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보고 많은 일을 하느라고 수고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자식이 없으니까 이것이라도 해야지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자식을 키우는 여성들을 보면, 거기에다가 직장생활까지 한다고 하면 너무 위대해 보이기 때문이다.
직장일, 가정일 그리고 양육일까지 도맡아하는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일은 내가 하는 일의 몇 배는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장여성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아이들이라도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잘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여성들이 어디 아이를 맘대로 낳을 수 있겠는가? 아이 낳는 것이 두렵다. 아이는 갖고 싶지만 거기에 따르는 문제들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여성들보고 자기만 편하자고 아이를 안낳는 이기적인 여성이라고 혼을 낸다. 이기적인 여성들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지고 자연히 돈버는 사람은 줄어들고 돈 못버는 노인들만 많아진다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성들에게 직장 그만두고 가정에 돌아가서 애나 낳고 키우라고 말할 것인가? 물론 그것을 원하거나 그럴 여건이 되는 여성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원치 않거나 또한 경제적인 이유이든 무슨 이유이든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양성평등사회에서 여자에게만 돈도 벌라, 애도 보라, 살림도 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기적인 발상이 아닌가?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들에게 전통적인 역할을 강요한다는 것은 엄청난 억지이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비율이 53%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에 나온 자료에 의하면, 직장을 가진 어머니의 자녀관계가 전업 주부어머니보다 더 좋다고 한다. 24시간 자녀와 부딪힘으로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감정의 마찰을 피할 수 있으며, 자녀들간의 단결력을 강화하며, 사회적인 경험을 통해 자녀를 객관적으로 폭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희생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적기 때문이다.
이제 육아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문제이며, 사적인 가정내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더군다나 출산률이 1.3명으로 줄어 우리 사회가 갈수록 고령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보육문제가 단순히 아이들의 보육받을 권리와 여성들의 일할 권리와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성원을 재생산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아주 중요한 사안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국가가 나서서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보육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보육사업은 어느 단계에 와있는가? 영유아보육법이 생긴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들은 아이들을 재정적인 부담없이 마음놓고 맡길 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보육비가 너무 비싸서 월급의 대부분을 갖다 바쳐야할 형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국공립시설을 많이 늘려 싸고 질좋은 보육을 제공한다면 이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육제도는 부모의 욕구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현행 보육제도가 과도하게 민간에게 의존함으로써 부모들의 재정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보육비용을 보호자가 부담하도록 하고있으며 정부가 관리하는 국공립시설은, 2000년 9월 말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시설의 6.7%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이것은 보육제도의 질을 저하시킬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민간시설을 시장의 논리에 맡겨둔 채 국공립시설만을 지원,관리하므로 민간시설은 시설대로 교사인건비나 급간식 비용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제대로 된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보육의 질을 결정하는 교사자격기준과 관리체계, 보육환경과 설치 기준 등이 엄격하지 않아 부모들이 안심하고 맡길 시설을 찾기 어렵다.
또한 보육제도의 과도한 민간의존은 각 가정의 조건과 요구를 고려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비용이 많이 들어 수익성이 낮은 장애아나 영아의 보육시설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이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애를 태우고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행보육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공립시설을 늘리는 방법과 아울러 국공립 뿐만 아니라 민간시설에도 보육비용을 지원하고 동시에 철저한 관리와 감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보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보육교사, 시설장의 자격기준 강화와 처우와 개선, 시설환경, 운영, 설치기준의 강화 및 세부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공립시설을 중심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장애통합보육, 영아보육, 야간보육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제 보육정책은 단순히 빈곤계층의 자녀를 도와주는 복지차윈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회성원의 재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가정과 직장을 양립해야할 여성들을 위해 하루 빨리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이다. 일본, 스웨덴, 영국, 프랑스에서는 보육을 국가전략사업화해서 고용정책, 인력개발정책, 아동복지정책, 유아교육정책, 여성정책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관점에서 보육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제 보육정책은 여성의 평생 일할 권리, 아동의 보육 받을 권리, 그리고 남성의 보육 참여권리가 동시에 추구되면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서 보육문제가 여성노인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이유는 많은 친정어머니, 시어머니들이 턱없이 부족한 보육시설의 구멍을 땜질하느라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 남편,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허리가 꼬부라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손주에게 매여 자유가 없으니,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그러나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쩔쩔매는 딸을 매정하게 모른 체 하면서 내 생활을 즐기겠다고 하면 그것은 영락없이 이기적이고 못된 친정엄마나 시엄마가 되는 것이다. 사회가 담당해야 할 보육문제를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대신 담당해야 하는 이 사회는 여성노인인권유린사회이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눈 앞에 다가왔다. 너도 나도 여성보육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소리들이 대통령후보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보육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결방법에 대한 충분한 연구 그리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는 보육정책은 선심성공약이나 선거용발언으로 그쳐 또 다시 여성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줄 것이다. 이제 대선의 공간을 이용하여 여성계는 보육교사회를 중심으로 올바른보육정책을 홍보하고 이것이 후보들의 선거공약사항으로 채택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강실·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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