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의문사]"내아들은 자살하지 않았다"

박창수 전 노조위원장 의문사 진상 실마리 ‘의문사위’ 일본법의학사 "구타 사망 가능성 높다"

▲ 지난 6일 열린 노동운동 의문사 사건에 대한 민주노총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창수 열사의 아버지 황지익씨가 "창수는 자살하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정용상 ysjung@kdlpnews.org
안기부의 전노협 탈퇴 공작 중 구속되어 안양병원에서 사망한 박창수 전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의 사인이 기존 정부가 발표한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법의학 감정서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됐으나 의문사위원회의 권한 및 기간의 한계로 조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재개정(3차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 법의학자인 가미야마 시케타로는 지난 1일 의문사위원회에 제출한 법의학 감정서를 통해 “박창수씨의 사인은 추락사일 가능성이 없으며 구타에 의한 사망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감정서에 따르면 박위원장은 “상흉부에 대한 2면성 압박으로 인해 흉곽의 다발성 골절에 수반하는 심·폐손상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즉 바닥이나 벽에 기댄 상태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한 골절과 심·폐 손상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리골절의 경우도 “다리부터 떨어진 추락사인 경우 척추와 골반, 무릎 등의 동반 골절이 나타나는데 박창수씨의 경우 다리만 부러져 있다”며 “추락에 의한 골절일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지난 1991년 5월 10일에 발표한 “입위상태(선자세)로 뛰어내렸으며 그 충격으로 인한 심폐파열이 직접 사인”이라는 발표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며 구타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조사가 박창수 열사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을 풀어줄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전노협 탈퇴 공작의 전모와 박창수 열사 사망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투신 자살이 아닌 구타에 의해 살해당한 후 옮겨졌을 가능성이 크고 △사건 발생 당시 안양병원에 머물고 있던 안기부 요원의 명단이 공개되지 않았으며 △박창수 열사가 공놀이 중 이마를 다쳐 입원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구타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한 자해로 인해 머리를 다쳤을 가능성이 높고 △박창수 열사가 “함께 수감된 인신매매범에게 ‘가족을 조심하라’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등 구치소 안에서 협박을 받고 있었다는 점 등을 제시하며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의혹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의문사위원회측은 사건 해결에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정보원이 조사협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의문사위원회의 조사활동 마감시한이 오는 9월 16일까지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명확한 진상조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의문사위원회는 국가정보원에 박창수, 장준하 등과 관련된 12건의 자료제출을 요구했으나 국정원측이 소극적인 시간끌기로 일관하자 지난 7일 황인성 사무국장 등 10여명이 직접 국정원을 방문, 자료요청 및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정원측은 “가지고 있는 자료는 다 제출했으며 사건과 무관한 자료요청이 많다”며 자료제출을 거부했다.

황인성 사무국장은 “현재의 특별법 상에서는 조사가 끝나지 않은 사안들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하고 권한 및 조사기간의 한계를 명확히 밝히는 것 말고는 의문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이런 한계는 이미 주어진 시간과 권한에서 예정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노동자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3차 개정운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박유순 대외협력국장은 “한상범 위원장의 임기인 오는 2004년 4월까지 의문사위원회의 활동을 연장하고 강제수사권한을 부여 등 의문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의 특별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노동관련 의문사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민주노총의 역사적 정체성을 찾는 일인만큼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99호] 8.12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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