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 위원장실에서 단식농성중인 장애인이동권연대 소속 장애인들. 이들은 지난 8월 12일 부터 39일간 점거농성을 진행했다.
이지안 mulu@kdlpnews.org
지난 1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2개월간의 조사활동을 마쳤다. 조사시한 연장을 위한 의문사법 3차 개정을 국회가 끝내 외면했기 때문이다.
인혁당재건위 사건, 서울대 최종길 사건 등 현대사에 굵직굵직한 흔적을 남긴 사건부터 노동·학생운동 과정이나 군 복무 도중에 일어난 의문사까지 83건이 유족들의 진정 또는 직권조사 등의 형태로 조사됐으나, 이제부터는 조사를 중단하고 내년 3월까지 제출하게 돼 있는 보고서 작성만 해야 할 판이다. 대통령 소속 반민반관 인권관련 위원회 활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가족들의 4백22일간의 국회앞 천막농성 끝에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이 99년말 국회를 통과해 의문사위원회와 민주화보상심의원회가 설치됐으나 법적 제도적 한계와 민-관 파견자들의 갈등 등으로 이렇다할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설립과정에서 특정 인권단체들의 인사들을 배제해 물의를 빚은 바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 내부의 끊이지 않는 갈등으로 “제대로 처리되는 진정사건이 없다”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7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는 <시민의신문> 주최로 국민의 정부하 시민운동평가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치, 경제, 여성, 환경 등 분야별 시민운동을 평가한 제1분야에 이어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 생긴 국가인권위, 민주화보상심의위, 의문사진상규명위 등 각종위원회 관련 시민운동 평가가 이뤄졌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서 국가인권위 설립과 역할에 대한 의견을 발제한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반민반관 기구의 ‘관료화’를 우려하며 “국가인권위원회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관료화됐다”고 지적했다. 구금시설 등에 대한 방문조사 결의를 통해 인권현장으로 찾아가는 모습보다는 근엄한 판사의 얼굴로 그저 ‘종이’를 대면하는 것이 현재 인권위의 모습이라는 것.
특히 인권위는 올해 8월 12일부터 인권위 위원장실에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중인 장애인들에게 ‘공권력투입’ 요청설을 계속 흘리면서 직원 휴게실로 옮길 것을 종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김형완 국가인권위 인권상담센터 소장은 “위원회 차원에서 즉각 철수를 요구한 적은 있지만 공권력 투입은 거론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에서 장애인 농성과 관련해 ‘장애인이동권’ 대책반이 아닌 ‘종성’ 대책반을 꾸렸다는 질책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심사속도나 위원회 안건상정이 실무를 맡은 공무원선에서 맡겨지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는 2000년 8월21일부터 10월 20일까지 1차 접수한 관련자 및 유족 해당여부 심의에 대해 현재까지 60%를 심의했을 뿐이며, 위원회에 상정되는 모든 사건을 검토하도록 민간 파견자들로 구성된 전문위원실이 애초 역할과는 다르게 행정기관 산하에 배치되면서 그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애초 법 제정의 의미와 취지가 추진과정과 입법과정, 시행과정등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퇘색되거나 변질되면서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따라서 실제로는 관련법의 산파역할을 했던 시민단체들과의 마찰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관련 발제를 맡았던 손종필 유가협 사무국장은 민주화명예회복보상법률과 관련해 “애초 이 법률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법 제도적 정당성을 인정하며 왜곡된 우리의 현대사를 올바로 세우는 작업의 일환으로 제정됐으나 정권에서 이 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근본 목적과 우리사회의 보수층이 바라보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각의 차이로 인해 태생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태생적인 한계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유가족들과 인권단체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만들어진 반민반관 인권관련 위원회에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의문사위원회의 성과와 한계는 김대중 정부의 성과, 한계와 동전의 양면이다.” 이은경 계승연대 사무처장의 말이다. 각 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있는 일이지만 어찌 제대로 돼가는 게 없는가.
[ 105호] 9.30 ~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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