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편집위원 cjsang21@hanmail.net
‘주식시장이 침체돼 연금이 거덜나는 것이나, 기업이 망해서 퇴직금을 못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요즈음 퇴직금을 401(k)와 같은 미국식 기업연금으로 바꿔 주식시장에 투입하고 싶어하는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이렇게 얘기하고 싶을지 모른다. 지난 7월 재경부는 국내 주식시장의 장기적인 투자 저변 확대를 위해 기존 퇴직금을 401(k)처럼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것이 미국의 회계부정 및 주가 폭락 사태로 차질을 빚고 있다. 주가 폭락으로 퇴직 뒤 수령할 미국 노동자들의 연금액이 대폭 감소해 노후생활이 불안해지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재경부가 퇴직금을 401(k)식으로 바꾸겠다며 내세웠던 논리는 기업이 망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후생활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성과에 따라 연금액이 결정되는 401(k)의 근본 한계가 드러나자, 더 이상 이런 주장은 비빌 언덕이 사라졌다.
실제로 1929년 대공황 당시 미국에는 401(k)와 같은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이 1만여개나 됐으나, 공황이 끝난 뒤 300여개만이 생존해 퇴직자 대부분이 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90년대부터 급속히 확산된 401(k)와 같은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은 주식시장이 잘 나갈 때도 노동자들에게 여유있는 노후생활을 제공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적정한 퇴직저축은 적어도 퇴직 전 소득의 75%를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1989년 퇴직저축이 퇴직 전 소득의 75%가 넘는 미국 가계는 44%였는데, 98년 이 비율은 39%에 불과했다. 퇴직 전 소득의 50%를 밑도는 비율은 거의 40%나 됐다.
401(k)가 확산되기 전 미국 기업연금은 기업 경영진의 책임 아래 퇴직 전 수입과 근속연수에 따라 노동자에게 일정한 액수를 보장하는 확정급부형 연금이 주류를 이뤘다. 한꺼번에 받지 않고 연금으로 나눠 받는다는 점만 다를 뿐, 우리나라의 퇴직금과 비슷한 셈이다.
70년대 중반 미국 노동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확정급부형 연금의 적용을 받았고, 연방정부는 74년 ‘연금급부보장공사’(Pension Benefit Guarantee Corporation)를 설립해 확정급부형 연금 지급의 안정성을 보장했다. 이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기업이 도산해 퇴직금을 주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 이를 지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퇴직금 지급 보장은 아니라고 해도,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 퇴직금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는 현행 근로기준법에 보장돼 있다. 퇴직보험이 그것이다. 이를 통하면 기업들이 퇴직급여충당금을 적립하지 않아 도산 때 지급하지 못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퇴직보험 가입액은 지난해까지 1조원 수준에서 거의 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퇴직금의 사외 적립을 꺼리고 있고, 정부 역시 이를 활성화 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말 현재 외부감사대상인 법인 8천2백 곳의 퇴직급여충당금이 약 1백50조원에 이르고 있다. 쉽게 말해 퇴직보험에 가입된 1조원 가량을 빼면, 나머지는 기업의 내부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퇴직보험을 활용한다면, 노동자가 직장을 옮기더라도 퇴직보험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이전 직장의 사용자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옮긴 직장의 사용자가 가입돼 있는 보험사로 이직 노동자의 퇴직보험 계정을 옮겨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401(k)와 같은 확정갹출형 기업연금은 노동자의 전직 때 연금 계좌를 옮길 수 있어 일자리 이동(job mobility)이 증가하는 추세에 적합하다고 선전되고 있는데, 퇴직보험 역시 이런 장점을 지닐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계 역시 퇴직금은 ‘후불임금’이라는 성격 규정만 고집할 게 아니라, 퇴직금이 확정급부형 기업연금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퇴직보험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을 적극 찾아낼 필요가 있다.
[ 105호] 9.30 ~ 10.6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