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은 없다? 타협은 있다!
전주희
이보다 더 당할 수는 없다.
'2002년 11월23일 단체협약이 해지됨에 따라 노조 전임자는 업무에 복귀하라.
땅. 땅. 땅. 또한 그동안 노동조합에 무상으로 지원한 제반 사항을 중단 또는
변경하겠다. 땅. 땅. 땅.'
지난 여름 47일간의 옥쇄 투쟁 이후 두산중공업 자본은 노동조합을 부숴 버리기 위한 돌격적인 공격을 바짝 죄고 있다. 급기야 2002년 11월23일까지 02년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음으로 인해 사상초유의 무단협 상황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이쯤 되면 자본가들은 환호성을 지를 것이고, 노동자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언론에서는 "전임자 복귀 등은 단협 해지에 따른 합법적인 절차인데 왜 파업을 하냐"며 "차제에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도 '노조의 자주성 확보' 차원에서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면 금속노조의 최대사업장인 두산중공업지회에 이런 최악의 사태가 온 것에 대해 노조 역시 '연대와 단결된 힘'을 보여주고야 말겠다고 한다.
두산중공업 '사태'는 끝이 없는 듯하다. 사측은 올해 2월25일, 4월2일 민주노총 연대파업에 참가한 200여명의 조합원들을 징계했다. 맞물려 있는 02년 임단협에서는 '배짱교섭'으로 일관하더니 임단협 승리를 위한 노조의 47일간의 파업에 용역깡패를 동원하는가 하면, 공권력투입 초읽기까지 파국으로 치달았다. 파업이 아무런 성과 없이 마무리되자 사측은 조합원 61명 고소고발, 총 65억 원 손해배상 청구, 해고 18명 등 89명을 중징계 했다. 노조 조직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사측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5월22일 금속노조에서 대규모 집회를 배치한 날 사측은 단협해지 통보를 했고, 정확히 6개월 뒤 단협이 해지됐다. 그리고 노조 전임자와 차량을 '반납'하라고 했다.
자본측은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패배한 파업 후 새로 꾸려진 집행부는 이전 집행부보다 더 실력을 보여주거나 실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산중공업노조는 이미 조직력이 바닥난 상태다. 활동가들도 두산자본의 직격탄에 혼비백산한 상황이고, 조합원들도 "싸워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으로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젖고 있다. 이틈을 비집고 그전보다 더 타협적인 집행부가 들어섰다.사측은 정리해고 조항 개악, 전임자수 13명에서 7명으로 축소, 임금 동결, 해고자는 중노위 재심판정까지만 조합원 인정이라는 카드를 내밀고 있다. "이번 기회에 노조 전임자들이 갖고 있는 노동자 귀족의식을 뿌리뽑고 금속노조에서 탈퇴시키겠다"며 갈 때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노조의 안도 만만치는(?) 않다. 임금인상 여부는 사측에 위임하고, 사측과 대립해온 금속노조의 집단교섭 문제도 유보하고, 징계·고소고발 등 현안문제는 '나중에' 별도로 논의하며, 해고자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안하고 있다. 노조는 애원하고 있는데 사측은 '아직 멀었다'고 튕기고 있는 형국이다.
노조측은 '타협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단협이라도 우리가 지켜낼 힘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단협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낫지 않냐'고 해요. 차라리 사측이 단협을 빼앗아 갔으니 단협을 원상회복 시키라며 싸워야 맞는 것 아닙니까?"며 최병석 해복투 의장이 울화통을 터트린다. 지금 두산중공업에서는 수배중인 해고자들만이 이 사태를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합원들조차 단협이 해지됐는데도 집회참석은커녕 15일부터 있었던 쟁의행위 찬반투표 참여율이 저조했다. 연장 공고까지 내가며 겨우 50%를 넘겼으나 집행부는 투표함을 개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사측의 탄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야간자들이 식당에서 투표를 못하도록 관리자들은 김밥이며 통닭을 직접 배달했다. 교대시간을 1시간 당겨 퇴근시키는가 하면 통근버스도 투표함이 있는 곳을 피해 조합원들을 내려줬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현장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 시절에는 겪지도, 듣지도 못했던 두산자본의 탄압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반면 두산중공업 현장이 그만큼 약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한 해고동지는 "우리는 그동안 온실속의 화초였습니다. 노조는 우리 해고자들을 부담스러워해요. 오죽하면 '빨간 조끼'도 안입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89명이 징계됐는데, 각 현장조직에서는 싸울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징계자들을 불러다가 '**아 내가 다 얘기 해놨다. 재심기간까지는 숙이고 있어라'고 했다니까요." 하며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실제 89명의 징계자들은 현장투쟁을 벌일 수 있는 핵심 활동가임에도 불구하고 2개월이 넘게 침묵했고, 그 결과 재심으로 '구제'받지도 못했다.
해고자, 탄압과 고립을 뚫어야.
지난 파업의 패배와 두산자본의 연타는 두산중공업 현장을 추스르기도 힘들 정도로 박살냈지만 '해고자'들도 만들어냈다. 현재 수배중인 해고자 6명은 그 중에서도 현장과 투쟁의 문제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 수배중인 해고자들은 '집행부 만들기'에 급급했던 선거조직의 한계는 현장의 약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또한 사기업인 두산자본의 노무관리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무기력하게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분명 두산중공업의 투쟁은 금속노조 집단교섭을 위한 파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두산중공업 '지회'의 싸움으로 돼버렸다. 하지만 이것 또한 "먼저 우리가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금속노조라 할지라도 우리 싸움을 해결해 주지 못해요."라며 현장을 다시 살리는 게 급선무라고 한다. 하지만 그 현장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다. 해고자 6명은 철저하게 고립돼있고, 더군다나 수배자이기 때문에 현장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조차 없다. 극한탄압과 숨막히는 고립은 해고자들의 투쟁의지를 그나마 꺾으려 하고 있다.
집단교섭이 먼저냐, 공동투쟁이 먼저냐?
하지만 금속노조 차원에서의 투쟁이나 지역 연대투쟁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두산중공업이 속한 경남1지부와 경남2지부는 두산중공업 투쟁에 대한 지역적인 공조체제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마창지역의 한 현장활동가는 "경남1지부 간부에게 '두산중공업노조 요즘 어떻노? 뭐 도와줄 거 없노?'라고 물으면 '걱정마라. 도와줄끼 없다' 라고 해요. 참으로 답답한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며 안타까워 한다. '투쟁으로 빛났던 마창노련은 사라져도 그 정신은 남아...'라던 말이 무색한 현실이다. 또한 금속노조의 핵심 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금속노조는 지금 싸울래야 싸울 수가 없는거죠. 집단교섭이 돼야 공동투쟁이나 파업도 있는 거지 집단교섭이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라고 말하는 한 해고동지의 말은 현재 금속노조가 가지고 있는 집단교섭을 둘러싼 투쟁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작을 위한 마지막 투쟁
12월4일 급하게 걸려온 전화 한통. "노사의견접근안이 나왔어요.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휴- 힘이 없으니까 반대도 없네요..."02년 임단협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이제 해고자들만이 남았다. 그 한 가운데에 천막을 치고, 6명 모두가 집단 단식농성을 시작할 것이다. "경찰에게 들려나가더라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조합원들에게 끝까지 싸우는 모습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사측은 2차, 3차 구조조정을 완성시키려고 더 발악을 할 것이다. 현장은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들어갔다 나오면 그때는 다시 시작할 겁니다. 투쟁도 현장조직도요." 너무 늦은 시작은 아닐 것이다.
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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