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보육을 이야기한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맞벌이부부에게 보육은 더 이상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인구사회학적으로나 성인지적으로 아동양육의 문제는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보육은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회서비스에 걸맞은 수준과 내용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의 보육시설은 유치원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교육기관쯤으로 이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2002년 들어와서 보육문제가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고 복지부와 여성부가 보육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각각 제시하는 등 정부의 보육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올 주요과제 중 하나가 보육의 공공성 확보이며 본회도 상반기 보육문제 해결을 위해 거리서명전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특히 하반기 대선을 맞이하여 대선주자들은 보육문제에 대해 이전보다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정책위원회에서는 이번 기회에 우리 회가 앞으로 과제로 틀어쥐고 나갈 보육정책의 전반적인 밑그림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구체적인 논의를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하고자 한다. 본 글은 왜 보육이 중요한지, 그리고 앞으로 보육은 어떤 방향을 추구하여야 하는지를 현대사회의 변화상과 관련하여 개괄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은 다시 한번 보육운동의 주체로서 우리 회의 역할과 임무를 상기하기 위한 것이며 보다 구체적인 고민은 정리하여 다음 호에 싣도록 하겠다.
◇ 보육, 무엇을 위한·누구를 위한 것인가?
보육은 가족성원 이외의 제3자가 아동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아동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서비스이다. 정부인가를 받은 보육시설이 제공하는 서비스로 한정짓는다면 보육은 보호자가 수요자이고 보육시설이 공급자이며, 정부는 공급자일 수도(국공립의 경우), 중개자일 수도 있는(민간의 경우) 사회적 양육체계이다. 현대사회는 여러 변화들을 겪으면서 아동양육에 다양하게 개입해 왔다. 사회의 변화상들을 간략히 살펴보면서, 보육의 전망을 언급하기에 앞서 보육이 필요하게 된 배경을 정리하는 것이 글의 이해에 도움을 될 것이다.
현대사회는 흔히 산업화·도시화, 핵가족화,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다양한 가족구조의 등장, 노령화 및 소자녀화라는 문구들로 특징짓는다.
세대·사회와 고립된 핵가족시대의 부모는 육아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이 부족하였고, 사회적 관계의 확장이 결핍된 부모-자녀간의 심리·정서적 고갈을 겪기도 한다.
이혼·별거와 같은 가족구조의 해체가 증가하였고, 이에 따른 다양한 가족구조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부모가족, 동성애부부가족, 소년소녀가족, 동거가족 등 새로운 가족구조는 자녀양육을 비롯하여 전형적 가족구조가 담당하였던 기능을 수행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지니게 된다.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는 보육의 직접적 필요성을 제공하였다. 이제까지 보육은 취업모의 증가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거나, 경제발전을 위한 여성인력 확보의 기본전제로 여겨졌다.
작년에 세계적 컨설팅사인 매킨지가 매일경제사와 공동으로 발표한 '우먼 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향후 10년간 지식산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90%대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보육시설의 확충과 같은 육아문제에 대한 사회적 비용분담이 필요함이 크게 제기된 것은 당연하다.
최근에 와서 가장 크게 대두되는 특징은 노령화와 출산력 감소로 인한 소자녀화 추세이다. 의학의 발달과 경제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노령인구의 증가는 노후연금과 보건분야의 막대한 지출 증가를 의미한다. 상당수의 국가들은 연금과 같은 복지혜택의 재원을 부과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부과방식이란, 미래의 노후생활을 위해 미리 적립해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노동인구가 납부하는 보험금으로 노령인구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지금처럼 심각한 출산력 감소추세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할 노령인구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미래 노동인구의 생산력을 높여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워내야만 한다.
