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남자는 모두 군대에 간다. ‘빽’ 든든한 국회의원 아들은 빼고, 밑엣돈 숨쉴 틈없는 재벌 갑부의 아들은 빼고, 179cm에 45kg도 안 나가는 이회창 아들은 빼고, 그 무수한 ‘신의 아들들’은 빼고.
오태양씨(28세)도 군대에 가지 않았다. 지난 해 12월 17일 그는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는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에 ‘양심적 병역 거부를 금지한 현행법에 의해 기본적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신의 아들들’처럼 별다른 신체적 결함 없는 그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별한 ‘빽’이 없다는 것과 병역법 위반자, 범죄자가 됐다는 점이다. 불구속 상태에서 그는 스스로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자비의 집’에서 기거하며 밤에는 불우 노인들을 돕고, 낮에는 ‘희망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그 나름의 ‘대체복무’인 셈이다.
“병역 기피가 아니냐고 당연히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복무는 군대 가는 게 싫으니 더 편한 옷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에 상응하는, 아니 더 길고 힘들어도 좋으니 다른 활동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것도 안 된다면 군 복무기간보다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고, 평생 ‘전과자’로 살아가는 것도 감수한다는 거예요. 이건 자기 양심과 신념을 지키려는 선택입니다.”불교 신자인데다가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 특히 평화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 역시 군에서 익혀야 할 총검술, 사격술이 두려웠다. 그러나 군 입대를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여겼던 그는 지난 해 2월 우연히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얘기를 접하면서 병역 거부를 결심했다. 그들의 고통을 몰랐던 자신의 편견이, 제도적 폭력과 군 복무제도에 순응하려 했던 자신의 안일함이 부끄러웠다. 지난 60여 년간 집총 거부, 입영 거부 등으로 감옥에 갇힌 이들은 약 1만 명.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까지 3대가 전과자가 된 집안, 아들 다섯을 모두 감옥에 보낸 아버지, 3번이나 입영을 거부해 꼬박 7년10개월을 감옥에 갇혀 지낸 사람 등 병역 거부에 대한 처벌은 가혹했다.
“지금도 매년 600명이 넘는 젊은이가 감옥에 갑니다. 누구는 감옥에 있는데 저는 불구속이라 밖에서 이렇게 따뜻한 밥 먹고 잠자는 게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병역 거부 문제가 여론화되고 ‘대체복무제’ 얘기가 나오게 된 것도 다 그 분들이 지난 몇 십 년간 혹독하게 탄압받으면서 병역을 거부한 덕분인데 말입니다.”봉사활동을 시작한지 8개월.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 거부’ 위헌 판결 여부에 따라 그의 ‘제대’는 3년, 4년 혹은 그 후로 무한정 늦춰질 것이다. 판결 시점부터 감옥살이를 다시 시작할 지도 모른다. 기약없는 싸움, 불투명한 미래다.
“걱정이나 후회는 없어요. 입영을 하나, 감옥을 가나 결정하던 처음 그 순간이 힘들고 두려웠죠.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격려가 힘이 됩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되도록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세요. 저처럼 국가의 명령을 어긴 사람은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 죽는 게 아닌가 겁이 나시나 봐요. 건강해지라고도 하시죠. 언제 감옥에 갇힐 지 모르는데 그전까지 체력관리 잘 하라구요.”돈이 많건 적건, 빽이 있건 없건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군대, 그래서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 모두를 ‘잠재적 병역 기피자’로 만드는 군대, 건강한 청년 수 백 명을 매년 전과자로 양산하는 군대, 숱한 의문사와 비리를 흩뿌리고도 건재한 군대. 한반도의 특수성을 들먹거리는 사람에게 오태양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유럽 국가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때가 1900년대 초중반, 세계대전 중이었어요. 군사대국 중국과 대치 중인 대만도 최근 대체복무제를 인정했습니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은 3번 연속 입영을 거부하면 자동으로 병역을 면제해줍니다. 3개월 정도 영창에 가는데 출퇴근이예요. 우리 군복무 제도도 바뀔 거라고 봅니다. 그간의 피해가 너무 가혹했고 앞으로도 계속 더 큰 저항을 일으킬 거니까요.”‘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활동을 겸하고 있는 그는 오는 9월, 전국 교도소 순례를 떠난다. 41개 교도소에 수감 중인 1,600여 명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 수많은 ‘자신’를 만나러 간다. 갇혀있는 젊은 눈동자들은 그에게 서글픈 그러나 강한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벗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양심에 따른 행위로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우리의 진정한 자유는 실현되었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의 자유는 우리의 해방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6월 25일 첫 재판을 마치고 ‘희망학교’에서 벗, 태양
글·장성희 / jsh@sp.or.kr
□ 평화일기
사회봉사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픈 어느 젊은이의 기록
오늘은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 섰다. 대체복무제도 입법청원을 위한 5월 수요캠페인이 시작되는 첫날. …사람들의 반응 또한 가지각색이다. 선하게 보이는 한 젊은 친구가 홍보판을 유심히 보길래 다가가서 “‘양심적병역거부’라고 들어보셨어요?”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뜻밖의 말을 한다.
“제가 집총거부자예요, 한달 전에 출소했어요”
순간 무척이나 반가워 선 채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항명죄로 3년형을 받고 안양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년 4개월만에 가석방 출소했다 한다. 24살의 그 친구는 대화 내내 못 믿겠다는 듯한 말투와 눈빛으로 떠듬떠듬 내 물음에 짧게 답하곤 했다. …우리는 말이 끊어질 때면 홍보판을 바라보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나는 내내 슬프고 아렸다. 저렇게 선한 낯빛, 눈빛을 가진 친구가 꼬박 2년 4개월을 창살 아래 매어있었다니, 그것도 법정최고형의 중죄인으로 말이다. 감옥에서 고생도 이만저만 한 게 아니었다 하면서 그곳의 이야기를 할 때면 간혹 눈가가 불그스레 달아오르기도 한다. 아버지도 80년대 집총거부로 5년을 복역했다며 동생이 여자라서 대물림이 자신에게 그치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한다. 그 소박한 안도감 앞에서 나는 또 한번 무너진다.
길거리에 오래 서 있기에는 햇볕이 뜨거웠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 온 것이다. 망설이다가 “혹시 서명…”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해야죠!”하며 성큼 걸어간다. 볼펜을 잡은 친구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잠시 한숨이 새어나오는 듯 어깨가 한 차례 들썩이고, 이내 손이 눈가를 훔치는 게 보인다.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곤 “힘내세요, 우리 후배들은 감옥에 안 가게 해야죠” 라는 말밖엔 다른 도리 없다. 만약 그가 그 자리에서 울었다면 나도 아마 부여잡고 펑펑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짧은 만남 뒤로하고 그가 사람들 속으로 멀어져간다.
“친구, 고생했어. 하지만 우리 후배들만큼은 더 이상 감옥에 보내지 말자구!” 지그시 입술 깨물며 나도 서명용지 움켜쥐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걸어간다. 더없이 화창한 오월, 그렇게 시작이다.
2002년 5월 8일
*오태양 씨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오태양과 함께 평화의 꽃씨를 뿌리는 사람들’(cosupport.jinbo.net)에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평화일기’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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