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투쟁해야 시장을 변하게 만들죠.

[연속 기고③] 서면시장에서 생긴 작은 노조가 말하는 희망에 대하여.

[출처: 부산일반노동조합서면시장번영회지회]

서면시장에서 집회나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면 김태경 지회장은 며칠 전부터 긴장이 되고 촉각이 곤두서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발언하거나 몸짓하는 정도로 긴장하는 게 아니다. 보수적인 부산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서면시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회장단이라는 사측에 더해서 노조라면 빨갱이 집단으로 낙인찍고 매도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 험상궂게 운전하며 곡예를 넘는 오토바이가 그랬고, 일부러 집회 장소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애먹이는 시민이 그랬다. 집회하는데 느닷없이 물을 뿌리는 상인이 있었고, 술에 취한 행인은 시비를 걸어 집회를 주최하는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김태경 지회장은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면 주위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고, 신경이 온통 불시에 일어날 어떤 사고를 대비해야 하는 강박에 두통이 생겼다.

하지만 김태경 지회장은 그들이 누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진짜 서면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투쟁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욕을 하고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화이팅’하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어 주었다.

“시장에 이상한 사람이 많았어요. 깡패 같은 사람, 술에 취해서 막 때리고 욕하고 그럴 때마다 경찰이 와서 말리고 연행하고, 그런 일을 많이 겪다 보니까 자기들도 신원조회를 당하잖아요. 신분이 노출되면 좋을 게 없으니까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요즈음 어두운 세력들이 많이 없어진 거죠.”(허진희)

서면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음침하고 어두운 세력들이 점점 사라졌다. 누군가가 노동조합을 훼방 놓기 위해서 보낸 사람들도 있다. 회장단은 직접 나서지 않았다. 직접 나서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된다는 것을 여러 번 고소를 당해 경험했다.

“투쟁문화제를 하는데 상인들이 나와서 손으로 등짝을 때린 거예요. 내가 사회를 보다가 놀라서 까먹은 거예요. 목도 다쳐서 뻣뻣한데 등짝이 너무 아파서 짜증이 났어요.”

폭력은 상습적이었다. 약한 고리를 먼저 건드리면서 폭력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허진희 씨가 다시 파업을 시작하고 시장에서 중식 선전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번영회의 비리와 노조 탄압으로 시끄러워지자, 회장직을 사임하고 부회장에게 직무대행을 맡긴 전 회장이 시비를 걸어왔다. 전 회장은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말이 아닌 욕을 했던 인물이다. 허진희 씨는 말버릇이 괴팍한 전 회장을 그냥 보아줄 수가 없었지만, 화를 꾹 눌러 참고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순식간에 전 회장이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때렸다.

“얼굴을 맞았을 때 너무 아픈 거예요. 전 회장이 바로 눈앞에서 욕했으면서 증거가 어딨냐고 오히려 화를 내서 (영상을) 찍었던 거거든요. 너무 아파서 순간적으로 휴대폰을 놓았어요. 아픈데도 휴대폰이 없어질까 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허진희 씨는 해고당하고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집단 따돌림, 감금과 폭력은 폐소 공포증을 일으켰다. 노동조합을 하기 전부터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대낮에 부산의 제일 번화가에서 사장에게 맞는 노동자가 되었다. 바로 옆에서 경찰이 지켜봤지만, 현장에서 현행범 체포하는 일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오히려 범행을 저지른 전 회장을 도피시켜 주는 꼴이었다. 요즈음은 심리상담을 받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치유하고 있다. 하루는 속이 시원해지도록 풀었다가 하루는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얹어서 온다고 그는 자신의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얼굴을 맞고 마음의 평정을 찾기 어렵지만 자신의 싸움을 놓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견뎌낸다.

