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하(한라공조노동조합 노동안정국장)
처음생각
처음 근골격계 투쟁을 준비할 때 집단적 노동환경 개선이나 근골격계질환의 사회문제화, 산업안전보건법의 제·개정 등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단지 97년 외환위기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생산량과 현장통제 때문에 98년 후반기부터 현장에 급격하게 증가하였게 된 요통환자들은 한라공조 노동조합의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였고, 현장투쟁 약화와 그것에 결과인 노동강도 강화에 맞서 막연하게나마 싸워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근골격계질환 투쟁을 준비했다. 이런 생각 속에서 우리는 잘되면 좋겠지만, 투쟁이 잘 안되도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휴식 시간 확보나 산재요양이면 더 없이 좋을 것도 같고, 공상만이라도 얻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병든 노동자의 삼중고
현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 엄청난 노동강도로 인해 조합원들의 살과 뼈를 갉아먹는 적신호들은 더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는 상태까지 악화됐다. 조합원 개개인은 아주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고통을 호소했지만 아픔을 호소한 조합원들은 곧 삼중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가장으로써 겪어야 하는 고용에 대한 불안 그리고 비인간적 멸시와 학대, 현장 동료들과의 고립이었다.
사측은 조합원들을 분리 대응했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공상처리를 유도하고, 요양기간이 길어지면 산재처리로 유도하여 불승인을 받도록 했다. 만만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산재처리를 유도한 다음 불승인을 받도록 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만성, 퇴행성”으로 산재요양 불승인을 받기 일쑤였다. 이 과정에서 회사측의 관리자들은 근로복지공단 조사과정에서 증인으로 참석하여 “이 사람은 요로 결석으로 평상시 요통을 호소했다”는 등 말도 안되는 근거를 들이대며 불승인을 유도했다.
투쟁초기
노조 새 집행부가 출범한 2002년 1월, 우리는 현장투쟁력 복원과 조합원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근골격계 투쟁을 계획했다. 그리고 대우조선 동지들의 투쟁을 보면서 우리도 빨리 투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노동안전(산업안전)국 간부를 중심으로 교육을 서둘렀다. 그러나 1차 현장실태 조사와 검진과정에서 관리자들의 방해로 현장 곳곳의 중요한 지점들의 문제를 밝혀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또 현장실태조사 과정을 담은 비디오 테잎조차 회사측에 빼앗기면서 함께하는 동지들의 자존심마저 심각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래서 2차 현장실태 조사 때에는 상집간부 전원을 조직하여, 조사사업을 방해하는 관리자들과 현장에서 몸싸움까지 가는 극한 상황까지 치달으며 조사사업을 진행했다. 조합원 설문조사는 개별적인 현장배포 방식이 아닌 교육시간을 활용한 집단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사업 중반기
본격적인 임투 시기를 맞으면서 사업은 난항을 겪게 되었다. 1, 2차에 걸친 현장검진에도 불구하고 채 다하지 못한 조합원 검진이, 함께 조사연구사업에 들어간 인근 사업장들과의 일정이 틀어지면서 상당히 늦춰졌다. 이는 대부분 파업과정 중에 일어난 불가피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기간을 활용해 조합원들에게 근골격계질환 투쟁과 '현장통제'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이밖에 5~6차례의 다른 주제의 교육까지 총 11차례의 교육을 진행했는데 주제는 각각 달랐지만 모두 노동강도 강화와 현장통제 강화를 조장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맞춰졌다. 지속적인 교육으로 조합원들은 근골격계질환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조사연구사업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조직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집행부에서는 집단요양투쟁의 시기로 임투 직후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 하에 파업하는 기간동안 재빨리 현장검진을 마무리하고, 유소견자들 중 상대적인 중증환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 투쟁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판단했던 것은 환자의 의지였지만 이미 과거에 불승인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데다 개인적인 불이익에 대한 불안함으로 대부분의 환자들이 산재요양신청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설득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집행부에서 직접 발로 뛰면서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조합원들은 집행부를 조금씩 신뢰하게 되었고, 11명이라는 근골격계질환 집단 요양자들을 조직할 수 있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모를 정도로 보름간 은밀하게 조직하고 회사측의 눈을 따돌리기 위해 회사바깥에서의 모임과 교육을 실시할 정도로 보안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7월 초 서울 이대병원에서 검진을 회사측의 탄압 없이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사업 후반기
7월22일 마창지역의 동지들과 산재요양신청을 서울 근로복지공단에서 집단으로 신청했다.
그리고 7월23일부터 노동청과 근로복지공단 항의집회가 이어졌다. 그리고 노동청장 면담과정에서 ‘임시건강진단 및 현장역학조사 등의 노동조합의 요구를 적극수용 하겠다’약속을 받아냈다. 또한 '공정하고 정확하게 조사하여 최단시간 안에 답을 주겠다',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자문의를 임명하고 이 추천자문의의 소견을 존중하겠다’는 등의 근로복지본부장의 약속을 받아냈다. 생각지도 않았던 노동청과 근로복지공단의 긍정적 반응에 우리는 앞서 싸운 대우조선 동지들의 투쟁이 미친 영향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하계휴가를 반납하고 근로복지공단 앞 1인 시위를 하는 한편, 요양신청자들의 면담조사 과정에도 참여해 공단에서 요양자들을 기만하거나 유도조사를 하는 것을 차단했다. 집행부의 투쟁들을 옆에서 지켜본 집단요양자들도 자발적으로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요양신청자들은 8월13일 있었던 ‘근골격계질환 조사사업 공청회’에 전원 참석하여 이제까지 받았던 부당한 처우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와 울분을 서슴없이 쏟아 부었다. 그리고 승인판정 일주일전 병원에 입원하는 요양투쟁을 시작했다. 요양자들의 투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원 환자복을 입은 요양자들은 ‘산재승인 여부가 결정 될 때까지 공단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공단 항의방문을 전개했고, 결국 공단은 요양자 전원 산재요양 승인을 내렸다.
현재, 집단적인 요양승인이라는 작은 승리를 얻은 노조와 요양자들은 보다 어렵고 힘겨운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투쟁의 경험을 통해 개별적인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후 집단적 작업환경에 대한 투쟁은 여태까지의 과정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이 투쟁은 현장을 조직하기에 가장 좋은 투쟁이며, 현장권력을 우리에게 쥐어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투쟁이다. 만약 이런 원칙이 없이 건강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동지들의 몸뚱이를 놓고 벌이는 자본과 노조의 흥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건강권 투쟁은 더욱 비타협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원칙에 따라 5대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는 근골격계질환 요양자들에 대한 사후대책과 과제, 둘째 근골격계질환 다발작업장에 대한 개별적 작업환경 개선투쟁 과제, 셋째 노동양과 시간, 방식, 휴식에 대하여 노동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쟁취, 잘못된 공장내의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폐지와 개선, 운동공간과 시간의 확보 등의 집단적 작업환경 개선투쟁 과제, 넷째 개별적, 집단적 작업환경에 대한 결정의 노-사합의 사항 쟁취 과제, 다섯째 작업환경개선위원회 조직과 활동보장 쟁취 과제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5대 과제를 중심으로 한 앞으로의 더 힘겨운 투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조직하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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