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우리는 문화 노동자로서, 노동계급의 투쟁 경험을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토론을 촉구하는데 시청각매체를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는 언제나 거기 있다. 점거투쟁과 파업과 동원과 집회, 그 어디에도.... 우리는 그곳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을 기록하고, 전파하고 토론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노동영상그룹 <노동자의 눈> 소개문에서)
아르헨티나를 혁명적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1200여 개의 공장이 노동자들의 자주관리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배계급은 국가를 통치할 능력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실업 혹은 반실업 상태의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하는 '삐께떼로' 운동은 연일 지배계급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 때 IMF의 모범생으로 대접받던 그 나라의 상황은 그러니 당연히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진보적 미디어 운동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르헨티나의 현재 상황이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그래서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기본 정보가 제공될수 있었던 것은 독립미디어센터(IMC),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뉴스제작단과도 유사한 <노동자의 눈 (Ojo Obrero)>이라는 노동영상운동 단체의 치열한 활동 덕택이다. 특히 '삐께떼로'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노동자의 눈>의 활동은 자신들의 활동을 '민중권력을 위한 투쟁에서의 대안적 정보(Active Counter-information in the Struggle for Power)'라고 하는 것에서 보듯, 기동력 있는 대응과 정치선전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혁명과 영상이 행복하게 만난다는 것이 워낙 쉽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보아온 얼마 되지 않는 영상물들은 '최초로 비디오에 기록된 혁명적 상황'이 될 수 있는 아르헨티나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많다. 러시아 혁명기를 '기록'했다고 흔히 TV에서 인용되는 자료는 사실 대부분 혁명 이후 제작된 극영화들에서 인용한 자료이며, 칠레 아옌데 정권하의 민중권력의 실험을 기록한 <칠레전투>는 쿠데타 이후 완성됨으로서 막상 칠레의 민중과는 20여 년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새로운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적 발전의 한 양상인 디지털 비디오의 보급, 그리고 그러한 무기를 자신의 매체로 확보한 진보적 영상 활동가들의 존재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자본주의가 그렇듯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며 각국의 활동가들은 올해 접어들어 노동영상운동의 새로운 단계를 모색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보스턴 등에서 노동영화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UPPNET이라는 네트워크에 소속된 영상활동가들은 그동안 주로 퍼블릭 액세스 채널에 고정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지역적 활동을 하던 것을 넘어서서 지구적 인터넷 노동 비디오 채널 (Global Internet Labor Video Channel)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프리스피치 TV의 위성채널을 통해서 <노동주간 (Workweek)>라는 연대의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노동주간>은 약 5분 정도의 포맷을 지역에서 자유롭게 제작하고 각 지역의 비디오를 방송국측에서 내부 내용에 대한 관여없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편성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민주적 모델의 실험이다.) 그리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 올해 11월에 처음 개최될 노동문화축제에서는 <빵과 장미>의 상영과 함께 전국 각지의 투쟁상황을 각각 2분내지 3분의 길이에 담아서 모아내는 프로그램이 준비중이기도 하다.
결국 전지구적 자본의 입장에서 이윤의 확대를 위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디지털 비디오와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이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 투쟁하는 노동영상운동을 강화시키는 역설적인 - 하지만 매우 합법칙적인 -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첫단추를 꿴 것에 불과하다. 영상물의 대중적 교류를 매개로 한 국제연대의 강화, 배급체계, 조직체계, 뉴 미디어 전략 등 그 발전이 지지부진한 운동의 영역들이 남아있으며, 특히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미디어에 대한 무지는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다.
그 발전이 전지구적인 것처럼 그 지체도 전지구적이다. 한국의 경우도 최근 몇 년간 이들 나라와 유사한 진보와 장벽이 동시에 발견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지점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보급된 초고속 인터넷과 진보네트워크, 노뉴단, 노동자 영상패의 각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영상운동은 그만큼 많은 가능성과 책임과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과제에는 단순한 정보의 유통이 아닌 직접적 지원과 교류까지도 - 한국의 노동 미디어 서버는 지금 당장이라도 국제적 투쟁을 지원할 수 있으며, 아르헨티나의 노동자들은 컴퓨터와 카메라의 절대적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한국의 영상패 운동은 전세계 노동영상운동이 함께 평가해야할 유력한 활동 모델이다 - 포함된다. 이미 진행중이며 아울러 새롭게 다가올 역사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해나갈 수 있을지, 현재 우리가 내딛는 작은 한걸음, 작은 가능성, 작은 성공과 실패가 갖는 의미를 정말 진지하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