◇ 이 시대 아동을 낳고, 키운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
이와 같이 우리는 역사 이래로 가장 아동기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육아를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치부한 채 소극적인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출산율의 저하는 세계적 추세이며, 여성의 경제·사회활동 참여 증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의 언론을 살펴보면, 만족할만한 보육시설의 부족이 출산율 저하에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취업모만을 위해 보육시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유지·존속을 위해 보육시설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과거에 여성의 출산은 한 가족 혹은 가문에 국한된 종족보존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일련의 사회현상들은 이제 더 이상 출산의 의미를 한 가족이나 가문에 가두어 둘 수 없게 만든다. 여성의 출산은 '특별한 사회적 기여'로서 인정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출산 이후의 아동양육 역시 여성만의 몫이 아닌, 가족과 국가의 공동책임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양육은 부모-자녀관계라는 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미래 사회의 주체를 양육한다는 측면에서 사회가 무관심할 수가 없다. 특히 아동은 가정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존재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동양육을 전적으로 여성이나 가정에게만 책임지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1989년에 체결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아동은 최선의 이익을 보장받아야 하며, 국가는 아동양육을 위해 부모를 지원하여야 한다.
산전산후휴가나 육아휴직 등의 정책을 단지 모성보호의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여성인
력의 확보나 출산을 통한 노동력의 재생산을 어렵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동의 입장에서 살펴보았을 때, 언급하였듯이 아동이 최선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여러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아동의 건전한 출생과 성장·발달을 위해서는 초기 영아기(생후 1년)가 상당히 중요하다. 이 시기는 건강이나 뇌의 발달, 애착형성 등 신체·정서적 발달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발달단계에 맞는 적절한 양육환경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출산휴가마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러한 요구는 잠꼬대와 같을 뿐이다.
◇ 아동양육에 대한 포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우리는 현대사회의 여러 객관적 요인들과 영유아기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양육의 필요성을 되짚어 보았으며, 사회적 양육은 보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육교사가 아동의 친부모가 될 수 없는 것이며, 보육시설이 아동의 가정일 수는 없다.
보육은 어디까지나 아동의 가정을 대체하는 개념일 뿐이다. 가정과 역할을 공동으로 담당하고 보완하는 것이 바로 보육의 몫이다. 때문에 우리는 보육의 전망과 과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아동양육을 위해 어떠한 가정 지원체계를 갖추어야 하는지가 함께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논의의 흐름을 통해 아동양육을 위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어떠한 상을 지녀야 할 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노동계에서 요구하고 있듯이 육아휴직이 확대 시행되어야 한다. 작년에야 1년의 유급 육아휴직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육아휴직급여가 턱없이 비현실적이고 육아휴직 후 사업장으로의 복귀가능성이 불투명하는 등의 문제로 실질적인 육아휴직 신청자는 극히 적다.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신청은 아직도 두 자리 수에 머물고 있는 실정에서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 역시 요구·보장되어야 한다. 육아휴직의 활발한 시행을 위한 정부의 현실적인 이행대안이 필요하다.
아울러 여러 가지 이유로 아동양육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질 좋은 영아보육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영아보육율은 12%정도에 그치고 있어, 시설 확충과 함께 제대로 된 보육서비스 제공을 위한 비용 지원과 질적 관리를 통해 그 질이 보장되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출산 후 1년간은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육아수당이 제공되어야 한다. 최근에 육아휴직급여로 월 30만원의 육아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보도되었다. 아동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그 시기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고 출산율의 감소추세를 일정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만 6세 미만 (일본)에서부터 만 20세(프랑스)까지를 대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셋째, 아동의 연·월령과 발달단계에 따라 양육의 형태나 주양육자가 달라질 수 있다.
각 가정과 아동이 처한 환경과 욕구의 다양성은 사회적 양육지원체계 역시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부모가 아동을 직접 양육할 경우 아동양육과 관련한 지식·기술·정보를 제공하고 양육문제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맞벌이를 하거나 한부모 가정과 같이 전적으로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질 높은 보육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 보육서비스 역시 다양한 처지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영아보육, 방과후보육, 장애아보육, 휴일보육, 야간보육, 24시간보육과 같이 현재 미진한 수준으로 수행되고 있는 서비스 외에도 가벼운 질병으로 아픈 아동을 보육하는 서비스(일본에서는 이를 병아보육이라 부른다)까지 제공하여야 한
다.
