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민주노총 정책부장
경제자유구역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일단’ 유예됐다. 8일로 예정됐던 이 법안의 본회의 통과가 14일로 미뤄진 것인만큼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2003년 7월부터 전국에 경제자유구역이 설치돼 우리나라에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사실상 모든 기업ㆍ지역 적용
이 법안이 적용되는 대상인 외국인투자기업은 전체 주식의 10%이상을 외국인이 소유한 기업을 가리킨다. 외국인 주식지분이 10% 미만일지라도 외국회사와 다양한 시장계약을 맺은 기업은 모두 외국인투자기업으로 간주된다. 이미 국내 주요기업 주식의 상당지분을 외국인이 지니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대부분이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인정될 것이다.
적용대상도 전국 모든 지역이다. 애초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기준으로 국제공항, 국제항만, 광역교통망, 정보통신망, 용수, 전력 등 기반시설을 명시했다. 사실 이러한 기준만으로도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6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최종 통과된 법안에는 이러한 기준마저 대부분 삭제돼 ‘교통, 통신, 용수, 전력’만 남았다. 이것은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로서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갖추지 않은 곳이 어디 있는가?
노동자 기본권 침해 심각
법안은 외국인투자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의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유급 주휴, 생리휴가를 무급화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직 주5일제 입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음에도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얼마 안되는 여성보호조치인 생리휴가마저 무급화하며, 정부가 제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도 포함돼 있지 않은 주휴무급화를 담고 있다.
또한 파견대상업종에 전문직종이 추가된다. 현재 26개 업종으로 파견대상이 제한돼 있으나, 사실상 전 직종에 파견근로가 행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공공연하게 전문직종까지 파견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경제자유구역은 장애인고용촉진민직업재활법, 고령자고용촉진법 적용도 면제되어 장애인 의무고용과 고령자의무고용을 회피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는 이제 국민도 아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헌법에 명시된 노동기본권을 부정하고 경제자유구역에 고용된 노동자와 기타 지역에 고용된 노동자를 차별하여 헌법이 정한 평등원리를 위반하고 있다.
이밖에도 법안은 ‘근로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여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는 노동쟁의조정법안의 독소조항을 악용하고, 더 나아가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까지 꼬투리를 삼아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하려는 사전조치다.
건강보험 훼손ㆍ조세징수권 포기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제자유구역안에서 외국학교법인이 자유롭게 학교를 설립할 수 있고, 이 학교에는 내국인 입학이 허용된다. 외국인은 의료기관도 개설할 수 있는데 이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으로 간주되지 않아 건강보험체계를 훼손할 것이다.
외국인투자기업은 우리나라 국토와 환경을 자유롭게 파괴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이들은 34개의 환경관련규제법을 무력화시키며 다양한 환경분담금도 감면받는다. 더불어 정부는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 종합토지세 등 주요 직접세를 감면해주는 특혜까지 선사하고 있다.
동북아중심국가와 무관
정부는 21세기를 선도할 동북아중심국가전략을 위해 이 법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1세기 산업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고부가가치산업이지 6,70년대 산업화을 이끌었던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아니다.
새로운 경제구심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노동비용을 삭감하고, 환경부담금을 절감해주는 ‘밑바닥을 향한 특혜’가 아니라 반도체, 지적산업 등 고부가가치산업 육성정책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정보체계와 인적 기반을 확대강화하는 적극적 인프라구축정책이지, 다시 70년대로 돌아간 ‘수출자유무역지역’ 정책이 아니다. 시대착오도 너무 심하다. 솔직히 기업에게 특혜를 제공하고, 지역유권자에게 땅값 상승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하라.
결국 이 법안은 외국인기업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식민법률’이며, 우리나라 헌법이 정한 노동기본권과 평등권을 거스르는 ‘위헌법률’이고, 더 나아가 국민에게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하는 ‘노예법률’이다. 정부와 국회가 이 법안을 만들었다면, 이제 노동자, 서민, 농민이 나서 법안을 폐지할 차례다.
[ 111호] 11.11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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