  허진희 조합원 [출처: 부산일반노동조합서면시장번영회지회]

“다른 동지들이 내가 폭력을 당해도 눈빛은 살아있대요.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피가 끓어요. 하지만 요즈음 더 차분해지려고 노력해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요. 우리한테 뭐가 더 유리한지 또 바른 방향으로 투쟁할 수 있게 생각하고 동지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어요.”

번영회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하고 해고되어 시장의 한복판에서 투쟁하는 동안 김태경 지회장에 대한 온갖 구설수가 떠돌았다. ‘총무가 깡패라더라’, ‘일을 안 하고 민주노총을 끌고 왔더라’는 소문과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그러다 김태경 씨와 허진희 씨가 번영회 회장단의 비리를 구체적으로 알리고, 직원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시장 바닥에서 이야기하는 동안에 상인들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상인들은 직원들이 불이익받을까 봐 걱정해 주었다. 서면시장에서 장사할 때는 번영회의 눈치를 살펴야 했지만, 서면시장을 떠나면서 직원들에게 연락했다.

“전기세 고지서를 10년 치 보관하고 있다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보내주겠다고 하는 분이 있었어요.”(김태경)

정의로운 번영회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상인들은 말하지 않지만, 항상 눈치를 보면서 응원해 주었다. 그들은 주로 임대 상인들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고 가버리면 결국 계속 반복하잖아요. 그럼, 제3의 피해자는 계속 나올 거고, 그게 60년인 거예요. 우리가 싸우면서부터 우리만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연대하면서 변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만의 싸움이 아닌 거죠.”

김태경 씨는 자신이 밝혀낸 진실을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시장에는 상인뿐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시장마다 관리사무실이 있고 관리실에는 청소하는 노동자가 있고, 청사 경비노동자가 있다. 사무실 직원들도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 상가의 점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신들의 사연을 노동조합에 들려주기도 했다.

“어느 식당은 CCTV를 20대나 설치한 거예요. 우리가 집회하면서 직원들 감시하려고 CCTV를 20대나 달아놓았냐고 이야기를 했더니, 필요한 데만 놔두고 다 뗐더라고요. 상인들이나 직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거죠.”

어느 노동자는 한 식당에서 20년 넘게 근무했지만, 코로나19 감염병이 유행하자 장사가 안된다며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는 통보받았다. 20년 세월의 수고는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 노동자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서면시장번영회지회에 들러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된 거 같아요. 모든 곳이 직원들 없이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거예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거죠. 우리가 싸우고 있는 걸 알아요. 다른 곳을 보면 시장은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우리는 하나같이 어떤 점을 찾아서 연결된 듯했다. 시장은 시장과 연결되고, 투쟁하는 노동자는 투쟁하는 사업장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해고자들은 해고자들과 연결되어 아픔에 더 크게 공감하고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저희는 웃고 있지만 지금 벼랑 끝에 있어요. 회복은 쉽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가 포기 하지 않는 건 단 하나예요. 지금까지 투쟁해 온 게 정당하기 때문이거든요. 포기할 거면 처음부터 투쟁을 안 하죠.”

김태경 씨가 해고된 지 2년이 넘었다. 허진희 씨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파업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법률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생활비를 대신한 카드빚도 늘어났다. 가계 빚이 쌓이고 신용은 위태롭다. 서면시장의 60년의 전통은 낡고 노후한 건물이 상징하는 보수의 성지라는 듯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 두 사람의 걸음은 거북이보다 느리고 더디게 보이지만 차곡차곡 쌓아온 노동조합의 소소한 활동이 매일 매일 시장에 스며들어서 조그만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허진희 씨는 믿는다.

“혹시나 또 저처럼 사장한테 두들겨 맞거나 현장에서 빵 하나 먹고 어렵게 일하는 어느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저희를 보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지회장님과 같이 쌓아나가는 거죠.”



# 기록노동자 시야
-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싸람
노동자가 담대해지는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취재하고 노동자를 편들고 싶어서 기록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 <회사가 사라졌다> , <숨을 참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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