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거기는 한 달 넘게 파업이라도 해보고 직장폐쇄를 당했잖아요. 우리가 파업도 하고 진짜 투쟁을 열심히 해보고 직장폐쇄를 당했으면 조금은 덜 억울할 텐데, 준비했던 걸 하나도 해보지 못했으니까 억울해요.” (문태 조합원)
▲ 노동조합 사무실 건축에 합의했던 사측은 사무실 터에 자재만 갖다놓고 몇 달째 공사를 미루고 있다. [출처: 연정] |
노동조합 설립 이후 노동조합과 사측은 작년 12월 15일부터 올해 4월 14일까지 스무 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단체협약 180여 개 조항 중 단 한 개도 합의하지 못했다. 회사 측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만 끌어서다. 사측은 약속했던 노동조합 사무실 건축도 몇 달 동안 자재만 갖다 놓고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조합은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그 뒤에도 사측에 두 번이나 기회를 줬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교섭 기간 동안 회사는 잔업·특근을 계속 시켰다.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미리 계획한 사측의 물량 확보 전략이었다는 것을 직장폐쇄 공고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쟁의권을 확보하고 나서 한 게 잔업거부 2번이랑, 4월 19일 금속노조 ‘1만 간부 총력투쟁대회’ 참석 때문에 간부 13명이 서울에 간 거밖에 없어요. 잔업거부도 노동조합 교육 때문에 한 거고요. 우리가 2교대를 하니까 주・야간 두 개 조 조합원이 다 모여 교육받을 수 있는 시간이 주간 조 퇴근하고 난 오후 5시 밖에 없거든요. 서울 집회 가는 것도 회사에 다 얘기하고 갔습니다.”
김창현 수석부지회장도 “우리가 한 게 없다”며 억울해한다. 그 외 7일 동안 회사에서 정한 작업표준서·취업규칙 준수 등 준법투쟁과 주말 특근거부가 있었는데, 주말 특근은 주 52시간 초과 근무 문제 때문에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사측의 조치는 현행법 판례에서 노동조합 와해가 목적이라고 보아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선제적 공격적 직장폐쇄’에 해당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6조에 명시된 사용자의 직장폐쇄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해 대항적·방어적으로 사용할 때만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회사 측은 ‘정상적인 조업’을 하겠다는 노동자를 의도적으로 일을 못하게 밖으로 내몰고, 설비 보전 명목으로 대체인력 투입을 시도했다.
▲ 지난 5월 15일, 저녁 집회 중인 조합원들 [출처: 연정] |
심지어 고용노동부 전주고용지청 근로감독관이 설비업체 직원들을 인솔해 공장 안까지 들어가, 노동자들은 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해 5월 8일 공장 앞에서 연좌 농성에 들어간다. 대체인력이 공장에서 나오고, 노동조합과 경찰이 대치상황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경찰들이 나갈 길을 터주려고 일어난 순간, 사복을 입은 광역수사대 소속 형사 수십 명이 난입해 조합원 등 11명을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와 연행 조합원의 바지가 벗겨지는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회사 측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빗나갔다.
“회사는 우리가 단결되기 전에 직장폐쇄로 우왕좌왕하게 해서 노동조합을 깨부수려고 했을 거예요. 근데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조합원들끼리 더 친해지게 된 거죠. 반대 조는 얼굴만 알지, 이름도 모르고 말을 할 기회도 없었거든요. 이번에 서로 얼굴도 트고 이름도 알고 집회나 프로그램 같이하면서 더 끈끈해지고 단결 되어 가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고비를 넘고 승리해서 들어간다면 이런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 같아요.” (문태 조합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동안 잘못된 관행과 악습을 지금 아니면 못 바꾼다고 생각했어요. 반장들하고 친했는데, 직장폐쇄에 대해 귀띔조차 해주지 않아 실망감이 컸습니다. 5월 8일에는 경찰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걸 느꼈고요. 우리가 무조건 이겨서 잘못된 것들을 싹 다 고쳤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커요. 솔직히, 생계 걱정이 전혀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감안하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지고 들어가면 앞으로 계속 끌려다닐 게 뻔하니까요. 직장폐쇄 대상이 아니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해주어서 우리 투쟁이 힘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고맙죠. 우리가 꼭 이겨서 비정규직 조합원 고용 문제 해결하고, 노동조합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미 시작했으니까 여기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고, 무조건 이겨야죠. 살기 위해 꼭 이길 겁니다.” (조경호 조합원)
(1) 「2022 일진하이솔루스 ESG DATA REPORT」, 202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