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데 그렇게 아파트의 일상에 적응하고 아무런 불만이 없어졌지만, 이제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 고민은 내가 게토 안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것이다.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갇혀 있다는 느낌, 항상 앞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것이 자꾸만 지워지지 않는다.
가려진 아파트, 가둬진 공간
내가 살고 있는 등촌3동의 영구임대단지는 해당지역 전체가 상업지역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그림 1 참조). 1단지, 2단지 등의 개별단지들은 소차로를 통해 인접하면서 내부적으로 소통이 자유롭지만, 거대한 단지 전체는 상업지구에 의해 포획된 것이다. 상업지구가 주택지구를 둘러싸고 있다보니 외부의 대차로를 누비는 사람들에게 영구임대주택의 광경은, 그것이 '영구임대단지'인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공항로를 다니면 상업지역 너머로 영구임대주택들이 '아련하게' 보일 뿐이다. 아련하게 보이는 집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8평의 공간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 아파트는 20평이 족히 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착시현상이 빚어지는 바로 그 순간, 외부의 시민들은 도시에 더 이상 빈민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저곳에 설마 가난한 사람이 있을까, 도시공간의 이미지 전략은 이렇게 실제(혹은 실재) 관계를 은폐한다.
이번에는 올림픽대로와 인접해 있는 옆 동네 가양단지를 보자(그림 2 참조). 가양단지의 경우 흥미롭게도 아파트들이 강변과 직각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창을 통해 강을 볼 수 없게끔 한다. 물론 강변을 마주하는 아파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강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참 물러난 곳에 배치되어 있다. 반면 같은 단지 내부에 있는 동신아파트 같은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강변풍경 감상이 자유롭다. 이것은 어인 일인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영구임대아파트의 집 가격에 편차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의도에 상관없이 이로 인해, 영구임대거주자의 시선이 차단되고 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단지 외부의 한 면을 둘러싸고 있는 올림픽대로로부터의 시선 역시, 이곳이 빈민들의 거주공간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된다.
가려진 계급, 가둬진 정체성
아파트를 가리고, 거주자를 가둬놓는 전략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앞서 이곳이 마치 게토 같다고 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우리 가족 같은 빈민만이 수용된 게 아니다. 다른 계층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분명 이 '섬'은 외부와 차단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부영·진로·대림·동성 같이 중산층들이 사는 아파트가 섞여 있다. 이런 내부 구도 속에서 영구임대아파트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이곳으로 이사 온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 빈민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당연히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희망한다. 이때 이들은 옆 단지의 중산층 아파트를 보면서 일종의 환영을 갖게 된다. 가시권에 들어선 중산층 아파트는 예전 달동네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남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주위에 널린 외식단지, 학원가, 마트들은 중산층으로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이로써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상품 스펙터클에 매료되며 이것을 구입한다. 이들은 중산층이라는 성공사례를 갈구하며 라이프 스타일을 재조직한다. 실제 이 사람들의 정체성은 노동자이고 빈민이지만, 삶의 방식은 이미 노동자나 빈민이 아니다. 분열된 정체성, 분열된 주체는 끊임없이 아파트에서 나와 일터로 나간다(노동자). 그리고 일을 끝마치고는 쇼핑몰을 거쳐 집으로 향한다(중산층). 철저하게 차단된 이 섬의 내부는 이렇게 혼란스럽다.
영구임대아파트는 '구획된 게토'
영구임대정책은 한마디로 철거민들의 이주/수용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달동네 빈민들을 성남 등으로 강제 추방했던 7, 80년대와 달리, 90년대의 정책은 자활능력이 있는 자에 국한해 중산층'형'의 아파트를 임대해 주었다(이는 물론 빈민투쟁의 성과물이기도 했다). 이들의 근거지였던 판자촌은 근대 도시의 외관 정리 정책에 따라 사라졌다. 그리고 이들은 중산층의 주거환경처럼 잘 '구획된 게토(zoned Ghetto)' 안으로 수용됐다. 이곳에서 거주자들은 상상적으로 새로운 계층이 된다. 자기 정체성을 중산층틱한 구매력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실제적으로 그들은 사회적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실재하는 리얼리티인 것이다. 아련하게 보이는 아파트, 황홀경(fascination)에 빠진 사람들, 이들을 적나라하게 실감한다는 것이야말로 삶의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일이다.
김성윤 / 서울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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