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연대의 투쟁이 있을 때마다 집중적인 프레시 세례를 받는 이광섭씨. 전신을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장애 정도가 심하면서도 투쟁이 있을 때마다 가장 선두에서 처절하게 싸우니 자연 주변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렇게 거리에서 낯을 익힌 광섭씨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농성장에 들어서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나?
의사의 만류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함께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삼일에 한번은 함께 단식농성을 하려고 노력한다. 11일째 단식하고 있는 분들을 뒤로하고 식당으로 갈 때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함께해야 하는데…
농성을 진행하면서 힘나는 때도 있겠지만, 오히려 힘이 빠질 때도 있을 텐데..
지지방문을 오는 동지들과 이야기 할 때 제일 힘이난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 홈페이지에 남겨진 지지의 글을 볼때도… 반면에 ‘이런식(점거 단식 농성)으로 하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라고 말하는 시민들을 만날때는 힘이 빠진다. 누가 목숨걸고 단식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겠나.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계속되고 있는 장애인이동권 투쟁으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공감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 아직도 우리의 절박함을 몰라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때 기운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부모님께서도 많이 걱정하실테고, 무엇보다 몸이 많이 힘들텐데 집회가 있을 때마다 늘 선두에 서있다.
내 나이가 31살이다. 내가 바깥 출입을 시작한게 언제인 줄 아나.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요즘도 외출을 하려면 119를 불러야 한다. 전에는 그들이 나를 안고, 업고, 옮기면서 투덜거릴 때마다 무슨 죄인처럼 아무말도 못했는데, 이제 내가 오히려 큰소리 친다. 당신도 한번 내처지가 돼서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장애인 이동권이 중요한 거라고.
이광섭씨는 농성이 끝나면 인천에서 장애인이동권연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최옥란 열사(장애운동가)가 투쟁했던 장애인 기초생활 수급권 관련 투쟁도 벌일 계획이다. 장애인의 기초적인 생존권을 보장한다면서 많아야 약값도 안되는 30만원을 던져주고 살아가라는 말도 안되는 법을 뜯어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 이제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나도 무언가 한 몫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사회의 희망을 본다.
사회당 기관지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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