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대학교수의 노동자 선언

김동애 대우교수의 '노동법적 지위 요구'

이른바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는 사람들,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하루에도 몇 개 대학을 오가며 강의를 해도 교통비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사람들. 석·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씩 책과 씨름해야 했지만 전임교원인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한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낮은 임금과 재계약 거부 위협, 그리고 근로기준법 적용에서조차 소외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대학교원 중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흔히 알려진 시간강사 이외에도 겸임, 초빙, 대우, 계약,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비전임교원이다.

이들 비전임교원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해 '교육 과정의 운영상 필요한 자'로만 명시돼 있을 뿐 '교원'이 아닌 '일용잡급직' 신분인 시간강사와 마찬가지로 대개 주당 근로(수업)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는 이유로 30일 전 해고예고나 퇴직금, 4대 보험 등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김형근 고등교육연구소장이 조사, 발표한 지난해 4월 현재 대학교원 현황을 보면, 전임교원은 4만3,214명인 반면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비전임교원(1만463명)과 시간강사(5만2,670명)는 6만3,133명으로 대학교원의 59.4%를 차지했다. 이는 국·공립(54.4%)보다 사립(60.9%)에서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비전임교원까지 조직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지난 4월 '전국강사노조'에서 이름을 바꾼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임성윤 위원장은 "비전임교원이나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 교수들은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전임교원의 1/10 수준의 임금을 받고 고용안정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법원이 비전임교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려 이들의 열악한 처우를 더욱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지법은 전 한성대 대우교수인 김동애씨가 제기한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소정근로시간이 1주 15시간 미만인 단시간근로자이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대상이 아니"라며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김씨는 "실제 강의를 하는 시간이 주당 15시간 미만이라고 해도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과 성적처리 등 행정업무까지 포함하면 실제 비전임교원의 근로시간은 이를 훨씬 넘는다"며 "고등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김씨는 "현재 각 대학들은 교수인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다수 교원을 시간제, 계약제로 전환시켜 이들의 신분불안을 가중시키는 한편 교육의 질을 더욱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전교조 김영삼 정책연구국장은 "대학 뿐 아니라 초중등 사립학교에서도 기간제 교원이나 시간강사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교육계 전반에 걸친 교원의 고용불안과 처우개선 없이 공교육 안정은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김동애 전 한성대 대우교수
"전임교수 된다는 환상에 참고 살았다"
"구체적인 사례로 싸워 판례를 남기는 것이 내 몫"


지난해 12월 10일부터 12일 동안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비전임 대학교원의 법적 지위 확보와 퇴직금 지급'을 요구해 왔던 김동애 전 한성대 대우교수. 김 교수는 특히 지난달 1일부터는 단식농성을 벌였는가 하면, 4일 현재까지 한성대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3일 퇴직금 청수소송 패소 결정이 난 다음날인 24일 저녁, 김 교수를 만났다.

"대학의 비전임 교원들이 겪는 처우에 대해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일반인의 상식은 실상과 극과 극이다"고 말문을 연 김 교수는 "대체 어느 학부모가 석·박사 학위 가진 대학강사가 연봉 5백만원에 불과한 돈으로 생활한다는 걸 믿겠느냐"고 항변했다.

"부끄러워서라도 자신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김 교수는 "열악한 현실을 노조나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참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전임교수가 되면 달라지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투쟁도 조직되지 않고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에 대한 노동력 착취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음은 김 선생과의 일문일답.

- 왜 한성대에서 천망농성을 하는 것인가?
= "한성대에서 8년 가까이 강의를 해왔다. 시간강사 문제는 한성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지난 10월 15일 취임한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나 이상희 한성대 이사장은 대학강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 로 치부하며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 애초에 23일 지법 판결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천막농성을 접을 계획이었는데 한성대 총학생회에서 이 싸움을 '강사의 법적 지위 확보' 뿐 아니라 대학사회에 만연한 병폐를 개혁하는 싸움과 연계하기 위해서는 천막농성을 계속해야 한다고 제안해 와서 학생들과 함께 투쟁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등의 단체에서 연대하고 있지만 혼자 싸우고 있는 듯 하다. 이유가 뭔가?
= "내 싸움은 지극히 구체적인 것이다. 내가 한 학교에서 8년 가까이 일을 해왔고 부당하게 해고당했고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나 하나만 싸운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나 하나만 퇴직금 받고 복직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6만여명에 이르는 시간강사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강의를 하고 연구를 한다. 강의가 부실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생계가 불안한 강사는 서서히 폐기처분된다. 이번 싸움에서 내 몫은 지법에서 지면 고법으로 가고 고법에서도 지면 대법,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패소한 판례라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강사들은 참고 살아왔을 뿐이다. 나처럼 지는 싸움도 해 본 사람이 없는 것이 강사문제의 현실이다. 나는 판례를 남기는 싸움을 하는 것이고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나 교수노조는 노조를 통해 싸우는 차이일 뿐 큰 뜻은 같다."

- 시간강사의 법적 지위 요구에 대한 교육부의 공식입장은?
= "최근 한성대 총장으로 부임한 한완상씨도 교육부총리 시절엔 강사문제 해결을 거부한 적이 있지만 교육부는 내가 요청한 부총리 면담에 대해 '강사의 법적 지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식으로 대응할 뿐이다. 현 정부는 대학강사의 처우개선이라고 국공립 전임교수를 7백명 증원하고 학술진흥재단을 통해 2천여명을 연구교수로 채용하겠다고 하는데 전체 시간강사수가 6만여명에 이른다는 걸 생각하면 미봉책일 뿐이다."

- 퇴직금 패소 판결 이후 법적 대응은?
= "현재 고법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한성대 이상희 이사장은 참여연대 공동대표다. 또한 지난달 23일 패소한 소송의 학교측 정상용 변호사가 '함께 하는 시민행동' 공동대표다. 두분 모두 시민단체 활동가이지만 이들은 '시간강사는 교원이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나는 정 변호사가 학교측 변호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학생과 학부모가 '질 높은 교육권 확보'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본다. 한 학기 등록금이 3백만원에 이르면서 1시간 짜리 강의가 2만원이 안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머지 돈은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지 학생과 학부모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

- 동료 시간강사들에게 바라는 것?
= "강사들이 가지고 있는 '나는 전임교수가 될 몸'이라는 환상부터 깨뜨려야 한다. 대학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패거리주의, 지식인들의 병폐가 대학교육을 망치고 있다. 지식인,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뒷짐 지고 옳은 말하는 건 잘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미온적이다. 나도 전임교수가 된다는 환상이 누구보다 강렬했다. 그러나 그것이 환상이라는 걸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후배들은 적어도 내가 받은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정도 싸우니까 이제 후배강사들도 천막농성장을 찾아온다. 여기서부터 비정규직 교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 아니겠느냐. "

그리고 지난달 31일 정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다시 만난 김동애 선생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학강사의 법적 지위 보장'과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며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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