그 외에도 주5일 근무제의 확산이나 일일 근무시간의 단축 등을 통해 아동 성장·발달의 결정적인 시기에 부모가 아동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여 건전한 아동양육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도 있다. 스웨덴이 이러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 앞으로 나가기 위하여
보육서비스는 한 사회가 아동이 속한 가정에 지원하는 여러 다양한 체계 중의 하나이자, 다른 지원체계와 맞물려 제공된다. 따라서 보육을 올바로 바라보고 고민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갖추고 있는 기존의 양육지원체계에 대한 점검과 함께 필요로 하는 양육지원의 형태와 내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아동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극히 소극적이며 양육지원체계 역시 다양하지 못한 사회에 속한다.
어찌 보면 기존 양육지원체계로서 보육시설의 역할이 그만큼 더 중요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보육사업은 빈민구제나 기·미아와 같은 요보호아동에 대한 보호의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족의 여타 기능과 마찬가지로 아동양육·교육의 기능은 점차 전문화·분업화되어 빈민층에서 일반가정에까지 보육대상은 확대되었고, 보육의 개념도 신체적 보호라는 극히 협소한 것에서 교육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단순한 보호와 교육의 개념적 결합을 뛰어넘어 아동의 건전한 보호와 발달을 위한 제반 서비스활동으로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의 보육서비스를 요구한다. 보육시설은 건전하고 바람직한 사회적 양육을 위해 가정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보육시설의 재정안정, 보육교사의 처우개선, 지역적으로 고른 시설의 배치, 보육서비스의 질 보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유아보육을 기본으로 하는 국공립시설의 확충은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시설은 보육료 수입에 재정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민간시설과 달리 안정된 재정을 확보하며, 국가의 관리와 감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 또한 안정되어 있고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서비스가 보장된다. 특히 고비용의 특수보육(예컨대 장애아보육, 연장보육 등)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수 있어 보육서비스의 다양성에도 일조하게 된다. 2001년 12월말 현재 전체 보육시설 중 국공립은 6.5%(13.06개소)로, 전국의 보육시설 이용 아동 중 13.9%만을 보육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공립시설의 확충은 공보육과, 보다 평준화된 보육의 질을 추구할 수 있다는 면에서 필요하다. 국공립의 비중을 50%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국공립의 확충은 계속 거론되고 있는 평가인증제가 도입되고 정착되는 시기를 앞당기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민간시설에도 여러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과의 서비스 경쟁으로 민간시설의 보육서비스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고, 보육교사들의 처우 역시 어느 정도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국공립시설의 확충과 더불어 보육비가 지원되는 저소득층가구의 자격요건이 현재보다 상향조정되어 평균가구소득 이하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조건이 완화되었을 때 대상가구는 현 10만 명에서 25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육시설의 확충과 보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지원정책이 병행되었을 때 진정한 공보육체제로 돌입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지원의 확대는 추후 완전한 차등보육료제의 도입을 위해 필요한 사전단계이다.
그러나 지원 확대를 위해서는 가구별 수입을 철저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소득전문직종을 포함한 자영업자의 실질적 소득파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운동차원에서나 이후 보육운동에서 제기되는 한 과업으로서 조세개혁을 주장하고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본 글에서는 영아보육, 방과후 보육, 장애아 보육 등 구체적 서비스의 방향까지 다루는 것을 생략하였다. 굳이 언급하자면, 영아보육시설은 두 자녀 이상의 보육이나 혼합연령의 이점 등을 고려해볼 때 유아보육과 통합을 기본으로 하되 연령에 따른 층별 구분과 같은 공간의 구분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장애아 역시 필요에 의한 전담을 제외하고는 통합을 기본으로 하고 이후로 이루어지는 시설 확충은 통합시설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방과후 보육은 영유아기와 구별되는 대상의 특성상 전담시설로 규정되는 것이 적절하다.
◇ 다시 시작하며
앞으로 아동양육은 여성의 고유책임을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조금 떠맡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사회의 적극적인 투자로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우선시하는 내용으로 인식되고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동양육 지원체계의 일선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보육교사들의 인식과 역할 역시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보육의 대상은 아동이나, 보육의 필요성은 국가 성원 모두에게 존재한다.
정리· 한국보육교사회 보육정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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