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논의가 한창이다. 많이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보호를 대부분 받지 못하였다. 대표적으로 아래 박스 안의 규정들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규정들이다.
▼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주요 규정 | ||
① 부당해고 등 제한 규정 미적용(제23조 제1항, 제24조, 제28조) ② 해고서면통지 의무(제27조) ③ 근로시간 및 연장근로 제한(제50조, 제53조) ④ 연장·야간·휴일근로가산수당(제56조) ⑤ 휴업수당(제46조) ⑥ 연차유급휴가(제60조) ⑦ 생리휴가(제73조) ⑧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76조의2, 제76조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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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규정들은 해고, 임금, 근로시간, 휴가, 직장 내 괴롭힘 등에 관한 것으로, 근로자 보호를 법의 목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의 여러 규정 중에서도 근로자 보호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조항들이다. 이런 주요 규정들이 적용 제외되기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 있어 상시적 해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근로시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주 52시간이고 주 69시간이고 얼마든지 노동을 시킬 수 있다. 또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해도 1.5배의 가산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연차유급휴가나 생리휴가도 부여받지 못한다. 더구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관련한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를 바꿔 말하면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일시키다 수틀리면 언제든 해고해도 되고,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해도 되며, 주 52시간이고 주 69시간이고 제한 없이 일 시켜도 문제가 없는 존재들이다. 이렇듯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근로기준법이라는 최소한의 옷을 입지 않은,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선언하는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렇듯 근로기준법 앞에 조금도 평등하지 않다. 불평등의 명분은 영세 자영업자 보호에 있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하고, 5인 이상 사업장은 그렇지 않은가.
동네 의원이 영세자영업자인가
가령 감기에 걸리면 찾는 동네 내과 의원들을 생각해 보자. 죄다 원장 의사 1명에 직원 1-4명이 있는 상시 노동자 수 5인 미만 사업장들이다. 이런 규모의 치과나 한의원을 찾기도 쉬운 일이다. 5인 미만의 변호사 사무실은 어떠한가. 업종이나 매출액 규모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노동자 수 5인을 기준으로 영세 자영업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르니 이런 씁쓸한 반례에 부딪히는 것이다. 게다가 5인이란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건가. 상시 노동자수가 4인이면 영세하고 5인이면 영세하지 않으며 6인이면 제법 부유하단 말인가.
가장 큰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과 그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전체 사업체의 수는 2019년 기준 249만 개소라고 한다. 그런데 이 중 5인 미만 사업체의 수가 170만 개소이다. 전체 사업체 수의 약 70%를 차지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는 2019년 기준 43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 수의 22.9%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4명 중 1명이 근로기준법이라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 없이 벌거벗겨진 채 놓여 있는 것이다.
4명 중 1명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과장이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관계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지표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를 차지한다. 2021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11.1%가 실제로 주 52시간을 초과하여 노동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중 같은 응답을 한 노동자는 3%에 불과하다. 주 69시간 논란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4명 중 1명이 작년 말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여야간 근로시간을 둘러싼 정쟁이나 쏟아지는 뉴스 기사들과 무관한 사람들이다.
한편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진행한 2023년 3월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21.1%가 2022년 1월 이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실직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는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의 해당 문항 응답률 7.2%의 3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또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분기별 산업재해 발생현황 통계>에 따르면 2020년 9월 기준 전체 재해자의 33.3%가, 전체 재해사망자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22.9%이다. 노동자가 일하다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죽는 곳이 5인 미만 사업장이다. 그런데 근로기준법뿐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까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이쯤 되면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기에 이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건강을 해칠 정도로 더 오래 일하고, 더 쉽게 해고되며, 일하다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죽는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등이 더 엄격하게 작동해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다. 가령 상시 노동자 수 30인 이상 사업장은 법적으로 노사협의회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노동조합도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더 많다. 반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대부분은 근로계약 체결 시 근로계약의 내용을 사용자와 대등하게 결정하지 못한다. 아니 아직도 근로계약서를 작성조차 하지 않은 비율이 직장갑질119의 위 설문조사에서 37.9%로 집계되고 있다. 300인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비율의 10배가 넘는 수치이다. 국가가 지금처럼 손 놓고 버려둘 것이 아니라 외려 근로감독 등 행정력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권고를 한 게 2008년 4월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이나 지난 일이다. 2018년 8월에도 고용노동부 행정개혁위원회에서 비슷한 내용의 권고안이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껏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사업장의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근로조건의 적용을 배제하는 입법례는 선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2012년 12월에 발간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방안 보고서>에서 지적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