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정미 woodfish@kdlpnews.org
오윤의 민중판화와 최병수의 걸개그림 등 가나아트센터가 기증한 작품 97점과 70년대 이후 추상미술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유준상) ‘2002년 소장작품전’(7월19일∼8월20일)을 둘러싸고 문화예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립미술관측은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사장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200여 점의 민중미술 작품 중 몇 점에 대한 구입의사를 밝혔다.
제의를 받은 이사장은 소장작품 200점을 모두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하고 고건 당시 서울시장과 ‘기증자는 작품을 기증하고 서울시는 이를 받아 ‘가나아트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상설 전시한다’는 조건으로 협약을 맺었다.
이번 전시회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당초 지난 5월 서울시립미술관 신축개관에 맞춰 가나의 기증품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으로 잡혀있던 ‘현실주의 미술전’이 뚜렷한 이유 없이 ‘2002 소장작품전’으로 바뀌면서 부터. 이 과정에서 협약과는 달리 ‘가나아트컬렉션’이라 이름 붙여 별도로 구분해 상설·전시한다던 200여점의 기증작품의 일부분만 전시된 것이다.
이런 중에 시립미술관에 70여평 규모의 ‘천경자 상설전’ 공간이 배치된 것에 대해 “같은 기증작품이라도 수십점을 낸 개인에게는 이름 붙인 상설공간이 주어지면서, 세계 미술사에서도 주목받는 80년대 민중미술작품들은 제목도 없이 전시되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미술계 일각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가나아트센터측은 6월 15일 이명박 신임 서울시장 앞으로 상설관 설치에 관한 협약서 이행 의지를 확인하는 질의서를 보내 “상설관이 협약대로 설치되지 않을 경우 기증 자체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답변을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기증품에 대한 조건 이행과 관련한 시비는 논란이 진전됨에 따라 ‘민중미술 상설전시관’ 설치문제로 성격이 변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에 대한 민중미술작가들의 항의표시, 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과 서울시 의회(의장 이성구)의 성명서가 발표되면서 여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문화과 김홍한 주임은 “최근 언론보도들이 나온 후에 이 문제를 현안에 놓고 적극 검토 중”이라며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들은 미술관에 잡혀있는 일정들이 다 끝나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일정으로 보면 구체적인 내용들은 올해 말이 돼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 유준상 관장은 구체적인 입장표명을 꺼리는 가운데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현재 운영자문위원회에서 논의중이고 거기서 통과가 돼야 (전시관을)설치하는 것이다.”라는 입장만을 밝혔다.
한편 가나아트센터 최열 실장은 “협약내용대로 이행되기만을 바란다”며 “만약 협약내용대로 가나아트컬렉션이라는 이름의 상설전시관이 조속히 설치되지 않는다면 기증 작품 반환을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처럼 문제가 확대된 데는 미술관 관리를 주로 맡고 있는 서울시 파견공무원들과 전시를 기획하는 학예연구사들 사이의 의견차이가 주요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학예연구사들이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성격을 70년대 모더니즘과 80년대 리얼리즘으로 잡아 가나아트센터가 기증한 민중미술작품들을 소중하게 여긴 반면공무원들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작품들에 대해 거리끼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초래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미술관 자체에 합리적인 운영원칙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립 미술관의 경우 설립목적을 드러내는 정관이나, 작품 수집·전시를 추진하는 규칙도 없음은 물론, 미술관장이 시장을 대리해 미술관을 관리하는 관리소장 정도(현재 관장직급은 3급이며, 조례에서는 작품관리·전시·기증 등 모든 미술관 주요 업무가 시장의 책임이다)로 취급되고 있는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얘기다.
[ 100호] 8.19 ~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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