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2002년 울산노동운동 평가 (4) 비정규직`영세 노동운동
쓰디쓴 패배와 좌절, 하지만 바로 그속에 승리의 희망이 있다!
방어진 철공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올해 울산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투쟁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방어진 철공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방어진 철공조선은 생산직이 전원 하청 노동자로 되어 있었는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몇 달씩 밀려있던 임금을 떼일 위기에 놓였다. 이전에도 숱하게 벌어졌던 일이지만,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노동자들은 조직적으로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투쟁은 지자체 선거가 한창 시작되던 무렵인 5월 29일 시작되었다.
공장을 점거한 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으로 납품을 기다리고 있던 블록을 묶어둔 채 협상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현대미포조선이 크레인과 바지선을 이용해 블록을 탈취하려 하자 육탄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연대투쟁에 나섰던 지역 노동자들을 포함해 10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여론의 관심을 끌게 되자 결국 6월 4일 현대중공업은 인건비 1억 4천여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블록을 인수했고, 6월 5일 현대미포조선도 2억 8천여만원의 인건비를 지급하면서 투쟁은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방어진 철공조선의 하청 노동자들 대부분은 나이든 노동자들로 하루하루 일당으로 근근히 생활해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 투쟁이 끝나자마자 각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투쟁의 성과를 조직적으로 남기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경험은 새롭게 만나는 노동자들 속에 퍼져 나가면서 언젠가 새로운 투쟁의 자양분으로 역할하게 될 것이다.
방어진철공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임금체불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좌절과 체념을 이겨내고 부도사업장이라는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도 단결하여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 투쟁의 의미
최근 몇 년 사이에 활발해진 비정규직 투쟁의 정점에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투쟁이 있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는 2000년 10월 설립 이후 한국통신 측이 계약직 노동자 7천명을 도급전환이라는 명목 아래 사실상의 집단 정리해고를 단행하자 그해 12월부터 도급전환 거부와 정규직화를 내걸고 파업투쟁을 벌이며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에 섰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는 연대를 거부한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의 배신에도 굴하지 않고, 한강대교 고공농성, 목동전화국 점거투쟁 등 수없는 투쟁 속에 500일이 넘는 장기항전을 벌였다.
그러나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는 지난 5월 4일 충분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한국통신 측과 합의하고 투쟁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노조 해산을 포함한 합의안을 가결한 총회에서 조합원들은 모두 펑펑 울었다. 너무나 불만스러운 합의안을 가결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이 원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기간의 투쟁 끝에 너무나 지친 나머지 더 이상 투쟁을 끌고 나갈 힘이 바닥난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한동안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 역할을 해왔던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투쟁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모습은 많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투쟁이 패배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의 투쟁과 함께 비정규직 투쟁 또한 얼마든지 대중적인 형태로 끈질기고 강력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정규직 투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있기 이전에 한라(삼호)중공업 사내하청, 볼보 비정규직, INP 사내하청, 인사이트코리아, 린나이 비정규직 투쟁 등 비록 다수 대중의 투쟁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투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한통 계약직, 캐리어 사내하청 투쟁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이 가능했던 것처럼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투쟁은 이후 더욱 발전된 투쟁을 만들어 내는 데 큰 발판이 될 것이다.
여수지역 건설노조의 투쟁
7월 17일 여수지역 건설노동자 1천5백여명이 ‘여수지역 건설노조’의 깃발 아래 오랜 침묵과 굴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파업에 돌입했다.
55일의 파업끝에 현장에 복귀했으나 업체들이 파업 노동자들의 현장복귀를 거부하여 투쟁이 계속되던 끝에 11월 12일 여수건설노조는 마침내 지역 20여개 업체를 상대로 임단협 체결에 성공했다.
여수산업단지 건설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전국 200만 건설노동자, 전국에 산재한 750만 비정규직 일용 노동자의 노동3권과 생존권 사수에 불을 지피는 불꽃이었다.
중소영세 사업장 투쟁은 결사적으로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
최근 울산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중소영세 사업장 노조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민주노총을 탈퇴하거나 해산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동양금속노조와 일광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고, 삼화페라이트노조는 회사가 없어지면서 해산되었다. 고려중장비노조는 폐업 위협에 굴복해 해산되었다. 중소사업장일수록 신규 노조를 건설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지켜내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중소자본의 취약함에도 원인이 있지만, 하청계열 사업장에 민주노조가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원청 자본의 탄압이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현대자동차는 부품회사인 일광에 노조가 들어서자 일광에 주던 물량을 다른 회사로 옮기는 ‘물량 탄압’을 벌였다. 결국 일광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장비회수와 폐업을 위협하며 고려중장비노조를 해산시킨 고려아연 자본의 탄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서도 민주노조를 사수한 노조들도 있다. 울산 언양의 세동산업은 지난해 127일이라는 장기 파업을 하면서 노조를 사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위원장 복직을 법원 판결결과에 따르겠다고 사측과 합의했지만 올해 줄기차게 위원장 복직 없이는 단협도 임금인상도 필요없다고 맞서면서 위원장 복직을 쟁취했다. 이들은 노조를 사수하느냐, 회사가 망하느냐의 갈림길에서도 노조를 선택했다. 이런 각오로 투쟁했기 때문에 노조를 사수할 수 있었다.
세동산업 또한 파업을 이유로 물량이 다른 업체로 넘어가는 일을 겪었지만, 올해 들어 물량이 다시 돌아왔다. 결국 자본이 굴복한 것이다. 물량 이전의 문제도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중소사업장 노조들은 거대 본청 자본과 싸워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본청 노조의 연대가 없을 경우 상당히 어려운 조건에서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소 민주노조가 결연한 의지로 투쟁을 전개하는 것과 함께 본청 노조의 연대와 지역 연대 없이는 결코 민주노조를 사수할 수 없다.
계속해서 민주노조들의 패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결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투쟁에 나선다면 승리는 우리 것이라는 것을 몇몇 민주노조에서 투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