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프레시안> 편집국장 inkyu@pressian.com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난히 언론 보도에 신경 쓴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가십까지 직접 꼼꼼히 챙겨 읽고 언론 논조에 따라 정책방향을 결정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일성 조문 파동 등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한 데에는 언론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는 얘기다. 이른바 ‘미디어 정치’라 할 만하다.
양태가 다르긴 했지만 정치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은 김대중 정부에도 변함이 없었다. 집권 초기 언론개혁에 관한 완벽한 청사진을 마련하고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은, IMF위기 직후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했지만, 혹시나 언론이 협조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99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탈세혐의로 잡아넣고, 2001년 서울에 있는 전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데에는 ‘언론 길들이기’ 목적이 다분히 포함돼 있었다. 언론을 장악하지 않고는 민심을 잡을 수 없으며 정치도 어렵다는 한국적 현실 때문이었다. 그만큼 미디어가 우리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았다.
그런데 제도권 언론의 그 막강한 여론장악력이 무너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 징후는 지난 3월의 ‘노풍’이었다. 조중동 등 이른바 메이저 신문의 홀대, 나아가 노골적인 적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폭발적인 국민지지를 누렸다.
당시 칼럼니스트 유시민은 ‘꿈깨시오, 조중동’이라는 칼럼에서 조중동이 여론을 독점하던 시대는 이제 끝장났다고 선언했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다양한 인터넷매체의 출현으로 더 이상 기존 언론이 민심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제도권언론의 여론장악력은 지난 2000년 4.13 총선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펼친 낙선운동 때부터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회 인준이 부결된 장상 총리서리 후임으로 매일경제신문의 장대환 사장을 선임한 데에는 ‘미디어 정치’적 요소가 컸다는 게 현재 언론계의 정설이다. 언론계 출신인 데다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등과 비슷한 연배에 미국유학파로 절친한 사이라는 점 때문에 언론들이 검증의 칼날을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두 신문을 포함, 대부분의 언론들은 장상 지명자에 비해 장대환 총리지명자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솜방망이’ 검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하지만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반대성명에 이어 참여연대 등이 장대환 지명자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히면서 그의 국회인준 통과 가능성은-제도권 언론의 협조적인 침묵에도 불구하고-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물론 국회 인준 결과를 현재(22일)로서는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장대환 총리지명자의 국회 인준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사태전개는 한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제도권 언론에 의한 ‘미디어 정치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 101호] 8.26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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